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님 말이야, 참 멋진 사람인 것 같아. 인터뷰를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면서 후배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인터뷰에 동석했던 후배는 구체적으로 어떤 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글쎄, 일단은 재밌잖아.
1953년 강원도 강릉 출생. 최재천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따고 하버드대에서 행동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미시간대 조교수를 거쳐 199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2006년부터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통섭’ ‘호모 심비우스’ 등 수십 권의 책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과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스타 과학자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한마디로 누구나 인정하는 이 시대의 석학이다.
최재천 교수에게 질문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태학’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석학은 잠시 고민하더니 ‘흡혈박쥐’ 이야기를 들려줬다. 흡혈박쥐 하면 동물의 몸에 구멍을 뚫어 피를 쭉쭉 빨아먹는 섬뜩한 장면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동물의 피부를 긁어 상처를 낸 뒤 피를 살살 핥아먹는 다소 비굴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조차도 얻지 못한 박쥐들이다. 며칠만 흡혈하지 못해도 굶어 죽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배를 채운 박쥐들이 동굴로 돌아와서는 쫄쫄 굶고 있는 친구 박쥐에게 제 피를 토해 나눠주는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석학은 말했다. ‘지구상에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고. 나누고 되갚는 연대를 통해 흡혈박쥐 집단이 살아남은 것처럼 코로나 시대의 인간도 결국은 손잡고 연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석학을 만나봤지만 그들과의 대화가 늘 즐겁지는 않았다. 듣다가 졸리고, 못 알아들어 ‘쫄리는’ 때도 있었다. 최재천 교수와의 대화는 몹시 즐거웠다. 지식은 궁극적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멋진 소수의 사람만이 지식을 그런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 최재천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인간의 세포 수는 25조개. 장내 미생물 수는 30조개. 그러니 사실 ‘나’는 ‘내’가 아니다. 애초에 인간은 공생인(共生人)이다.” 석학의 말에 우리는 웃었고 그 뒤에는 큰 깨달음이 남았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