2024년 12월 4일(수)

[공변이 사는 法]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 주고파… 출생 미등록 아동 찾아 전국 시설 돌았죠”

[공변이 사는 法] 김희진 변호사


지난 16일 서울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만난 김희진 변호사는 “학부 때 봉사활동하면서 만난 아이들은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 같은 존재였다”며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아동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아동 관련 법률은 성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죠. 현행법에 가려져 불이익을 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잘못된 법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김희진(32·사진) 변호사는 국제아동인권센터(InCRC)에서 상근으로 일한다. 국제아동인권센터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기초로 아동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옹호 활동을 펼치는 비영리단체다. 김 변호사는 아동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법무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제시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6일 만난 김 변호사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목소리에 한 번이라도 더 귀 기울이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출생 기록 없는 아동, 양육시설에만 100여 명

보통의 변호사들이 소송 활동에 주력한다면 김 변호사는 직접 실태조사를 벌이고 문제를 발굴하는 등 ‘활동가’에 가까운 일을 한다. 지난 2015년 국제아동인권센터에 들어온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아동복지심의위원회에 대한 구성과 운영을 강제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을 이끌었고, 아동양육시설인 그룹홈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에도 역할을 했다.

지난해부터는 ‘출생 미등록 아동’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이내에 출생 신고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관리하거나 단속할 방법이 없어 출생 미등록 아동이 계속 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변호사는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UBR)’와 함께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자동으로 출생 사실을 등록하게 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도입을 지난해 법무부에 제안했다.

“법무부 담당자가 되묻더군요. ‘그래서 출생신고 안 된 아이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요. 황당했죠. 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 몇 명인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직접 찾아나서게 됐죠.”

김 변호사는 공익사단법인 두루와 함께 전국의 아동 양육시설을 조사 방문했다. 이를 통해 100여 명의 ‘신원불상’ 아이들을 찾아냈다. 그는 “부모가 고의나 과실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검사나 지자체장이 대신 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법 조항이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시설 종사자와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 3월 두루와 함께 출생등록 제도와 절차를 담은 ‘출생등록 가이드북’을 제작해 전국 지자체 가족관계등록팀과 아동 양육시설에 배포했습니다. 법과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매뉴얼을 마련해 제시하는 것도 법률가의 소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아동인권 실태 유엔에 전달… 대중 인식 개선 프로그램도 진행

청소년 관련 법제도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년사법 정책제안 연구보고서에 참여하면서 법 취지와 달리 악용되는 사례를 많이 접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통고제도'”라고 말했다.

“통고는 보호자나 학교장, 사회복지시설장이 법원에 아이들을 재판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예요. 문제는 일부 시설장이 특정 아이를 내쫓는 데 통고제도를 악용한다는 거죠. 일단 통고를 하면 해당 청소년은 대부분 소년분류심사원으로 보내집니다. 우범 소년으로 분류되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재판을 받아야 해요. 아이들은 대개 6개월 정도의 시설보호처분을 받는데, 원시설에서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상 데리고 있기 싫으니 내보내는 거죠.”

국내 아동인권 실태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전달하는 일도 김 변호사의 중요 업무 중 하나다. 지난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사전 심의에 참석해 국내 아동인권 침해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9월 본심의에서 아동인권 침해에 관한 권고가 내려질 겁니다. 물론 유엔에서 권고를 해도 국가가 이행하지 않으면 소용없죠. 그래서 최근에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온·오프라인 인식 개선 활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화만나’라는 프로그램을 열어 아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책임에 대해 함께 토론합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아동인권을 보호와 구제 정도 수준으로 좁게 해석해서 보건복지부가 모든 걸 떠안는 구조”라고 말했다. “아동 문제는 모든 정부 부처와 연결되는 이슈입니다. 아동·청소년 인권은 여성가족부가, 학생 인권 관련해서는 교육부, 교통 안전 분야는 행정안전부가 중점적으로 다뤄야겠죠. 또 미세 먼지 등 아동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라면 환경부가 나서야 합니다.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합니다. 칸막이 행정의 피해는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니까요.”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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