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거제 야호’에서 시작된 로컬의 파트너 되기

“로컬은 결핍이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제에서 보낸 내가 고향을 떠나며 가졌던 생각이다. 1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영화관에 갈 수 있고, 논술 수업을 듣기 위해 방학마다 서울로 향해야 했던 그 시절, 로컬은 내게서 빨리 벗어나야 할 공간이었다. 그러던 내가 최근 ‘거제 야호’라는 밈 앞에서 멈췄다. 걸그룹 리센느의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거제 출신 멤버 원이의 유튜브 채널에서 즉흥적으로 외친 이 한마디는 숏폼 알고리즘을 타고 대히트를 쳤다. 리센느는 올해 5월 거제시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되기까지 했다. 나에게 이 장면은 단순한 밈이 아니었다. “거제도 이젠 힙(hip)해”, “여기 이야기를 함께 해보자”고 말을 거는 일종의 환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가벼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지역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 숫자로 셀 수 없는 관계, 지역을 살리는 새로운 단위 과거 지자체들의 지상 과제는 ‘정주인구’ 늘리기였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 속에서 이는 이웃 지자체와 인구를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는 2023년 주민등록인구뿐 아니라 통근·통학·관광 등으로 지역에 머무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생활인구’ 개념을 법률에 도입했다. 2025년 8월에는 인구감소지역 89곳을 대상으로, 자주 머무는 지역에 등록하면 주민에 준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생활인구 등록제’도 시행했다. 이와 함께 정주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방문과 교류를 통해 지역에 활력을 더하는 ‘관계인구’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사는 사람의 수’에서 ‘지역과 관계 맺는 사람’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임팩트스퀘어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타트업의 솔루션이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오래된 미래, 삼국(三國)에서 배우는 지역투자의 상상력

지난 주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한국사를 전공한 내가 이곳을 찾은 횟수는 60~70번을 넘는다. 그런데도 매번 새롭다. 그날은 마침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박물관 앞 마당에 나와 있었고, 시민들이 줄지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박물관장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장면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은 처음 봤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 600만 관람객 시대를 열며 방문객 기준 세계 TOP4 박물관 반열에 올랐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식을 능가하고 생성형 AI가 창작까지 하는 시대에, 우리는 왜 지나간 역사에 열광하는가. ◇ 과거, 우리의 오래된 미래 역사를 보면 과거와 현재가 언제나 비가역적인 발전 경로를 밟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경이로움을 주는 순간이 있다. ‘에밀레종’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 그렇다. 거대한 종을 단 한 번에 주조하며 특정 두께와 음향을 구현한 771년의 기술은 오늘날에도 완전한 복원이 쉽지 않다. 쇳물을 한 번에 부어 굳히는 과정에서 균열을 막고, 공명 구조까지 계산해 낸 기술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넘사벽’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불완전한 과거로 보지만, 실은 그 안에도 오늘날의 우리가 배워야 하는 정교한 지혜가 가득하다. 설 연휴, 가족과 함께 공주와 부여를 다녀왔다. 백제 문화권을 여행하며 이 생각은 더 또렷해졌다. 당시 백제인이 지역에 투자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은 백제를 넘어 고구려와 신라로 확장되었고, 각각 백제벤처스·신라벤처스·고구려벤처스라는 가상의 투자회사로 이어졌다. 이들이 지금까지도 존재한다면, 그 오래된 미래는 오늘날 우리에게 지역투자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 백제벤처스, 섬이 아니라

