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필란스로키즈(philanthrokids)’다. 필란스로피(philanthropy·자선)와 키즈(kids·아이들)의 합성어로 ‘공공의 선을 위해 행동하는 아이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테러나 녹아내리는 남극 빙하를 ‘자기 일’로 여긴다. 가만히 있다간 우리 모두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절박함’, 사회를 향해 어떤 목소리든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Z세대를 필란스로키즈로 만들었다.
Z세대에 해당하는 인구는 2020년 26억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인구(약76억명)의 약 34%를 차지하는 셈이다. Z세대가 사회 주류로 떠오르면서 이들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소비자로, 제3 섹터에서는 가장 적극적인 시민 활동가로서 이들을 주목한다. 더나은미래는 ‘세상을 바꿀(CHANGE) Z세대의 특징’을 Conscious(개념 있는), Hyperconnected(초<超>연결된), Advocative(옹호하는), Natively digital(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Global(국제적), Eco-friendly(친환경적) 등 여섯 가지로 정리해 분석했다.
◇“소신을 드러내는 것은 멋지고 당연한 일”
Z세대는 SNS에 자신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 생각을 담은 글을 끊임없이 올린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어렵다면 관심 이슈를 다룬 게시물이라도 내 피드에 공유해야 직성이 풀린다. Z세대의 이런 ‘자기 표현’ 능력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강력하다. 전문가들은 “Z세대 사이에서는 온라인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게 ‘쿨한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고 분석한다.
청소년 체인지메이커 교육기관인 유쓰망고의 김하늬 대표는 “Z세대에겐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표출하는 것이 멋지고 개념 있는 행동으로 통한다”며 “이들이 음악 예능 ‘고등 래퍼’에 열광하는 것도 내가 믿고 생각하는 것을 거침 없이 표현하는 또래 친구들 모습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남들에게 인정 받는 기쁨도 한몫한다. 장지성 대학내일20대연구소 연구원은 “온라인에서 의견을 표출했을 때 여기에 동조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이 나오는 것을 경험하며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연대에는 경계가 없다!
전문가들은 Z세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초연결성’을 꼽는다. 실제로 Z세대가 생각하는 연대의 범위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다. SNS를 통한 이슈 공론화 과정은 밀레니얼 세대 등 어른들이 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Z세대는 사회 이슈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런 공통점으로 지구적 연대를 이끌어낸다.
지난 15일 120여 나라 2000여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열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등교 거부 시위(Global Climate Strike for Future)’는 Z세대의 응집력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다. 시작은 스웨덴 여고생 그레타 툰베리(16)의 1인 시위였다. 툰베리는 지난해 9월부터 정부에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매주 금요일 등교 거부 시위를 벌였다. 툰베리의 이야기를 접한 세계 각국 청소년들이 하나 둘 등교 거부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세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SNS에 시위 참가 청소년들이 올린 현장 사진과 영상이 쏟아지고, 국제 규모의 시위를 기획하기 위한 별도 계정도 생성됐다.
기후변화 문제를 걱정하는 청소년들이 SNS로 똘똘 뭉친 덕분에 이날 시위는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시위의 성공을 축하하며 툰베리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썼다.
◇같은 값이면 ‘착한’ 기업 제품으로
Z세대는 일상적 소비조차 일종의 ‘옹호 활동’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기업 CSR 전문 분석 기관 콘커뮤니케이션스가 2017년 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이 “환경과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기업의 제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미 사용하던 제품이 있어도 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제품이 나오면 기꺼이 갈아탈 의향이 있다는 뜻이다. 장지성 연구원은 “밀레니얼에 이어 Z세대도 윤리적 소비를 지향한다”며 “Z세대는 어릴 적부터 기후변화, 미세 먼지 등 환경 문제를 겪어온 터라 친환경 제품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Z세대의 윤리적 소비 성향이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IBM비즈니스가치연구소와 전미유통업협의회가 16국 Z세대 1만5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족의 생활 소비에 Z세대 의견이 평균 53.8% 반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식료품 ▲ 생필품 ▲가구 소비에는 70% 이상 영향을 미쳤다. Z세대 자녀가 친환경 채소와 비건(vegan) 샴푸, 폐목재로 만든 식탁을 고집하면 부모가 이를 받아들일 확률이 70% 이상이라는 얘기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기업과 제품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기 쉬워지고 나아가 그것이 진자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 악덕 기업의 제품을 보이콧하는 등 기업 경영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면서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CSR 측면에 더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Z세대, 비영리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다
Z세대는 비영리단체의 자원봉사나 모금, 서명 캠페인에도 곧잘 참여한다. 그들은 이런 활동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들의 관심 이슈에 더 깊이 관여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라고 여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캠페인을 널리 알리는 데도 적극적이다. 비영리단체들은 Z세대의 이러한 성향을 고려해 캠페인 게시 글을 본인 SNS 계정에 공유하거나 특정 해시태그를 다는 등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캠페인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모금 캠페인도 1회 참여형 프로젝트와 기부를 하면 선물을 주는 ‘리워드형’ 프로젝트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하고 있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선 단체의 주된 모금 방식인 정기 기부는 Z세대의 참여율이 낮은 편”이라며 “Z세대의 온라인 친화적 특성을 반영해 온라인에서 더욱 효과적일 수 있는 모금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Z세대에게는 ‘비영리 활동가’도 매력적 직업이다. 해외에서는 직접 비영리단체를 세워 자선 사업을 하는 Z세대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멜라티(18)·이자벨(16) 와이센 자매는 ‘바이바이플라스틱백(Bye Bye Plasticbags)’이란 단체를 만들어 발리 섬 내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 도입을 이끌었고, 미국의 나디야 오카모토(21)는 ‘피리어드(Period)’를 설립해 저개발 국가의 여성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김하늬 대표는 “사회 변화 프로젝트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성인이 돼서도 계속 비슷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릴 적부터 이러한 활동 경험을 쌓는 이들이 많을수록 체인지메이커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사회 참여를 ‘딴 짓’으로 보는 기성세대의 시선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Z세대가 사회 혁신가로서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는 기성세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19일 버니 맥디아미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은 3월 15일의 기후변화 시위의 성공을 축하하며 “시위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기후변화가 그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며 “권력자들은 이번 국제 시위를 ‘그저 애들이 한 일’로 앝잡아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Z세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 김하늬 대표는 “당연한 말 같지만 Z세대와 접촉이 많지 않은 어른에게는 의외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10대 청소년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활동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직은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고 했다.
사회 참여 활동을 ‘딴 짓’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이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해오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입시 준비에 몰입하기 위해 많은 Z세대가 활동을 중단한다. 21세기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정찬필 사무총장은 “원래 학교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교과 지식을 단순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며 “정규 교과목 수업 안에서 학생들이 ‘진짜 세상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방식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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