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로컬] 로컬 만들기, 두 개의 길

부산항을 마주하고 있는 섬마을 영도에 최근 새로운 명소가 또 하나 등장했다. 서울 연희동에서 연남장 등 신세대 핫플레이스들을 잇달아 선보여 온 로컬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가 주도해 지상 6층의 초대형 복합문화공간을 선보인 것. 멀리서 봐도 확연히 눈에 띄는 현대적 감각의 공간은 1층 베이커리와 4층 카페만 부분 개장 했는데도 벌써 문전성시다. 9일 방문했을 땐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고 계산대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쳐 주문하고 음료가 나오는 데만 20분가량이 걸렸다. 여의도 다섯 배 크기의 면적에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던 영도는 우리 경제 부흥기에 수많은 선박 수리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조선업 쇠퇴와 함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빈집과 빈 창고가 즐비한 전형적인 해양 러스트벨트로 전락했다. 전국 구 단위 지자체 중에서 소멸 위기 1순위 지역으로 지목돼 온 영도는 최근 몇 년 새 지역 재생의 전시장이라 불릴 정도로 새로운 재생의 바람에 들썩이고 있다. 먼저 지자체의 도시 정비 사업이 분위기를 띄웠다. 2013년을 전후해 부산시의 지역 공동체 복원 사업으로 해발 395m 봉래산 기슭의 판자촌이 ‘해돋이마을’로 탈바꿈했고 피란민 집단 거주지였던 ‘흰여울마을’은 문화마을로 재정비됐다. 2015년에는 근대 조선업의 발상지라는 영도 대평동을 재생한 ‘깡깡이예술마을’이, 2019년에는 수리 조선소 근로자들이 빠져나가 슬럼화한 동네 빈집들을 창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봉산마을’이 새 단장을 마쳤다. 관 주도 정비 사업의 흐름을 타고 민간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선물용 방울을 만드는 회사 창업주의 아들이 신사옥을 지으며 회사 이름을 따 만든 카페 ‘신기산업’은 오션뷰 맛집으로 대박을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하루 세끼, 농업의 임팩트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집의 아침 향기와 맛을 책임지는 커피는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갈아내린 뒤 아내에게 진상하듯 올리며 마틴 루서 킹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이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일들은 오늘날 복잡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근래 소풍벤처스가 가장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영역도 농수축산업과 식품 분야다. 이 분야는 생산, 운송,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고 세분화되어 있어 전체의 가치 사슬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전 세계 인구 70억 명이 하루 3끼를 먹고 있으니 이보다 큰 산업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도 농식품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농식품 시장은 2019년 대비 2배 정도 성장하며, 온라인 거래 품목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순 있어도,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식품 분야는 소풍벤처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임팩트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다. 지난 5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온 시장이자, 약 90%에 달하는 임팩트투자자들이 향후 5년간 농식품분야 투자를 늘리거나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되는 식품의 3분의 1이 폐기되고 있고,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시민단체가 알아야 할 ‘공증 예외 제도’

코로나19 초기의 충격과 혼돈을 지나 시민사회도 웨비나, 온라인 캠페인 등 활동을 다변화하며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 돌봄,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단체 내부 의결도 대부분 온라인 총회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지역 회원 등 회원 참여가 더욱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상근 활동가 중심의 운영과 활동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회원 모집 시 정기 기부 역할만 하는 기부회원을 모집하거나 대의원제도를 별도로 두고 일반회원에게는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구조를 취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단법인의 정의상 회원이 법인의 실체라고 할 것이지만 이사회 수준의 회원 수만으로 총회를 운영하는 곳도 다수 있다. 총회 의결을 위해서는 통상 구성원의 2분의 1 이상이 참석하여야 하고, 정관을 변경하려면 총 사원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위와 같은 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사의 임기가 종료되면 새로운 임원을 총회에서 선임해야 하지만 총회 정족수 미달로 이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장기간 실체와 등기가 불일치한 상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거의 없어 해산 해야 할 상황이지만, 해산을 의결할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방치된 사단법인도 여럿 있다. 총회에 참석하지 않는 회원이 늘어나면 위와 같이 단체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이 초래되므로 총회 구성원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성을 높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를 우회하기보다는 온라인 총회와 연계하여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정면승부가 필요하다. 수백 명의 회원이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모두의 칼럼] 한국서 50년 살았어도 ‘장애인 등록’ 안 해주는 정부

