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축구공이 아프리카의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

‘얼라이브 앤 킥킹(Alive and Kicking, 원기왕성한, 팔팔한이라는 뜻)’ 회사는 영국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자선단체로, 아프리카에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축구공 혹은 다른 운동용 공을 만들어 판매하며, 공정한 소득의 직업을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더불어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을 증대하며, 예방가능한 질병 관련 인식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글린 커밍(Glenn Cummings) 얼라이브 앤 킥킹 CEO에게 회사의 활동과 아프리카의 사회적기업 전망에 대해 물었다.  Q. ‘얼라이브 앤 킥킹’의 사업 모델을 이야기해달라. A. “우리는 케냐, 잠비아, 가나에서 손수 바느질(hand-stitched)과 핸드 스크린 프린트(hand-screen printed) 작업을 한, 내구성 좋은 축구공 및 운동용 공을 만들고 있다. 공 속에 들어가는 블레더(공기 주머니)를 제외한 가죽, 면 커버, 실, 왁스, 라텍스, 접착제 등 다른 모든 재료는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다. 우리는 주문량에 상관없이 맞춤 디자인 제작이 가능하다. 기업이나 유로파리그(UEFA), 아스날 축구클럽(아스날 F.C.) 같은 단체는 단체 로고와 메시지를 새긴 공을 제작할 수 있고, 이것을 마케팅이나 사회 공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UN과 비영리기관에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새길 수 있다.  연간 판매량이 약 8만 5000개 정도이며, 8만개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판매됐다.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소매점, 사기업, NGO나 UN기구를 통해 판매가 이뤄진다. 나머지는 유럽에서 판매된다. 임금의 80 %가 판매수입으로 충당된다. 나머지는 시민, 후원기업, 재단의 기부로 메워진다. 우리는 비영리 단체로 모든 소득을 보건 사업 운영과 더 많은 공을 기부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Q. 어떻게 사회적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가? A.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적 미션은 3가지다. 첫째는

슬프고 불쌍한 대륙? 편견 걷어낸 아프리카엔 희망이 넘쳤다

NGO들의 개도국 바로보기 ‘죽어가는 아이들의 땅’ ‘굶주린 곳’ 동정·희화화 없이 개도국 바로봐야 아프리카인사이트, 사진전 개최 국제개발 NGO 6곳, 국내 최초로 미디어 가이드라인 발표해 호응 “아이들 편식하면 ‘아프리카 애들은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말 쉽게 하잖아요. 이런 게 다 편견이거든요.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아프리카는 항상 희화화되고요.” 허성용(31) ‘아프리카인사이트’ 대표의 말이다. 아프리카인사이트는 아프리카를 온전히 세상에 알리기 위해 설립된 청년 비영리단체다. 허 대표는 “편견을 가지면 제대로 도울 수 없다”며 “외부 기관에서 파준 우물이 몇 년도 안 돼 말라 버리고, 학교나 병원 시설이 방치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허 대표와 아프리카의 인연은 2008년 굿네이버스 봉사단원으로 탄자니아를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아프리카를 전혀 몰랐어요. 거만한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정반대였어요. 우리가 ‘불쌍하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진취적이고 꿈도 많았죠. 도움받는 건 늘 나였어요.” 4년여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2013년 뜻을 함께하는 동료 6명과 함께 ‘아프리카인사이트’를 설립했다. “무의식적으로 ‘아프리카는 죽어가는 아이들의 땅’이라고 학습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는 이유에서다. 아프리카인사이트는 교육이나 옹호(Advocacy) 활동, 문화·예술 등을 통해 진짜 아프리카를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중 하나가 다음달 28일 까지 제주도 아프리카박물관에서 열리는 ‘내가 만난 아프리카전(展)’이다. 김보화 아프리카인사이트 아트디렉터는 “사진을 통해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면 대중매체에 나오는 모습이 ‘아프리카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을 바로 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요 NGO들도 이런 접근 방식에 동참한다. “제 이름은 프레셔스(Precious)예요. 앞으로

[특별 기고] “20년 전 처음 방문한 아프리카… 그곳에서 죽어가던 아이들이 내 삶을 바꿨죠”

