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학교, 움직이는 청소년<3>
청소년이 주도한 국내외 지속가능경제 교육
“201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정상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참석자만 5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저를 포함해 단 다섯 명뿐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12세 나이에 ‘그린호프재단’을 설립한 케카샨 바수(Kehkashan Basu)는 지난 10일, 아름다운커피와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지속가능경제학교 포럼’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경험을 계기로 그는 청소년도 지속가능성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고, 현재 그가 이끄는 재단은 28개국에서 50만여 명의 청소년과 함께 환경 교육, 맹그로브 복원, 태양광 이동 도서관 등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속가능성 아카데미’는 청소년이 직접 강사가 되어 지속가능성과 경제 개념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강의 대신 연극, 춤, 음악, 스포츠 등 창의적인 방법을 활용해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낸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과 캐나다를 넘어 베트남, 방글라데시, 시리아·로힝야 난민 캠프 등지에서도 운영되며 교육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케카샨 바수 대표는 “청소년부터 취약계층까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며 “청소년에게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 힘이 있기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청소년 주도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청소년, 급식의 ‘탄소 발자국’을 바꾸다
포럼에서는 학교를 거점으로 청소년이 주도하는 지속가능성 활동도 소개됐다. 국제 네트워크 ‘지속가능한 학교를 위한 연합(TASS)’은 통학버스, 급식, 교복, 건물, 교육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 실현을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2023년에는 홍콩에서 ‘지속가능한 학교 급식 정상회의’를 열고, 학생들이 급식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식단의 기후영향을 따졌다. 대부분 급식이 동물성 단백질 위주로 구성돼 있어 탄소 배출이 높다는 점이 드러났고, 이에 학생들은 식물성 단백질과 채소, 통곡물 중심의 식단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행사에서는 지역 유명 셰프들이 준비한 지속가능한 점심을 학생들이 직접 시식하고 평가하는 시간이 마련됐고, 급식업체 임원들과의 토론도 진행됐다. 그 결과, 소덱소(Sodexo)와 차트웰스(Chartwells) 등 홍콩 내 50개 학교에 800만 끼 이상의 급식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저탄소 식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국국제학교(CIS) 제이드 양은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매일 먹는 급식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며 “정상회의에서는 지속가능한 식사도 충분히 맛있고 실현 가능한 것임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재활용, 약 폐기, 노동 인권까지…청소년 손으로 시작된 변화
국내에서도 청소년이 지속가능성 실천의 주체로 나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의 ‘지속가능경제학교’는 청소년이 지역사회에서 직접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기획·운영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42개 교육기관, 1520명의 청소년이 참여해 총 38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직접 단상에 올라 경험을 공유했다. 박지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엔 ‘지속가능경제’라는 말조차 낯설었지만,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어 참여했다”며 “결국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시 참여할 만큼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두 차례 활동 모두 ‘폐기’라는 주제에 집중했다. 첫 해에는 화장품 공병 문제에 주목했다.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는 재활용이 가능할 줄 알았지만,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분류돼 버려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후 그는 직접 공병 수거함을 제작해 아파트 단지와 학교에 설치하고, 재활용 캠페인을 벌였다.
두 번째 활동에서는 ‘폐의약품 폐기’ 문제로 주제를 확장했다. 그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잘못된 폐기 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의 작은 실천이 누군가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포럼에서는 초등학생 참가자들의 사례도 주목을 받았다. 송천초등학교 5학년 박시현·박준형 학생은 ‘버스 기사님의 노동환경’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뉴스에서 기사님들이 긴 노동시간과 불편한 자세로 고생하신다는 걸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는 것이 계기였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미래 연구소 진미’라는 팀을 꾸려, 버스 기사님을 응원하는 메시지와 시, 그림을 담은 달력을 직접 제작했다. 달력은 학교와 크리스마스 연합행사에서 판매했고, 수익금으로 방석·허리 쿠션·응급 키트를 구매해 기사들에게 전달했다. 전국에서 모인 중·고등학생 참가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초등학생 팀이었지만,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시현 학생은 “나의 작은 실천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경제는 단순히 돈을 벌고 쓰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혜란 아름다운커피 그룹장은 “지속가능경제학교는 청소년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경제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생산과 소비는 물론 노동과 폐기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의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실천력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