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게으른 소비 먹고 자라는 ‘포장 배송’이라는 가오나시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는 ‘가오나시’라는 매력적인 조연 요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지만, 온천 직원들의 물질적인 욕망을 들어주면서 비대하게 커져가는 이 요괴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해석이 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이 요괴만큼이나 능숙하게 ‘편리함’이란 인간의 욕구를 빨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는 산업이 있으니 바로 포장 배송이다. 전 세계적인 도시화,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e-커머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2014년 1조3000억달러였던 e-커머스 매출은 3년 만에 2017년 2조3000억달러로 증가했고,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로 성장세가 폭발, 2021년에는 4조500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총알 배송’ ‘로켓 배송’ 등으로 익숙한 ‘퀵커머스’도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퀵커머스는 물류 및 플랫폼 투자로 소량 주문이라도 30분 이내로 배송하는 것으로, 터키의 ‘게티르(Getir)’라는 스타트업은 초고속 식료품 배달을 기치로 올해 6월 5억5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터키 둘째 유니콘으로 부상했다. 배달 플랫폼 연합체 딜리버리 히어로의 CEO였던 랄프 벤젤도 올해 ‘조크르(Jokr)’란 이름의 퀵커머스를 설립하였다. 게티르가 진출한 영국의 한 매체가 보도한 것처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도 가기 귀찮은 사람들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MIT 부동산 혁신 연구소에서는 올해 1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을 비교하며 온라인 쇼핑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단일 배송이 아니라 여러 상품을 묶음 배송하고,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퀵커머스는 소비자 편의성이라는 절대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미래 사회와 장학 사업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역사가 깊고 명망 있는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은 국제 교육사업의 상징이다. 1945년 제임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이 미국인과 다른 나라 국민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제안한 교환교육 프로그램으로 출발해 지금은 미 국무부 산하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인재들을 선발하여 미국 유학을 지원하고 있으며, 선발되면 왕복항공료와 미국 유학기간 2년 동안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포함한 연간 4만달러의 장학금을 받게 된다. 현재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은 세계 각지에서 정부, 학계, 산업계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만 88명, 노벨상 수상자는 60명을 배출했다. 국내에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이현재 전 국무총리, 김승수 전 국무총리 등이 풀브라이트 장학생 출신이다. 덕분에 미국이 실행한 대외정책 가운데 가장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장학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학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중심으로 미래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 환경, 사회혁신 분야의 리더 육성에 집중하거나 아세안 국가에서 한국으로 유학 오는 인재들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포스코 청암재단은 ‘포스코아시아펠로십’을 통해 아시아 국가 대학생의 한국 유학을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10개국 16개 지정대학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사업이다.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은 기초과학 분야 포스닥(박사후연구원) 예정자를 지원하는 포스닥 펠로십과 매년 20여명의 임용 36개월 내 국내 대학 신진교수 또는 1년 내 임용예정인 연구자를 지원하는 신진교수 펠로십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꿈장학재단은 매년 60여명의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으로 유학하는 전 분야의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글로벌 희망장학’ 사업과 매년 170여명의 고등학교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한국 기업에 필요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2021년 8월 19일. 미국의 대표적 경제단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 참석한 대기업 CEO 181명이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서’에 서명한 지 2년이 된 날이다. 이날 조슈아 볼튼 BRT 회장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2 년 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CEO들은 고객, 직원, 협력회사, 사회 그리고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고 이익을 내려면 직원에 대한 투자, 고객과 파트너와의 신뢰 유지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고 거래업체와 협력하며 지역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최고의 CEO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전례 없는 위기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CEO들은 독창성과 혁신, 이해관계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헌신하며 2년 전에 서명한 성명서에 대한 약속을 강력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는 그들이 계속해서 도전에 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년 전, 당시 BRT에 참석한 기업가들이 22년간 지속되어 온 주주중심의 경영정책을 뒤집은 일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더 이상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서명한 것이다. BRT는 미국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1972년에 설립된 경제단체다. 시민의 반(反)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위해 로비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주만이 아닌 고객과 직원,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쓰레기 만드는 기업