은퇴자 경험, 자산으로 연결할 해법 나왔다…한·일 청년, 창업으로 답을 찾다

[GCSC 2026] 시니어 멘토링 플랫폼·자서전 제작 서비스 ‘금상’ 수상 한일 공동 난제에 20개 창업 아이디어 도출 은퇴와 함께 사회에서 밀려난 시니어의 경험을 다시 꺼내 ‘청년의 커리어’로 연결하는 해결책이 나왔다. ‘글로벌 칼리지 스타트업 캠프(Global College Startup Camp·GCSC) 2026’에서 늘어나는 은퇴 전문가를 AI 매칭을 통해 멘토로 연결하는 플랫폼과 노년의 삶을 AI로 기록·출판하는 서비스가 금상을 수상했다. GCSC는 가천대학교 스타트업칼리지(가천코코네스쿨)과 일본 히토츠바시대학교 소셜데이터 사이언스 학부가 2023년부터 공동 주최해온 글로벌 창업 캠프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GCSC 2026은 기업 코코네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열렸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총 80명(각 40명)의 청년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한·일 혼성 팀을 꾸려 3박 4일 동안 기후 변화와 빈곤 등 국경을 넘는 문제를 다루는 ‘글로벌 트랙’과 고령화·지역 소멸 등 지역 기반 과제를 해결하는 ‘로컬 트랙’으로 나뉘어 총 20개의 사회문제 해결형 창업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지난 10일 일본 도쿄 이노베이션 베이스(Tokyo Innovation Base)에서 열린 GCSC 2026의 최종 발표회에서는 글로벌 트랙과 로컬 트랙에서 각각 금·은·동상 등 총 6개 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는 장대익 가천코코네스쿨 학장과 시치조 나오히로 히토츠바시대 교수, 일본 자산운용사 ‘아이지와 자산운용’의 시라키 신이치로 대표이사, 목승환 서울대 기술지주 대표 등 4명이 맡았다. ◇ 글로벌 트랙 금상, 시니어 경험을 멘토링으로 글로벌 트랙 금상은 ‘X-PASS’ 팀이 차지했다. X-PASS는 은퇴한 전문가(시니어)와 학생·직장인을 연결해 실무 기반 멘토링을 제공하는 B2B 커리어 코칭 플랫폼이다. 발표에 나선 카일(Kyle) 씨는 “전 세계 1억

ESG·로컬 스타트업 겨냥한 펀드 나왔다…트리즈-소풍, 투자조합 1호 출범

로컬 브랜드 성장 전문 액셀러레이터 트리즈컴퍼니(대표 김지현)와 초기 투자 전문 액셀러레이터 소풍커넥트(대표 최경희)가 공동업무집행조합(Co-GP) 형태의 펀드 ‘트리즈-커넥트 투자조합 1호’를 출범했다. 두 회사는 그동안 독립적으로 창업기획자(AC)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Co-GP 펀드를 통해 로컬·ESG 기반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브랜딩·스케일업·성장 관리까지 통합 지원하는 공동 액셀러레이팅 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단순한 재무적 수익 추구를 넘어 투자 이후의 성장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펀드’ 모델을 내세우고, 지역 기반 창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트리즈컴퍼니는 ESG 컨설팅과 로컬 브랜드 판로개척 역량을 기반으로 밸류업 마케팅에 강점을 가진 AC다. 콘텐츠 제작·브랜딩·마케팅·온·오프라인 유통망 확대·공간 지원·교육까지 브랜드 성장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한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투자와 실행 지원을 연계해 왔으며, 올해 싱가포르 시장 진출에 성공한 ‘해녀의 부엌’처럼 지역 기반 브랜드의 국내외 스케일업 경험을 축적해 왔다. 소풍커넥트는 17년간 임팩트 투자와 초기 스타트업 육성을 이어온 소풍벤처스의 자회사로, 2025년 1월 공식 출범한다. 최경희 대표는 2020년 소풍벤처스 합류 이후 초기 투자, 밸류업 프로그램,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등을 총괄해 왔다. 최 대표와 함께 소풍벤처스의 AC부문을 이끈 전문 인력들도 소풍커넥트에 합류했다. 소풍커넥트는 올해 전북특별자치도, 삼성물산, CJ제일제당, 농협 등과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번 협력은 마케팅·판로 중심 ‘실행형 AC’와 초기 투자 중심 ‘육성형 AC’가 결합한 사례로 평가된다. 양사는 창업–브랜딩–스케일업이 선순환을 이루는 로컬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고, 로컬 크리에이터와 ESG 기반 초기기업이 시장 진입부터 확장, 지속 성장까지