A씨는 중증 지적 장애인이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였다. 현재 시설에서 머물고 있는데 조만간 그가 지내는 시설이 폐쇄될 예정이다. 이 경우 다른 시설로 옮겨갈 수도 있고, 시설에서 독립해 생활할 수도 있다. A씨는 식사 및 이동을 혼자서 할 수 있고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인 활동지원 등이 제공된다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 시설 내 사회복지사들의 판단이다. A씨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자립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중증 장애인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충분히 보장해 줄 수 있는 예산과 행정력을 갖춘 국가다. 그러나 이런 A씨의 소박한 목표가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A씨가 미등록 체류 상태의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화교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중화민국(대만)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자 없이 생활한지 오래다. 어렸을 때부터 시설 안에서만 살아온 A씨에게 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비자가 없으니 귀화할 수도 없다. 한국 국적이 없으니 생계급여를 받을 수도 장애인 등록도 될 수도 없으며, 생존을 위한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지금 머물고 있는 시설에서는 직원들의 사비를 보태어 A씨의 의식주를 지원하고 있으나, 조만간 시설이 폐쇄되면 이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이 안 되어 있는 A씨를 다른 시설에서 받아줄 가능성은 적다. 무엇보다 A씨의 탈시설에 대한 욕구, 즉 독립된 주체로서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싶다는 의사가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평온한 바다를 위한 절반의 책임

수산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 편이 화제다. 지난 4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씨스피라시’. 바다(Sea)와 음모(Conspiracy)의 합성어로, 해양수산업의 이면을 떠받치고 있는 물고기 남획 및 학살, 해양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산업 어구 등을 다룬 이야기다. 다큐의 출발은 해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우며 바다를 지키고 보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플라스틱 빨대가 코 끝에 박혀 고통받는 바다거북이와 그물에 몸이 감겨 발버둥치는 해달과 같은 약한 것들에게 연민할 줄 안다. 그리고 자원봉사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러 살찐 다랑어와 잘 손질된 새우를 사 먹는다. 이것이 조금 전 실천한 바다 보호 활동을 거스르는 일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영양분의 원천인 어패류를 저렴한 가격에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바다 자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고, 이는 잦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이어졌다. 네덜란드와 전 유럽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킨 염장 청어도 1358년 변방의 어부 빌렘 벤켈소어가 생선의 내장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는 손칼을 발명한 덕분이었다. 이 손칼로, 어부들은 시간당 2000 마리의 청어를 손질할 수 있었고, 바로 염장한 청어는 1년동안 상하지 않고 밥상위에 오를 수 있었다. 보존에 자신감을 갖게 된 어부들은 더 멀리 나가 조업을 했고, 늘어난 포획량은 유럽내 상거래를 촉진시켰다. 청어 무역이 발달하면서, 당연히 항해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조선업을 발달시켰고, 또한 해운업과 물류산업을, 그리고 무역을 발달시키게 된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17세기 삼각무역의 강자로 떠오를 발판을 마련했다. 모든 기술의 진보에는 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빛과

[진실의 방] ‘김갑생할머니김’의 ESG 경영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이다!’ 페이스북을 하다가 누군가 올려놓은 유튜브 영상에 눈길이 멈췄다. 어느 기업 담당자가 자기 회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해당 게시물에는 연사를 칭찬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대체로 ‘최고’라는 반응이었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댓글도 있었다. 영상을 클릭했다. ’2021 P4G 서울 정상회의’라는 글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5월 30일부터 이틀간 열린 이 행사는 한국 정부가 최초로 개최하는 기후환경 분야 정상회의다.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행사다. 스티브 잡스의 PT와 견줄 만하다는 그 영상은 P4G 사전 행사로 진행한 강연인 듯했다. 앞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이 P4G 사전 행사에서 강연을 했기 때문에 기대가 됐다. 이번엔 누굴까.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미래전략실 본부장이 발표 무대로 뛰어올랐다. 시가총액 500조원, 코스피 1위 기업인 김갑생할머니김은 그동안 APEC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평양냉면 옆에도 김갑생할머니김이 있었다. 이호창 본부장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업이 자사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ESG 경영이라고 설명했다.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빛 김 포장지를 활용해 ‘딱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호창 본부장은 ‘김갑생 김딱지’를 통해 그 옛날 골목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가상 세계도 탄소를 배출한다

