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진실의 방] 뜻밖의 발견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한국 나이로 열여섯 살. 유지민양은 더나은미래의 최연소 칼럼니스트이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태아 때 몸속에 생긴 종양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고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다.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이 지민이의 엄마다. 지민이에게 칼럼을 부탁한 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Z세대인 지민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칼럼을 쓰게 된 인연으로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장소는 모녀가 정했다.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광화문 F빌딩의 한 식당을 알려줬다. 하지만 식당 입구에서 막혔다. 계단처럼 생긴 턱이 여러 개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크고 좋은 빌딩에 자리한 품격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휠체어 출입을 고려하지 않고 인테리어를 했다는 게 뭐랄까, 참 모자라 보였다. 남자 직원들이 지민이의 휠체어를 들어서 안으로 옮겨줬다. 예약한 자리에 앉은 엄마는 지민이의 눈치를 조금 살피며 “식당 알아볼 때 가장 먼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부터 알아보는데, 여긴 전에 와본 곳이라 되는 줄 알았더니 착각했나보다”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는 늘 모든 것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한 뒤에 움직인다고 했다. 원래부터 성격이 그렇게 꼼꼼하셨냐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결혼 전까지는 완전 기분파에 왈가닥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인연과 풍경, 이런 걸 너무 좋아했는데 지민이를 키우면서 성격이 정반대가 됐다고 했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동선부터 살피고 경로를 다 찾아본 뒤 움직인다. 무턱대고 나섰다가 휠체어가 못 가는 길이라도 만나게 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하루가 엉망이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세런디피티(serendipity)’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지민이가 엄마에게 세런디피티가 뭐냐고 물었다. 뜻밖의 발견, 예상치 못하게 만나게 되는 행운 같은 걸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하니 얼굴을 찡그렸다. “아우, 그런 거 너무 싫어. 예상 가능한 게 좋아.” “나도 나도. 그런 거 너무 싫다. 그치.” 끼어들 수 없었던 모녀의 대화가 왜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지 알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친구를 칼럼 필진으로 합류시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우려와 달리 지민이의 칼럼은 매번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지민이의 칼럼을 읽으며 깨닫는다. 지민이는 세런디피티가 싫다고 했지만 그 애는 우리에게 뜻밖의 발견, 예상치 못하게 만난 행운이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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