MYSC, ‘2025 LIPS 네트워킹 데이’ 개최…로컬 창업팀 한자리에

성동청년 창업이룸센터서 스몰브랜드 전략·투자·네트워킹 논의 임팩트 액셀러레이터 MYSC는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성동청년 창업이룸센터에서 ‘2025 LIPS 네트워킹 데이’를 개최했다고 26일 밝혔다. LIPS(Licorn Incubator Program for Small brand)는 창의성과 확장 가능성을 갖춘 스몰브랜드를 육성하는 성장 지원 프로그램으로, 초기 창업팀을 대상으로 브랜드 전략 점검, 사업 구조 개선, 네트워크 연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최근 3년간 프로그램에 참여한 40여 개 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사업 방향을 공유하고, 협업 가능성을 논의하는 네트워킹이 진행됐다. 성동청년 창업이룸센터는 올해부터 LIPS 사무소로 운영되며, 참여 기업의 전략 진단과 고객 검증 테스트를 일상적으로 돕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성동구는 라이프스타일·소비재 브랜드가 빠르게 집적되는 지역으로, 외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고객층, 도시 기반 창업 생태계 순환 속도가 높다는 점에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 메리히어와 창업이룸센터는 이러한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로컬 소상공인과 스몰브랜드를 위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행사에서는 최근 MYSC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민욱조 CSP 대표가 ‘창의적인 로컬 비즈니스’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는 기술 중심 성장 흐름을 넘어 지역성과 생활 기반 가치가 부상하는 트렌드를 짚으며 글로벌 스몰브랜드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좋은 기업이 좋은 도시를 만든다”며 지역 생태계 강화의 중요성과, 빠른 기술 변화 속에서도 창업의 본질은 ‘가치 기반’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투자자와 참여 기업이 논의를 나누는 ‘밋업’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현장에는 크립톤, 더인벤션랩, 티에스인베스트먼트 등 주요 초기 투자사가 참여해 1:1 상담을 진행하며 성장 전략과 투자 관점을 공유했다. 권혁준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을 위한 금융

벤처 투자는 ‘로컬’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벤처 투자의 속성부터 알아야 한다. 벤처 투자는 리스크가 커서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에서는 도저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왜 리스크가 크다고 할까. 첫째, 리스크를 측정하려면 뭐라도 측정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신생 회사다 보니 업력도 없고 매출도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창업자가 사회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불과 몇 년에 불과하다. 둘째, 아무도 해보지 않은 사업모델이거나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도 아직 검증이 됐다고 하기엔 이르다. 리스크가 큰 정도가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벤처투자의 속성을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하고 벤처투자자들이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사람의 됨됨이만 보고 투자하는 건 아니다. 벤처투자자들이 반드시 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매출 또는 기업가치가 빠르게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수익성도 커야 한다. 이 두 지표는 시기에 따라 비중이 다른데 시장이 너그러울 때는, 다시 말해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성장성이 큰 기업을 선호하고 시장이 어려워지면 성장성보다도 수익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벤처 투자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벤처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그럼 이 기준을 로컬에 적용해보자. 로컬을 비수도권에 위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로컬 아이덴티티를 사업화한 스타트업이라고 한다면, 일단 성장성부터 걸린다. 여기서 스타트업은 초기 창업기업의

경기 김포 책방짙은에서 열린 '실버 그림책 테라피' 수업. /책방짙은
지역공동체 거점으로 키운다던 동네서점, 정부 예산 삭감에 ‘벼랑끝’

