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4일(화)
[진실의 방] 어떻게 감히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공식 석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 반응은 냉랭했다. 교육 당국은 ‘폭력’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어떻게 감히’ 학교라는 숭고한 단어와 조합할 수 있느냐며 극렬하게 반발했다. 지금은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그때는 그렇게 저항을 받았다.

학교 폭력이라는 말을 세상에 끄집어낸 사람은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 김종기씨다. 1995년 회사 업무차 떠난 중국 출장길에서 그는 열여섯 살 외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던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죽음으로 그는 죄책감과 절망감 속에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가해 학생들이 여전히 학교에 남아서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해자 부모들은 제 아이들의 진학과 앞날을 걱정하며 연락을 피했고, 학교는 폭력을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흔한 문제로 치부하며 덮으려 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학교 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게 됐다. 자신과 같은 비극을 겪는 아버지가 두 번 다시 없기를 바라며 청소년폭력예방재단(지금의 푸른나무재단)이라는 시민 단체를 설립했다. 정부는 그가 벌이는 일을 몹시 불편해했다. 단체 이름에도 ‘학교 폭력’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막았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라는 게 이유였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가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지만, 인내심과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그 숙제를 해내는 사람은 대부분 당사자다. 당사자들의 분노와 절박함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 어떻게 감히 흑인이 백인과 같은 식당을 이용해? 어떻게 감히 여자가 학교를 다녀? 혐오와 차별이 판치는 세상에서 ‘감히’에 맞섰던 당사자들은 욕을 먹고 불이익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김종기 명예이사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4년 마침내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 특별법’이 제정됐다. 학교 폭력에 관한 근거법이 마련된 것이다. 지금은 전국 모든 학교가 입학 설명회에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대해 소개하고 어떤 절차로 어떤 처분을 내리는지 자세히 안내한다. 학교 폭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학폭을 학폭이라 부르지도 못했던 당시를 떠올리면 많이 바뀌었다. 당사자들이 인생을 바쳐 이뤄낸 것들을 우리는 이렇게 무심히 누린다. 마치 저절로 해결된 것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시위를 두고 말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위가 아니다. ‘모두의 이동권’을 위한 장애인들의 시위다. 유모차 끄는 사람도, 임신부도, 다리가 아픈 노인도 이번 시위의 당사자다. 다만 가장 절박한 장애인들이 나서준 것뿐이다. ‘나와 내 가족은 절대로 영원히 당사자가 될 리가 없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장애인의 투쟁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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