‘예쁜 쓰레기’. 형용 모순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 진행된 ‘화장품 어택(attack)’ 캠페인은 모순된 단어의 조합인 ‘예쁜 쓰레기’의 존재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환경운동단체 녹색연합은 화장품 용기는 예쁘기만 할 뿐 거의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이며, 정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및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서 화장품 회사만 제외해 특혜를 주고 있다고 폭로했다. 화장품 회사는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다양한 재질의 장식, 부속품을 화장품 용기에 붙인다. 또 단가가 낮고 휴대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 소용량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런 용기는 재질과 크기의 문제로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하다. 사실상 90% 이상의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라벨이 붙어야 하는데, 화장품 업계는 수출 진작과 브랜드 이미지 하락 등을 이유로 들며 이 행정예고를 번번이 피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들의 어이없음은 충격과 허탈의 롤러코스트를 거쳐, 분노로 조직됐다. 2주간 8000개의 ‘예쁜 쓰레기’를 모은 시민들은 화장품 회사의 사옥 앞에서 화장품 용기 쓰레기를 펼쳐 놓고 요구했다.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책임져라!” 한국사회에 기후시민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캠페인만큼 풀뿌리가 스스로 움직인 적이 있었을까. 그간 기후변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만 하던 시민들이, 구체적인 범인으로 화장품 회사를 지목하고 그들을 법과 제도로 규제하기로 한 것이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캠페인을 확산하고, 자신뿐 아니라 지인들을 독촉해 빈 화장품 용기를 모았다. 전국의 제로웨이스트 가게, 로컬푸드 상점, 공정무역 카페 등이 수거장소로 등록하면서 일이 커졌다. 쓰레기가 쌓인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소셜벤처 법제화, 아직 과제가 남았다

소셜벤처가 드디어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그간 소셜벤처는 민간과 공공 할 것 없이 널리 사용되어온 표현이었지만 법령에는 명시되지 않은 상태였다. 10여 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이제는 벤처기업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 소셜벤처기업의 법제화를 지켜본 감회는 새롭지만 또 복잡하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기업을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라 부른다. 이외에도 사회목적기업(Social Purpose Company), 소셜미션중심기업 (Mission driven Company), 베네핏기업(Benefit Corporation) 등의 표현이 있지만 사회적기업이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다. 한국에서 이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하다. 지난 2007년에 제정된 사회적기업지원법에 의해 ‘사회적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인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벤처기업으로 불리기 위해서도 별도의 인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스스로 지칭할 길이 막히자 정부 인증이 필요치 않은 조직들은 자신을 ‘소셜벤처’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은 세계에서 소셜벤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되었다. 소셜벤처가 본격적으로 공공의 지원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다. 사회적 경제의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은 수년간 현행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를 보완하여 소셜벤처를 지원하고 육성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요청해다. 그 결실로, 정부에서는 소셜벤처를 ‘혁신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벤처’라고 정의하고 기존 벤처기업과 마찬가지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원-육성하기로 하면서 비로소 10년 만에 행정용어로 포함되었다. 그 뒤 몇 년에 걸친 민간과 공공의 노력으로 소셜벤처는 법적 근거를 갖춘 실체가 되었다. 지난 2021년 7월 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소셜벤처기업을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성과 혁신 성장성을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시민공익위원회 의의와 한계

정부 100대 과제에 포함되어 2017년부터 준비되어온 정부 공익법인법 전부 개정안이 7월 30일에 발의되었다. 법무부는 시민공익위원회를 설치하여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공익법인의 주무관청을 대체하고, 공익법인을 체계적·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감독을 강화하여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개정안을 설명하였다. 전국 공익법인을 관리·감독하는 위원회가 설치되고 민간 위원이 위원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점, 운영경비 보조 등 지원이 확대되며 민법에 없던 합병을 인정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대상범위나 내용상 한계가 자명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운영되는 영국, 호주 사례와 달리 개정안은 시민공익위원회를 검찰·행형 등을 담당하는 법무부 산하에 설치하는 내용이다. 가까이 일본의 경우에는 공익위원회 위원 전원을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하지만, 개정안은 일반직 공무원이 위원에 포함되고 위원장과 사무기구를 관장하는 상임위원을 법무부장관이 제청한다. 당초 입법예고안에 포함되어 있던 위원회 독립성에 관한 규정과 위원장의 예산 요구·집행권에 대한 규정도 삭제되었다. 주요 인사권과 예산권이 법무부에 있는데 비상임 민간위원이 다수라는 것만으로 공익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위 상황에서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나 시민공익위원회의 대상은 2만여 개의 비영리법인 중 4000여 개의 공익법인이다. 현재 세제 혜택을 받는 세법상 공익법인은 4만여개이므로 10% 정도에 불과하다. 전국적인 공익법인 지원·관리 체계로서 시민공익위원회를 설립한다고 하기에는 현저히 제한적이다. 한편 개정안은 공익목적사업을 추가하고, 민법상 비영리법인이 시민공익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여 대상 법인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민법상 비영리법인이 시민공익법인이 되면 상당한 규제가 따른다. 또 시민공익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시민공익위원회 법률 제정… 서두를 필요 없다