김혜자 월드비전 친선대사 아프리카 방문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2012년 말 황열병 주사를 다시 맞기 위해 병원에 다녀온 후다. 잠시 휴식을 위해, 그리고 호기심에 찾았던 아프리카. 그 여정이 내 삶을 이렇게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파리를 쫓을 힘조차 없이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아이들. 그런 자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엄마의 슬픈 얼굴. 그저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을 기대하며 방문한 땅에선, 상상조차 못했던 장면들이 펼쳐졌다.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후, 아무런 죄 없이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운명 속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더러운 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 그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월드비전과 함께 이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따뜻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배고프고 아픈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작은 동전들을 모아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바로 월드비전 ‘사랑의 빵’ 캠페인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받았던 도움을 전 세계로 나누기 위해 동전을 모으는 캠페인이었다. ‘사랑의 빵’ 캠페인을 시작으로, 한국월드비전은 가난한 이웃들을 전 세계에서 넷째로 많이 돕는 모금단체로 성장했다. 아무 조건 없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53만명의 월드비전 후원자분들이 함께한 덕분이다. 이렇게 이웃을 돕는 기쁨을 소중히 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에 많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월드비전은 더

그의 사진엔 환하게 웃는 아프리카가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요셉 색약으로 교사 포기한 후 주변 일상부터 찍기 시작 “슬픈 아프리카 아닌 평범한 모습 담고 싶었다” 사진전 열고 지인 모금 통해 차드에 우물 10개 만들기도 “큰딸이 올해 여섯 살인데, 만날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무슨 색인 것 같으냐’고 물어요. 대체로 틀리거든요. 그럼 ‘아빤 진짜 색깔을 잘 모른다’면서 놀려요(웃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요셉(37)씨의 말이다. 그는 색의 일부분을 식별하지 못하는 ‘색약’이다. 같은 색도 적색 옆에선 녹색으로, 녹색 옆에선 적색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꿨지만, 재수 끝에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 ‘색약’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사진을 찍게 된 건 왜일까. “사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빨리 나이 들고 싶기만 했고요. 이렇게 지나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 순간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엔 색도 구분 못 하는 제가 사진은 절대 못 찍을 거라 생각했었죠.” 평소 주로 무얼 찍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변의 작은 일상을 찍는다”고 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 밭 매는 할머니, 갓 태어난 아들. 모두가 그의 사진 속 주인공들이었다. 인터넷과 책을 통해 찍은 사진을 나누면서, 그의 사진을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갔다. 이요셉씨를 만나기로 한 건 그가 아프리카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2007년부터 굿네이버스에서 재능나눔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프리카의 케냐, 에티오피아, 차드, 르완다, 탄자니아에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굿네이버스 지부가 위치한 외곽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사진 찍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이 일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슬픈 사진들이 넘쳐나는

“공부하고 싶은데 책이 없어요”… 아프리카 소년 위해 만든 그림 산수책

산수책 만든 ‘웰던 프로젝트’ 디자이너 조동희씨와 전문 자원봉사자 14명… 초등 저학년 타깃으로 제작 오는 27일, 산수책 400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전달 아프리카 아이들이 주인공인 ‘산수책’이 만들어졌다. 한국인의 손으로. 산수책의 주인공은 곱슬머리·흑갈색톤 피부의 아프리카 아이다. 이름은 디디에(Didier)로, 코트디부아르 출신 유명 축구선수인 디디에 드로그바를 연상시킨다. 사칙연산에는 기린, 파인애플 등 아프리카와 친숙한 소재가 이미지로 사용됐다. 넬슨 만델라·오바마 대통령 등 아프리카와 관련이 깊은 유명인들도 책에 소개됐다. 작년 여름, 책을 본 탄자니아 학교 선생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사립학교 교장은 200권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다. 이 산수책을 만든 건 한국의 디자이너 조동희(31)씨와 지인들이 속한 디자이너그룹 ‘웰던프로젝트(Well-done project)’다. 시작은 우물이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아프리카의 메마른 땅에 깨끗한 물을 줄 순 없을까’. 월드비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디자이너 조씨는 2009년 사진·영상에 관심 있던 지인 4명을 모았다. 엽서 제작·판매, 네티즌 모금, 아티스트들의 텀블러 디자인 판매 수익 등 1000만원을 모아 콩고민주공화국에 식수펌프 1개를 만들었다. 두 번째 도전은 2010년 여름 방문한 잠비아 은테베학교에서 시작됐다. 교실이 모자라 밖에서 공부하고, 학교가 부족해 10㎞를 2~3시간 동안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조씨는 학교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잠비아 아이들의 그림으로 만든 티셔츠도 판매하고, 자신의 블로그(http://welldonep .tistory.com)에 ‘웰던프로젝트’ 이야기도 연재했다. 출장비로 사용하라고 1000달러를 쾌척하는 이도 있었고, 사진전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고(이준현 사진작가), 자선 공연을 여는 인디 밴드(게이트플라워즈)도 있었다. 후원금이 900만원 남짓 모였지만 역부족이었다. 10배나 되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속 가능한 개발, 변화의 현장⑥] 아프리카 차드 희망학교 지원 사업