인구 8000명인 경남 진주 문산읍의 작은 책방 ‘보틀북스’에서는 매주 문화 행사가 열린다. 8평(26㎡)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매달 200명 넘는 주민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한다. 연령층도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작가의 북토크쇼가 열리는 날에는 함안, 의령 등 인근 지역의 사람들도 몰린다. 특히 의령은 관내 서점이 단 한 곳도 없는 문화소외 지역으로, 서점을 이용하려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보틀북스에는 올해만 강원국, 김금희, 김초엽 등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방문했다. 채도운 보틀북스 대표는 “대부분의 지원 사업에는 기획비나 인건비가 포함돼 있지 않아 서점에 별도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공모사업을 계속 하는 이유는 지역에는 문화적 목마름을 느끼는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년에는 이 같은 지역서점의 문화 프로그램 운영이 중단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 11억원을 전액 삭감하면서다. 내년 지역서점 지원 예산은 총 15억1000만원. 이 중 12억5000만원이 이번에 신설된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 예산으로 잡혔다. 실질적으로는 출판 업계가 공동으로 활용하는 유통 구조 개편에 투입되는 것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에 따르면 전국 지역서점에서 진행하던 750여 개 문화 프로그램이 사라질 전망이다. 중앙정부 예산이 삭감되면서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해 문체부는 지자체에도 지역서점 지원을 독려했다. 각 지자체는 문체부와는 별도로 예산을 투입해 지역서점 활성화를 지원했다. 지역서점은 문체부, 지자체의 공모사업을 여러 개 신청해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권미선 한국서련 정보화사업팀장은 “현장에서는 중앙정부 기조에 따라 지자체 지원까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청년 창업가 육성의 조건

지난해 6월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거의 모든 지역의 후보자들이 ‘청년 창업 지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역경제 활성화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까. 과거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공약으로 대기업 유치를 약속했다. 지금은 이런 공약이 먹히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완화로 대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임금 인상과 강화된 노동법 때문에 지방에 있던 공장이 폐쇄되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 현실 인식이 부족한 일부 정치인들을 제외하고 이 정도는 이미 학습됐다. 그다음으로는 산업단지 조성 공약이 유행했다. 그러나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지방산업단지 중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 역시 이미 학습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카드가 청년 창업 육성이 됐다. 이 카드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일자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이제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이 됐다. 문제는 지역 창업을 활성화하거나 스타트업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창업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있지 않은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금까지 1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90%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수도권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익숙해진 창업가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끌어내린다는 말인가. 해법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변화는 서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 최초의 창업 붐이 일었을 때부터 스타트업은 투자사들이 자리 잡은 강남 테헤란로에 몰려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수도권을 향하는 청년, 수도권을 떠나는 청년

지방대 소멸은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과거에는 지방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역 인구가 줄어서 혹은 실력이 없어서 이 대학들이 소멸 위기를 겪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학생 수가 줄기 때문이다. 입학생도 줄어들지만, 설령 입학했어도 졸업 전에 떠나는 학생이 많다. 이유는 지방 대학을 나와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매슬로우에게 대한민국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생존의 욕구’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욕구의 발동으로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데 가족과 후세의 생존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다. 대세가 이러함에도 언젠가부터 탈(脫)수도권하는 청년들이 나타났다. 제주의 로컬 콘텐츠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매거진 ‘제주iiin’을 창간한 고선영 대표는 제주 출신이 아니다. 여행 전문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그녀는 어느 날 방전(放電)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도피하듯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 전문 매거진을 만들었다. 방전된 그녀를 제주가 다시 충전(充電)해준 것이다. 이전보다 더 달릴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현대카드와 라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제주에서 서핑을 테마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베러댄서프’를 만든 김준용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어느 날 번아웃이 왔고, 지칠 때마다 재충전을 위해 찾던 제주에서의 서핑을 떠올리며 아예 제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치지 않고서도 제주에 내려온 청년들도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로컬 브랜딩의 그늘