나아질 것 같으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19에 영향을 받는 것은 많지만, 그중 특히 수혜를 본 영역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일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거리 두기를 강제당하면서, 인류는 현실에서 하는 많은 것이 디지털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요즘 메타버스(Metaverse)가 폭발적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콘텐츠 영역에서 일하는 지인과, 가상 세계의 성공은 그럴듯한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게 아니라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현실 세계가 망가지는 데 달렸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디지털 전환은 인류에게 필수 불가결한 단계다. 인류 생활의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데이터가 축적되어 그것들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2010년 1분기에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회사 10곳 중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둘만이 디지털 관련 회사였는데, 2021년 1분기 시가총액 상위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를 제외한 9곳이 디지털 관련 회사라는 것이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인터넷 사용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인터넷 인구는 2004년 약 9억명에서 2020년 약 48억명으로 늘었고, 특히 중저소득국에서 빈약한 보건, 교육, 의료 인프라 등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진행하면서 모바일 인터넷 사용량은 더욱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은, 방금 전까지 눈앞에 존재하던 현실을 디지털로 전환한다고 해서 그 물리적 비용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누리던 만큼 더욱 높은 해상도로 생생하고 그럴듯하게, 또한 끊김 없이 디지털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기업공익재단의 미래

기업인의 기부 또는 기업의 사회공헌 기금으로 운영되는 ‘기업공익재단’은 사회에 대한 설립자의 철학, 그리고 기업의 도전 정신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세금으로 집행하는 정부의 복지 서비스,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비영리의 활동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서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80년대 산업화로 성장한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이 공익법인 설립을 주도하였다. 1990년대 IMF 이후 기업 사회공헌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2000년 초부터 재단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자 하는 기업공익재단의 설립이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신생 IT 기업, 게임회사 등에서도 재단 설립이 확대되고 있다. 신진 기업가 개인의 재산을 출연하거나 회사의 자원을 연결하여 단순히 사회복지성 사회공헌이 아니라 재단 출연자의 PI(President Identity)와 출연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우호적인 효과가 있는 새로운 기업공익재단이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5조원 규모의 사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으며 이 자원을 바탕으로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이언(Brian)은 김범수 의장의 영문 이름이다. 기업공익재단은 ▲설립자가 출연해 만든 설립자 중심의 재단과 ▲기업에서 자원을 출연하는 기업 중심의 재단으로 나눌 수 있다. 설립자 중심의 재단은 기업가의 개인 자산을 출연해 만든 재단으로 설립자의 철학과 헤리티지가 재단의 비전과 사업에 반영된다. 예를 들어 ‘아산재단’은 설립자인 아산 정주영 회장의 평소 소망이었던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라는 뜻에 따라 농산어촌에 아산병원(강릉·정읍·보령·홍천 등 8개소)을 설립했다. 가난해서 교육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반면 기업이 재원을 출연한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준법경영, ESG 경영의 시작

최근 ESG(환경·사회·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중요해지면서 많은 조직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인 ESG 공시기준 또는 평가기관이 요구하는 수준과는 달리 기업의 활동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횡령을 한 당사자가 기업의 ESG 위원장을 맡거나, 한편으로는 ESG 경영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경영진이 불법을 저질러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한 회사는 회사 자체적으로 ‘그린리스트(Greenlist)’라는 지표를 만들고 공신력 있는 환경지표인양 오인토록 한 후, ‘그린리스트 성분’ 표시를 해서 소비자로 하여금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처럼 표시위반을 하여 법원으로부터 위법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ESG 경영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기업은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거버넌스 측면의 노력과 성과를 알리고 싶어하는데 이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컴플라이언스, 즉 준법경영과 윤리경영이다. 지난 4월 국제 표준화기구인 ISO는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 즉 조직의 준법경영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는 인증기준을 제정하였다. ‘ISO 37301’로 명명된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은 조직 내부의 효과적인 규정준수 시스템 구축 및 실현, 평가와 개선을 위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러한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은 조직의 유형, 규모 및 성격에 관계없이 모든 유형의 조직에 적용되며 공공, 민간 또는 비영리 부문에도 적용된다. 국제 표준화기구가 준법경영 인증제도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준법경영에 대한 요구는 사실 국제 표준화기구에서 오래 전부터 강조하고 있던 사항이다. 2010년에 제정된 ‘ISO 26000’은 국제 표준화기구에서 만든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으로 각 조직이 자율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ISO 26000은 각 조직이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채용에 진심이세요?

