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다. 정봉호(71)씨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아내를 잃고 홀로 어린 두 자식을 키웠다. 가진 건 튼튼한 몸뚱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건설 현장에서 2년간 건물을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사무용품 제조회사, 출판사 세일즈맨, 운전기사, 기관차 선로 조차(操車) 관리인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일흔 살이 넘어서야 치열함이 가고 편안함이 찾아왔다. 자식들은 제 앞가림을 할 정도로 잘 자라줬고,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여유도 생겼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그는 국제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가 ‘유산기부’를 약속했다. 전 재산인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한 채와 예금 등을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국경없는의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국경없는의사회의 첫 유산기부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약속을 확실히 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유언 공증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데 40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정씨를 지난 11일 만났다.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 버는 일만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장성하니, 아내 생각이 많이 났어요.” 지난해 여름, 우연히 국경없는의사회를 알게 된 정씨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곧바로 단체에 전화를 걸어 유산기부를 약속했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애들한테 말했더니 ‘아버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