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힘 모아 부산 중앙동의 활력 되찾다

‘또따또가’원도심 문화창작공간 “미군 부대에서 시레이션(C-ration)이라고 전투 식량을 담는 박스가 나왔어. 이게 안에 기름종이가 발라져서 비가 안 샜다고. 이 박스랑 판자를 엮어 만든 박스집들이 용두산 공원에 바글바글했다니까.” 부산 중구 토박이 임금칠(64)씨가 전하는 중앙동의 옛 모습은 한 끼 밥벌이를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의 활력으로 가득찼다. 그 후로도 중구는 “무역이면 무역, 장사면 장사, 안 되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중구, 그중에서도 중앙동은 부산 일번지였다. 그랬던 곳도 다른 오래된 도심처럼 쇠락하기 시작했다. “서면 쪽에 호텔이 생기면서 상권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1998년 시청이 이전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 1990년대 초반 8만명에 달했던 숫자가 98년 이후에는 5만명으로 줄었다. 빈 건물이 늘어갔다. 이렇게 활력을 잃어가던 중구에 최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문화 바람’ 덕분이다. 임금칠씨는 지난 9월 어르신 여덟 분과 함께 용두산 공원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14살 때부터 신문 배달하고, 인쇄업을 하면서 맺어온 사진과의 인연이 전시회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것도 평생을 곁에 두고 살아온 용두산 공원에서의 일이다. 어르신들에게 무료 사진 수업을 진행하고 전시회까지 치른 사진작가 프리야 김(39)씨는 지역에서 열리는 조그마한 전시회에 많은 후원이 쏟아져 깜짝 놀랐다고 했다. “중구노인복지회관 후원으로 전시회에 참여하신 어르신들 사진엽서를 1000부씩 만들었어요. 엽서 뒷면에 전시회 소개를 넣었는데 그건 인쇄골목에 계시는 분이 실비로 해주셨어요. 사진 인화비하고 전시회 포스터, 플래카드는 ‘또따또가’에서 제공했죠.” 지난 7월에는 ‘또따또가’에 입주한 몇몇 예술가들이 ‘중앙동 인쇄 골목에 화분을 놓자’는 취지로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작업실에서 나와

“10년 후 가장 큰 이슈는 ‘다문화’ 건강한 사회 통합 프로그램 필요해”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기업 사회 공헌과 사회복지 쪽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 ‘한용외’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이었다. 삼성재단과 삼성그룹 전체의 사회 공헌을 총괄했던 사람. 될성부른 사람은 확실히 키워주고 보수적인 삼성 조직문화 속에서도 아니다 싶으면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인터뷰는 녹록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사회 공헌은 ‘책임’이 아니라 ‘재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당을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위한 시간 확보가 쉽지 않았다. 사재(私財) 10억원을 기부해 만든 다문화지원재단 인클로버(www.inclover.or.kr) 활동과 사회복지를 주제로 한 박사 논문 집필, 최근 임명된 중앙국립박물관 이사장 역할까지 하느라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고 있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과천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다문화 캠프 현장과 9일 집무실에서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다문화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한 이사장에게 큰 화두(話頭)로 보였다. ―다문화 지원재단을 만드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앞으로 5~10년 이후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일지를 고민해보니 다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해결하려는 재단이 필요했지요.”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에서도 다문화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다문화 프로그램은 한글과 한국 문화를 중심으로 한 주입식 통합 프로그램입니다. ‘한국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해줄 때 통합 속도가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국의 책을 읽고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합 프로그램이