정부는 지난 7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마련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켜 국회로 넘기는 작업을 끝냈다. 이 법은 민간 비영리 공익법인을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민공익위원회’(공익위원회)의 신설과 운영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정부가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하려는 이유는 비영리 공익법인이 투명하고 건전하게 공익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의 취지와 달리 법안 내용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과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 법은 접근법 자체가 비영리 공익법인 활동을 ‘반부패 개혁’ 차원에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민간의 자발적 공익 활동과 연관성이 적은 법무부가 이 법(안)의 주무부처가 될 뿐 아니라, 시민공익위원장을 법무부장관이 제청해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실무를 총괄하는 상임위원 역시 위원장 추천→법무장관 제청→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법무부가 공익법인들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원봉사, 국제 구호, 빈곤 아동 지원, 인권, 환경, 평화운동 등 공익을 위하여 민간이 벌이는 비영리 공익 활동을 법무부가 통제하려 든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민간 공익 활동은 가능한 한 민간의 자율성·책무성을 높여가면서 통제보다는 격려 및 지원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도 담보되기 어렵다. 각 분야에서 사회적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정권에 따라 또는 장관의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대로라면 시민공익위원회는 법무장관 그리고 대통령의 뜻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순수하게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하도록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최적화되지 않은 선의

사회 전체의 공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즉 비영리, 자선사업, 소셜벤처, 임팩트 비즈니스와 임팩트 투자 등을 하는 이들이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철저한 ‘자기 검열’이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을 때는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고한 것이지만, ‘나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소명에 진정성 있으니 틀릴 리 없어’라고 맹신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도 제법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2017년 출간되었던 윌리엄 매커보이 저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중점적으로 지적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잘 쓰는 것’과 ‘가장 잘 쓰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한데, ‘선의’라는 기치를 내거는 순간 돈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 검증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잠비아의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는 2012년 출간한 책 ‘죽은 원조’를 통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이 1970년대 이래로 3000억달러 이상의 천문학적 지원금을 받았는데도 끝이 없는 빈곤과 부패의 수렁에 빠진 것을 바로 그 ‘잘못 사용된 원조’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원조를 ‘치유책을 가장한 질병’으로 부르며, 다양한 차관과 증여가 받는 이들의 부패와 갈등을 조장하고 자유 기업 체제를 방해한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에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하기보다, 서방국가들의 행정 편의에 맞춘 원조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임팩트 투자 또한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자 네트워크 ‘토닉’(Toniic)의 창립 CEO였던 모건 사이먼이 올해 초 출간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에서 이러한 사례를 언급한다. 예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멕시코 테우안테펙 지협의 풍력발전 프로젝트는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비워낸 만큼 채워지는 것들

아주 어렸을 때,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말았다. 고작 대여섯살 때의 일이니 남들보다 포기와 좌절을 좀 더 일찍 맛본 셈이다. ‘아이돌’이 되는 것도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진학 문제를 고민할 때도 남들보다 선택지가 좁았다. 성적보다는 엘리베이터와 특수학급의 유무를 먼저 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곳은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장애인이라서 예기치 않게 얻은 기회와 보람도 있다. 지금 쓰는 칼럼도 그 중 하나다. 나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정보가 된다는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소수성을 띠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더 낮은 곳까지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해 주야장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 됐고, 독학으로 깨우친 컴퓨터는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생에서의 ‘득과 실’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큰 손해라고 생각되는 일이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지금은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미래의 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소아암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한 가족이나 지인들은 없었을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사회적기업 vs. 소셜벤처