척박한 땅에 심은 교육의 씨앗… 지역경제 꽃피웠다 교육 무시했던 주민들 인식 개선·계몽으로 배움의 중요성 깨달아 “간호사·화가 되고 싶다” 꿈없던 아이들 목표 생겨 학교에 사람 모이자 마을 활기 되찾고 지역경제도 살아나 “열두 살 때까지 학교 구경도 못했어요. 학교 때문에 이사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밥 짓고, 빨래하고, 물 길어오고…. 하루를 그냥 흘려보냈어요.” 3년 전까지 “꿈을 가져본 적 없다”던 켄소(15·여)양은 현재 ‘간호사’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2010년, 아프리카 차드(Chad) 파샤 아테레 지역에 ‘요나스쿨’이라는 초등학교가 생기면서부터다. “늦은 나이라 어린 동생들과 같이 배우지만 상관없어요. 학교 와서 연필을 처음 잡으면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알았어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히센(18·남)군이 늦게라도 소질을 발견한 이유는 2012년 차드 은자메나시 도고레 지역에 ‘리앤차드스쿨’이 생겼기 때문이다. 두 학교는 모두 굿네이버스 차드가 지은 아프리카 ‘희망학교’다. 각각 탤런트 고(故) 박용하, 가수 이승철의 기부로 마련됐다. 초등학교는 6칸 교실, 유치원, 교무실, 보건소, 우물 등으로 구성됐다. 박근선 굿네이버스 차드 지부장은 “밭일을 하거나, 양을 치던 아이들이 희망학교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척박한 땅에 희망의 씨를 뿌리다. 중앙아프리카 중북부에 위치한 차드(Chad)는 척박한 땅이다. 사하라사막이 국토의 북쪽을 덮고 있고, 사헬가뭄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교육 환경도 나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6개국(중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말라위, 니제르, 탄자니아, 차드) 중 초등학교 중도탈락률(72%)이 가장 높다. 베라모토(60) 은자메나시 장학사는 “차드는 학교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인식이나 교사의 자질도 떨어진다”고

“아프리카 아이들 교육 위해 NGO 세우고 선생님부터 가르쳤죠”

HoE와 친구들 현지 교사·아이들 돕는 비영리단체 ‘호이’ 맞춤 교재 연구 개발 등 효율적인 교육방법 전달 연주회 통한 모금활동 등 지인·친구 도움도 계속 “아프리카에는 일회용 쓰레기가 많습니다.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 샘플 같은 걸 쓰거든요. 바람이 불면, 쓰레기들이 한곳으로 모여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치우질 않더라고요. 왜 쓰레기를 안 줍느냐고 물었더니 NGO가 와서 다 수거해가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더군요.” 박자연(34)씨는 고민에 빠졌다. 아프리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리더가 필요했다. 작년 여름, 박씨는 아프리카 케냐 코어 지역 20여명의 선생님을 모아 구글 맵으로 자신이 사는 마을을 보여줬다. ‘왜 지리적으로 이 쓰레기가 한곳에 모이는지’ 알려주며 ‘왜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지’ 등 위생 문제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현지 교사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선생님이 ‘쓰레기를 치우자’고 하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여름이면 코어 지역을 방문하면서 현지 교사와 신뢰를 쌓으면서 일궈낸 결과였다. 4년 전, 박자연씨는 아프리카 지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교사의 중요성을 처음 깨달았다. 박자연씨는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현지 교사”라며 “선생님 1명을 지원하면 1년엔 50명, 30년이면 1500명의 아이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코어 지역은 약 1만5000명의 아이 중, 단 6.6%만이 교육의 기회를 갖는 극빈층이 거주하는 곳이다. 교과서도 과거 식민 통치를 받았던 영국식을 따르고

