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8일(수)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여성 농부들, 커피 산업의 주인이 되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2013년 네팔. 커피 수확이 한창인 3월 초. 깊은 산 속 커피 농장 새벽 한기는 뼈가 시릴 정도다. ‘커피를 따러 가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침대 속 따뜻함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다. 커피를 사러 농가를 방문한 나의 게으름 저편으로 산중 그녀들의 아침은 분주하다. 마당에 건 솥단지에선 집안의 큰일을 해내는 검둥소에게 먹일 여물이 끓고 부엌에서는 장작이 타는 소리, 달그락 그릇 소리가 요란하다. 일단 커피 농장으로 나가면 다시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아침은 든든히 먹고 농장에서 먹을 도시락도 싸야 한다. 학교에 가는 자녀들 등교 준비를 돕고, 젖먹이를 들쳐 업고 저녁에 쓸 물도 미리미리 길어다 둬야 한다. 텃밭의 야채를 거두어 집안에 챙겨두면 비로소 그녀들은 커피농장으로 향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부자가 된다면 내가 네팔에서, 르완다에서, 페루에서 만난 커피 농가의 여성들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15년 페루. 여성들의 노동은 장소와 시간을 바꿔 계속된다. 커피나무 가지치기, 가뭄에 견딜 수 있도록 흙 덮어주기, 묘목을 심어 미래의 수확을 준비하기, 적정한 비료 주기, 잡초 뽑기.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드디어 수확의 기쁨이 찾아온다. 빨간 체리를 골라 따고 세척장에 이동할 수 있게 포장하는 일까지, 커피 농장의 일은 끝이 없다.

국제여성커피연맹(IWCA)의 통계에 따르면, 커피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100이라면, 이 중 75가 여성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75의 일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부분 가족 농장에서 이루어지는 부가가치가 낮은 일들이다. 돈이 되는 일들은 커피체리를 세척장에 납품하면서부터 시작되고, 대부분 남성이 주도한다. 남성들은 조합에서 시행하는 품질 향상 교육을 받고, 해외에서 온 커피 바이어들과 만날 기회도 얻는다. 수매 장부를 기입하는 일자리를 얻기도 하고, 커피랩실을 운영하며 커피 산업의 흐름도 알게 된다. 조합의 발전을 위한 투자를 기획하고 이러한 의사결정을 주도하기도 한다. 가족 농장에서의 일도 중요하지만 농부가 산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마케팅, 수출, 품질연구와 같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잘해야 한다. 공동체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리더들이 필요하지만, 여기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2019년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전통이 강한 아체 지역에서 여성 커피 농부들은 그들만의 모임 공간을 갖고 싶어 했다. 남자들 눈치 보지 않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커피 지식이 부족할 때 주눅 들지 않고 서로 묻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이 작은 공간 하나를 기반으로 탄생한 코코와가요(Kokowagayo) 커피 협동조합은 아시아 최초 여성 커피 협동조합이 되었고 한국에 첫 물량을 수출했다. 커피의 생산부터 수출까지 여성이 주도하며 산업의 주인으로 깨어난 것이다.

2020년 르완다. 아름다운커피가 ‘여성의 커피(coffee by women)’ 캠페인을 진행한 르완다 뷔샤쟈 조합의 사례를 보면, 여성이 커피 비즈니스를 주도했을 때 더 많은 돈이 아이들의 양육과 건강,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여성 농부가 손에 돈을 쥐고 가정 경제에 대한 발언력을 가질 때 공동체는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커피 산업은 여성의 품성과 많이 닮았다. 커피를 기를 때는 섬세한 돌봄이 필요하고 수확할 때는 꼼꼼한 손길이 필요하다. 커피 소비자의 건강과 웰빙을 고려하는 정직한 비즈니스를 해야 하고, 거두어들인 이익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 쓰인다. ‘여성의 커피’ 캠페인으로 생산된 커피가 품질이 월등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여성의 커피’가 생산되고 여성 리더가 활동하는 커피 생산지들은 놀랍게도 남성들의 지지와 응원이 함께 한다. 커피 섹터의 여성 소외 문제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 조합’ ‘여성 커피’라는 캠페인을 벌이지만, 본질적인 취지는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여성이 차별받고 아픈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2022년 한국. 오늘(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이름으로 표상되는 이 땅의 약자들과 손잡으려는 모두를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Coffee by Women, Coffee for All.”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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