‘사회적기업’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2008년 8월이다. 당시 경기 화성에 있는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총괄본부의 사회공헌을 담당하면서다. 사회공헌 담당의 역할은 농번기에 1사 1촌 봉사활동, 겨울이 오기 전에 집수리 봉사, 봄가을에 제부도나 연구소 인근 하천 쓰레기 줍기 등 주로 임직원이 참여하는 봉사활동 위주였다. 새롭게 맡은 업무가 낯설지만 흥미가 생겼고, 단순 봉사활동이 아닌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화성시 새마을회 사무국장을 만나게 됐다. 나의 고민을 들은 사무국장은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기업을 함께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분이 제안한 사회적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70세 이상 노인분들께서 새마을회에서 제공한 공간에서 뻥튀기를 생산·포장하고, 제품은 화성시 관내 공공기관에 무인 판매대를 설치해 개당 1000원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뻥튀기 생산을 위한 초기 설비비만 3000만원이 필요했다.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해 거금 3000만원을 집행하기 위한 내부 승인 절차를 진행했다. 다행스럽게도 사회공헌 담당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회사의 승인을 받았고, 얼떨결에 ‘H&S 두리반’(현대차의 H, 새마을회의 S를 따온 이름)이라는 민관협력 모델의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자활개념으로 시작된 H&S 두리반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성시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빵을 만들어서 화성시 전역에 납품하고 있고, 직업학교 학생들이 제빵 실습을 하는 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될 당시 사회적기업은  대부분 자활기업, 사회복지단체, NGO 등에서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고용노동부 주도로 2008년 사회적기업 육성 기본 계획이 수립되면서, 대기업의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우리 회사엔 왜 여성 리더가 없나요?

지난 6월말, 위커넥트는 변화하는 일의 패러다임에 맞춰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10명의 여성 스피커를 초대해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온라인 콘퍼런스 ‘Career Navigation for Women: 계속 일하기 위한 6가지 방법’을 열었다. 이틀간의 콘퍼런스가 끝난 뒤 한 참가자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에 여성 리더가 거의 없어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덕분에 다양한 레퍼런스가 생겼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9.8%였다.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훨씬 더 낮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200대 상장사 등기임원 144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의 수는 65명으로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 포브스 선정 200대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의 수가 전체의 29.9%에 달하는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ESG 평가 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2021년 상장 기업 지배구조 성과’에서 평가 대상 997개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한 기업이 작년 대비 5.72%p 상승했다고 밝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한 대기업 계열 건설사 대표이사와 여성 매니저들의 차담회에 초대됐다. 여성 임원을 더 많이 뽑고 싶지만 임원 후보로 올릴 중간관리자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게 주요 어젠다였다. ▲출산과 육아 등 생애주기 변화에 따른 여성 실무자들의 중간 이탈 ▲남성 중심적 기업 문화와 제도 ▲구성원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는 경직된 근로 환경 ▲여성 중간관리자의 최상위 직급 승계 경험 부재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죄악주 프리미엄’이라는 허구

2001년 9월, 책 한 권이 세상에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의 이면에 숨겨진 아동노동 착취, 전쟁, 환경파괴 등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한 서적이다. 거대 기업의 파렴치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에는 독재 부패정권을 기반으로 기업들이 어떤 모습으로 더러운 유착관계를 맺는지 보여준다. 환경과 사회를 보호하는 관련법을 저지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것만 같은 유명 브랜드 회사가 국제단체와 어떻게 협업하는지도 밝혔다. 인권을 묵살하는 파렴치한 기업, 전자산업 내에 드리워진 아동노동의 그림자, 의약품 업계에 자행되는 실험용 모르모트 인간, 석유업계의 환경오염 실태 등 기업이 만드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는 한두 번 욕 먹고 금방 잊힐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ESG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투자기관 입장에서 이른바 ‘나쁜 기업’은 투자 배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 분야에서는 ‘죄악주(罪惡株)’라고 불리는 업종과 종목이 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인 통념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류, 담배, 도박, 무기, 성상품, 대부 업종에 속하는 주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죄악주는 ESG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윤리적, 종교적 신념 또는 환경·인권 보호와 같은 사회적 동기를 고려해 투자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투자 전략 관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ESG를 고려해 투자한다면서 카지노 기업의 지분을 늘렸다든지, 석탄발전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다소 비판적인 기사를 접하곤 한다. 급격히 늘어난 ESG 펀드나 E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