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공변이 사는 法] “이주민 마주할 때마다 오히려 제가 성장하죠”

비영리단체서 이주민 무료 법률 지원
여성·노동·아동 등 광범위하게 다뤄
“늘 밝은 이주민들에게 인생 배우죠”

지난 15일 서울 대림동에 있는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진혜 변호사는 “변호사 한 명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며 “이주민 지원에 힘쓰는 여러 단체 관계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들이 ‘이주민’이라는 정체성만 갖고 사는 건 아닙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 여성, 돈 벌러 온 이주 노동자, 공부하러 온 유학생 등 다양해요. 이들에게 발생하는 법률 이슈도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있어요. 이주민이라고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요.”

이진혜(34) 변호사는 이주민들을 무료로 법률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상근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다루는 영역은 여성 인권, 노동, 아동, 장애 등 광범위하다. 이 변호사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홍보한다”며 “늘 새로운 일이 들어와서 지겨울 틈이 없다”고 했다.

센터를 찾는 이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체류 자격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 이주 아동들의 교육 문제도 함께 걸려 있다. 법적으로 다투는 송사도 올해만 20건을 접수해 진행하고 있다. 이진혜 변호사가 근무하는 이주민센터 친구의 사무실은 서울 대림동에 있다. 이른바 ‘작은 중국’으로 불릴 만큼 중국 동포가 많이 사는 지역이다.

“저희 센터로 중국 동포가 많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진 않아요. 몽골, 네팔, 파키스탄 등 정말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찾아오세요. 대림역 9번 출구 바로 앞이라 나름 역세권이거든요. 교통이 편리한 건 둘째치고 상담 오시는 분들에게 장소 안내할 때 편해요. ‘대림역’ 하면 다들 아십니다.”

이진혜 변호사가 이주민에 관심 갖기 시작한 건 로스쿨 재학 시절이다. “1학년 때 이주민 무료 법률 상담에 자원봉사를 나가게 됐어요. 장소가 마침 혜화동이라 학교와 가까웠거든요. 그곳에서 이주민들의 드라마 같은 사연을 들으며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원봉사 현장에서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공익변호사의 세계를 알게 됐다. 졸업 이후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사내변호사로 1년간 근무했고, 이듬해 이주민센터 친구로 둥지를 옮겼다.

올해로 변호사 경력 6년 차인 그는 “초년생일 땐 어떻게든 법률로 다퉈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지름길을 찾으려고 애쓴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미혼부가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였는데, 엄마가 출산 직후 가족을 떠났거든요.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는 그 어떤 복지 제도에서도 소외됩니다. 그래서 이미 다른 가정을 꾸린 친모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겨우 출생신고 하겠다는 동의를 받아냈는데, 관할 면사무소에서 처리를 안 하는 거예요. 법적으로 또 다퉈야 하나 싶었는데, 나이지리아 아빠를 돕는 성당 사람들이 민원인으로 나서면서 쉽게 해결됐어요. 법률로써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거죠.”

공익변호사는 보람으로 살아가는 직업일까. 이 질문에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보람은 잠깐이에요(웃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저도 이주민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기 때문이에요. 상담으로 만난 분들의 인생이 절대 평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밝은 성격을 유지하는 걸 보면 놀라울 정도예요.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면서 느낀 점들도 새겨듣습니다. 그분들에게 인생을 배운달까요. 공익변호사로 살아가는 큰 동력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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