채용 플랫폼을 운영하다 보니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님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OOO(직무명) 인재풀 좀 있으세요? 요즘 사람 뽑기 정말 어렵네요.” 대표님들의 고민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면 이렇다. 채용공고를 낸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도 지원을 안 하거나, 겨우 한두 명 지원해서 면접을 봐도 다른 데에 합격했다며 입사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난도 심각하지만 구인난도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채용을 돕는 우리 입장에서도 이해가 된다. 요즘 취업과 채용 둘 다 너무 어렵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가 막 퍼지고 심각해질 무렵, 경기 악화와 불확실성 증가로 신규 채용하는 회사가 크게 줄었는데, 동시에 지원자도 줄었다. 코로나 전이었다면 충분히 입사 지원을 했을만한 후보자들에게 직접 전화해 왜 지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어린이집 휴원이나 온라인 수업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구직을 하기 힘들다는 후보자도 있었지만 안전을 위해 구직이나 이직 의지를 접은 후보자의 수도 꽤 많았다. 불안하니까 도전이나 모험을 하는 대신 확실하고 안정적인 소위 ‘가성비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거다. 이런 분위기가 심화될수록 힘든 건 초기 소셜벤처나 스타트업의 대표들이다. 회사가 해결하는 문제, 만들어내는 혁신, 지향하는 가치만으로는 고액 연봉을 내걸고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유니콘 기업을 이기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채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초기 소셜벤처와 스타트업일수록 사람이 전부니까. 구직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약속할 수 있는 돈도, 보란 듯이 크고 화려한 사옥도 우리에겐 없지만 빛나는 지략과 진정성으로 우리의 매력자본을 만들 수

[사회혁신발언대] 가치 소비와 국제개발협력

지난해 딜로이트 글로벌에서 발표한 ‘밀레니얼 서베이 2020’ 결과에 따르면,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의 최대 관심사는 ‘환경보호’였다. MZ세대는 ‘가치 소비’의 일환으로 친환경 제품과 재활용 제품을 소비하는데, 그 기저에는 환경보호, 기후변화 대응, 평등, 정의 등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그들의 소신과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MZ세대는 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자신들의 신념에 위배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현재와 미래의 핵심 소비자인 MZ세대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펼치는 글로벌 기업들이 지속가능발전을 고려한 경영 목표를 앞다퉈 발표하고 실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1972년 로마클럽에서 발간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보고서는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이 이대로 지속될 경우 100년 안에 지구가 파괴적인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유엔은 제70차 총회에서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이행하기로 결의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환경 문제 ▲빈곤, 성차별, 교육 격차 등 인류의 보편적 문제 ▲기술, 주거, 고용 등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 역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개발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 환경(Planet)의 ‘4P’를 핵심 가치로 선정하고 협력국의 빈곤 감소, 여성·아동·장애인의 인권 향상, 성 평등 실현 등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코이카가 추진하고 있는 그린뉴딜 ODA 역시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내 휠체어 건들지 마라

세상엔 특정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드는 비용들이 있다. 여자는 생리대, 남자는 면도기, 학생에겐 교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애인에게는 장애 비용이 있다. 장애 비용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휠체어·보청기 등 보조기구 비용, 병원 외래·입원·약 처방 등의 의료 비용, 마지막으로 생활 비용이 있다. 첫 번째, 보조기구 비용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휠체어, 보조기, 재활 기구 등의 구입비와 유지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거나 중첩될 경우 비용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특히 휠체어, 보청기 등 개인에 따라 미세한 조절이 필요한 것들은 주문 제작 형식을 거치기 때문에 부담이 더 늘어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 휠체어를 함부로 만지고 장난치는 친구들에게 “이 휠체어 고장 나면 너희 가족 휴대폰을 다 팔아야 한다”고 하면 모두 장난을 멈췄던 기억이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비용을 물어줘야 한다는 게 핵심은 아니었다. 휠체어는 장애인에게 몸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건이니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것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두 번째, 의료 비용은 셋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 날 잡아 대형병원의 여러 과를 돌며 진료를 받으면 최소 3만원. 당일 실시된 처방, 검사에 따라 몇 십만 원이 드는 날도 있다. 진료가 끝나고 가만히 영수증을 볼 때마다 먼 훗날 혼자 아르바이트나 취업해 돈을 벌 때는 이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매번 처방받는 약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