모기장만으로 수많은 생명 지킬 수 있어요

아프리카와 말라리아 에이즈와 함께 경제성장 저해 요인 가난에 병원·약품 부족 치료도 어려워 모기장 배포 지역 발병 확률 확 떨어져 아프리카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종족 분쟁과 내전으로 폐허가 된 ‘라이베리아’를 취재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처음 보는 아프리카는 끔찍했다. 폭격과 총탄에 의해 파괴된 도시는 UN평화유지군에 의해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년병으로 끌려갔던 아이들은 만신창이가 된 채 마을로 돌아왔고, 먹을 것이 없는 소녀들은 한 끼 식사에도 몸을 팔았다. 반군의 세력이 아직 남아 있는 지역을 취재할 때는 신변의 위협도 느껴졌다. 이 모든 괴로움에 더해 날 괴롭혔던 것은 말라리아에 대한 공포였다.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1주일에 한 알씩 약을 먹었는데, 먹을 때마다 구토가 심해졌다. 게다가 말라리아의 종류도 다양해, 복용하는 약으로 예방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불과 몇 주 만에 시력이 0.3 정도 떨어졌다.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 후 정상을 되찾기까지는 거의 6개월이 걸렸다. 이 때문에 이번 한 달여의 아프리카 취재를 준비하며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도 말라리아였다. 방문하는 아프리카 6개국 모두가 ‘위험 지역’이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해 처음 만난 우간다의 박범준 기아대책 자원봉사단원은 웃으며 “이곳에 오면 1년에 최소 2~3번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잠비크에서 만난 이상범 기아봉사단원도 “매년 한 번씩은 말라리아로 크게 앓는데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말라리아모기는 아프리카 현지인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자, NGO 봉사단원을 가리지 않는다. 아프리카

나일강 발원지 우간다 가보니_검게 변해 악취 심한 나일강물을 마시는 아이들 “그래도 강물이 있어 행복해요”

年220만명 오염된 물로 사망 위생시설 없이 사는 인구 39% 그중 대부분이 아프리카 주민 우물 파도 물 안 나와 발만 동동 아프리카를 떠나 오며 잊어지지 않는 풍경 중 하나가 나일강이었다. 비가 6개월 이상 오지 않아 쩍쩍 갈라지는 마른 땅과 숨죽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뒤로, 아프리카 대륙은 거대한 수원(水源) 나일강을 품고 있었다. 길이 6671㎞의 거대한 강. 고대부터 사하라사막을 넘어 북부 아프리카와 적도 이남의 내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배 곯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풍부한 농업용수를 제공해 온 강이다. 하지만 5000년 넘게 가난한 이들을 품어 온 나일강도, 21세기 아프리카 사람들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각종 산업 지구가 쏟아내는 폐기물과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 폐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누구나 마실 수 있고, 물을 대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나일강은 이제 옛날 얘기다. 강물은 검게 변했고, 악취까지 났다. 나일강의 발원지가 있는 우간다 진자에서 만난 열 살 로널드는, “그래도 강물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몇 개월간 비가 오지 않는 사막지대에서 낙타의 피와 오줌으로 굶주림과 극한 갈증을 견디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로널드는 커다란 노란 통 2개에 강물을 가득 담았다. 가족 모두가 하루 동안 마시고 씻을 물이다. 어른인 내가 들어도 휘청할 만큼의 물통을 들고, 아이는 1시간 거리의 집으로 떠났다. 로널드가 떠난 후 6~8세 정도 된 꼬마 3명도 노란 통 한 개씩을

제3세계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 ‘영화’로 깬다

CGV 다문화 영화제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월드컵 응원구호가 현대적으로 편곡된 ‘아리랑’으로 이어졌다. 익숙한 음악이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열대지방 특유의 정열적인 리듬이 어깨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손끝으로 흘렀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민요와 열정적인 춤사위가 어우러지면서 곡이 끝나갈 때쯤에는 관객들도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난 11일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마련한 ‘아름다운 공존, 다문화 영화제’ 개막식 무대는 콩고·세네갈·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6개국 출신 이주민 7명이 모인 ‘스트롱 아프리카’팀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문화 영화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방가?방가’, ‘맨발의 꿈’, ‘반두비’ 등 아시아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과 한국 속에 살아가는 아시아인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들이 많이 상영됐다. 이런 영화를 함께 나누는 것이 다문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까. 영화제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방송(MWTV) 활동가 아웅틴 툰(35)씨는 “영상은 전달력이 뛰어나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기에 적절한 매체”라며 “관람객들이 다문화 영화제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아인권연대 이완(36) 사무국장도 ‘영화’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가진 매체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아시아인들이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거나 ‘백인을 더 높게 평가하는’ 등의 선입견이 지속되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 담긴 서구적 시각 탓이 크다”며 “편견을 만든 것이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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