“플레이어가 없다.”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입 모아 얘기하는 것은 인프라의 부족이다. 일할 사람과 자원을 연계할 구심점을 찾아 헤매는 사이 기획 부동산은 빠른 속도로 ‘0리단길’을 만들어 원주민을 밀어낸다. 팬시한 카페가 늘어선 관광지는 본연의 매력 대신 도시의 위용을 닮아간다. 자연스레 원도심의 할렘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지역의 국립대학과 강소대학도 베드타운으로 기능하기는 마찬가지. 이쯤 되면 외지인에 대한 경계와 텃세가 십분 이해된다. 물론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인식의 차이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번은 사회적기업 피칭 현장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커서 자립할 수 있는 ‘카리타스 작업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자식 앞세워 장사한다는 심사평이 오갔다. 건설적인 비판이라 포장할 수 없는 지역의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로컬이 미래다, 경쟁력이다’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고, 지자체의 로컬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사업이 성행 중이다. 지역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배정된다 한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사업을 맡을 인력이 없어 국고로 돌려보내는 일을 왕왕 목격한다. 예산을 사수하기 위해 대게는 외부의 전문인력을 공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좁혀진다. 허나 잠시 머물며 로컬을 맛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새롭고 낯선 시도를 향해 쏟아지는 관심은 벚꽃비 내리는 봄날처럼 찰나에 불과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관점과 의지만이 기나긴 겨울을 나는 불쏘시개가 된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개척해야죠!” 이찬슬 스픽스 대표는 가장 작고 소외된 곳을 찾아 목포역에서 1시간 떨어진 섬마을 안좌도로 들어갔다. 그의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은 취향의 대상이 아니다

‘패러다임(paradigm)’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 말로 ‘한 시대의 보편적인 사고의 틀(frame)’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시대정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S. Kuhn)이 1962년 자신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의해 혁명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후 보통명사화 되면서 상황이나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 됐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예로 천동설과 지동설을 들 수 있다. 지금이야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16세기 이전에 우리가 살았다면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아마도 산업혁명일 것이다. 과학혁명이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적용되면서 구축된 산업혁명 패러다임의 가장 큰 특징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다. 1760년대 기계의 발명으로부터 촉발된 산업혁명은 짧은 시간 안에 인류를 규정해 버렸는데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하려면, 다시 말해 대량생산 기계를 작동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이는 농촌의 노동력을 빨아들이면서 도시화를 가속했다. 엄마 아빠를 모두 공장에 뺏긴 아이들을 관리(탁아)해야 했기 때문에 공장 시스템과 똑같은 형태의 공교육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공부하고, 정해진 시간에 쉬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하교했다.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으로 소비하는

[아무튼 로컬] 도대체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저 코로나 탓만일까. 로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대도시의 다중 밀착 컨택트에 지친 사람들이 언택트 공간을 찾아, 혹은 발 묶인 해외여행족들이 꿩 대신 닭이라며 로컬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런 움직임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부터 급류를 타고 있었다. 여기서 로컬이란 ‘서울 말고 다 시골’이라는 의미보다는 ‘사람들의 삶 터’라는 뜻에 가깝다. 당연히 서울 안에도 다양한 로컬이 있다. 요즘 뜬다는 성수동이나 창신동,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 세운상가 주변, 예전부터 개성적인 상권을 형성해 왔던 이태원, 홍대 앞 등이 서울 안의 로컬이라 할 만한 곳들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로컬의 핫플에 다녀온 걸 과시하려는 셀카 사진이 넘쳐난다. 형형색색 피크닉 복장 중·장년 세대의 관광버스 여행이 명승지 위주로 돌아갔다면, SNS 네트워크로 연결된 밀레니얼 자유여행객들의 발걸음은 전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멋진 공간을 누빈다. 맛집은 기본이고 퀄리티 면에서 서울의 유명 상권에 뒤지지 않는 카페, 책방, 공방, 수제 맥주집, 바버숍, 편집숍 등 업종도 다채롭다. 매력적인 인테리어와 감각적 서비스를 갖춘 이런 가게들이 지난 수년 새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생겨나더니 점점 더 빠른 기세로 확산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는 말이 나온다. 청년들 사이에 가장 뜨는 게 로컬이라는 얘기도 있다. 서점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동안 출판계에선 ‘퇴사’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홍수를 이뤘다. 그 흐름을 로컬이 이어받았다. 잡지에서 시작해 일본 번역서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로컬 전성시대의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