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변호사 3만6000명 중 아동·청소년 전담 10여 명뿐
두루-삼성생명, 공익변호사 지원 ‘온 마을 Law’ 3년 성과
“모델 알바라고 해서 갔는데, 성착취 피해를 당했어요.”
2024년 1월, 배수진 법무법인 천지인 변호사는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연지양(가명)을 처음 만났다.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접근한 남성은 모텔에서 노출 촬영을 요구했고, 결국 연지양을 성폭행했다. 피해 직후 연지양은 경찰에 신고했고,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압수해 수많은 불법 촬영물을 확보했다.
배 변호사는 위계간음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초기 수사는 미온적이었지만, 관련 판례를 제시하며 수사 방향을 바로잡았고, 피의자 구속을 이끌어냈다. 이후 피의자는 합의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배 변호사는 ‘클라우드 몰수’를 통해 피해자의 촬영물 삭제까지 이끌어냈다.
“아이들을 지키는 건 변호사 혼자 힘으론 어렵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함께 나서야 피해 회복이 가능합니다.”
◇ 아동·청소년 법률 지원할 공익변호사, 전국에 10여 명뿐
배 변호사가 연지양 사건을 맡게 된 배경에는 공익법단체 ‘두루’의 ‘온 마을 로(Law)’ 사업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에서 착안한 이 사업은, 삼성생명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을 받아 두루가 2022년부터 운영 중인 공익변호사 지원 프로그램이다.

두루는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법적 구제에 나서기 어렵고, 이들을 대변할 공익변호사 역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해 이 사업을 기획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변호사 3만6643명(2025년 4월 기준) 가운데 공익변호사는 0.3%인 117명(2023년 12월 기준)에 불과하며, 아동·청소년 권리를 직접 다루는 공익변호사는 10여 명 수준이다.
◇ 64명 변호사, 3년간 814명 아동·청소년에 법률 지원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금융캠퍼스에서 열린 ‘2025 온 마을 반상회’에서 두루는 3년간의 성과를 공유했다. 발표에 따르면 ‘온 마을 Law’에 참여한 변호사는 64명, 법률 지원을 받은 아동·청소년은 총 814명에 달한다. 두루의 강정은 변호사는 “10명 남짓이던 권리 옹호 변호사 풀을 60명대로 키운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법률 지원 사례집 ‘온 마을 일지’도 공개됐다. 출생 등록, 아동학대, 성폭력 등 9개 분야의 현장 사례가 300페이지에 걸쳐 정리돼 있다. 이후 열린 북토크에는 배수진 변호사 외에도 송지은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이채), 이제호 변호사(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최지혜 변호사(법률사무소 대표), 황인형 변호사(재단법인 동천) 등이 참여해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다.
김진석 ‘온 마을 Law’ 자문심의위원회 위원장은 “사례집은 아동·청소년 권리 침해의 현실과 변호사들의 사투, 그리고 구조적 한계를 모두 보여준다”며 “이 기록이 현장의 법률·인권 활동가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원학 삼성생명 사장은 “경제 불황으로 부모들이 더 바빠지면서 아이들이 홀로 남겨지는 일이 많아졌다”며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한편, 두루는 오는 5월 19일까지 ‘온 마을 Lawyer’ 4기를 모집한다. 4기는 오는 6월부터 2026년 5월까지 활동하며, 국선 아동 전담 변호사 제도 도입 등 아동 권리 옹호 생태계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