평화·화해에 대해 토론… ‘대화’로 허문 불신의 벽

케냐 평화 주도한 자반 아푸두 2007년 12월 27일 열린 케냐의 대통령 선거는 온 나라를 유혈사태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었다. 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며, 두달에 걸쳐 1500명이 죽고 30만명이 집을 잃었다. 폭력과 증오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피를 흘렸던 도심 한가운데서 평화를 위한 재건의 외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반 아푸두(30)씨가 2009년 주도한 케냐청년평화회의(Kenya Youth Peace Summit)가 48개 부족의 200명과 함께 포럼을 열고 평화와 화해에 대해 토론하며 갈등이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분쟁 해결의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아푸두씨를 지난 18일 부산 인디고 유스북페어 현장에서 만났다.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는 상황들이 펼쳐졌습니다. 아무도 대화를 하려 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들만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불과 2년 전에 지켜보았던 참상들을 떠올리는 자반씨는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좀처럼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2007년 12월 30일부터 폭동이 있었습니다. 이 폭동이 격화되던 2008년 초, 주변 친구들과 연속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지금 수많은 폭력이 일어나고 있지만, 매우 많은 사람들이 폭력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자반씨와 친구들은 케냐청년평화회의(Kenya Youth Peace Summit)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폭력사태가 정점에 달했던 2008년 1월과 2월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평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자반씨와 함께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이 주축이 된 이 모임은 자반이 활동하고 있던 SOS-Childrens Villages라는 NGO는 물론, SOS와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⑥ 인도 ‘베어풋 컬리지’ 벙커 로이 대표

“희망 잃은 주민에 용기 북돋우니 ‘맨발의 기적’ 일어나” 델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차를 타고 장장 10시간을 움직였다. 바로 ‘베어풋 컬리지(Barefoot College)’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산짓 벙커 로이(Sanjit Bunker Roy·65)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베어풋 컬리지는 인도의 가난한 시골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그 기술과 재능을 개발하도록 돕는 비영리 단체다. 국제구호단체가 전문가들을 파견해 ‘제공’하는 형태였던 기존의 지역사회개발 모델과 달리,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결정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자력으로 개발해 나가도록 돕는다. 이러한 혁신성 때문에, 베이풋 컬리지는 스콜(Skoll) 재단과 슈밥(Schwab) 재단 등 세계적인 기관들로부터 우수한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올해 초에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도 뽑혔다. 로이 씨가 베어풋 컬리지를 설립한 것은 1971년이다. 지역사회개발에 관심이 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찾아간 작은 마을, 틸로니아로 왔다. “약 5년간 우물을 파는 기술자로 일했어요. 정말 서툴고 숙련되지 않은(unskilled) 채였죠. 그렇게 5년간 함께 일하고 함께 살면서, 인도의 농촌 마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등지는 청년들, 남겨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은 결국 소득거리가 없어 가난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삶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베어풋 컬리지를 시작했죠.” 지역사회개발이란 존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마을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는 바로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스스로에게 있다”며 베어풋 컬리지의 정신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래서 단체의 이름도 맨발의 농촌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도우며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⑤ 英 ‘글로벌 에식스’ 창업자 던칸 구즈

“생수 팔아서 아프리카 생명수 끌어올립니다”… ‘One Water’ 브랜드 생수 판매 수익금으로 ‘플레이펌프’ 보급… 英 최고 사회적기업 반열 올라 사회적 기업이 가장 발전한 국가는 영국이다. 그 위상답게 영국에는 사회적 기업의 수가 5만5000개를 넘는다. 사회적 기업의 매출만도 50조원을 넘어, 국가 GDP의 2%, 고용의 5%를 담당하고 있다. 이 5만5000곳 중 올해 영국 기업이사기구(IOD)로부터 의장상을 수상하고, 지난해에는 사회적기업런던(SEL)으로부터 최우수 사회적 기업상을 수상한 기업이 있다. 바로 글로벌 에식스(Global Ethics)다. 철저히 시장 시스템 안에서 경쟁하면서 아프리카 빈곤퇴치에도 기여하는 글로벌 에식스의 노하우를 배워보고자 창업자, 던칸 구즈(Duncan Goose·41)씨를 찾았다. 사무실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구즈씨의 손엔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연속되는 회의 때문에 이렇게 점심을 때운단다. 정부 지원금이나 기부금 하나 없이 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그의 ‘기업가 정신’이 살짝 엿보였다. 점심시간을 뺏은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오히려 그가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어떠한지를. 구즈씨는 마케팅 및 사업기획 전문가였다. 미친 듯 일을 하던 29살(1998년), ‘이 일을 진짜 내가 원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기 시작했단다. 한참을 고민해보아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2년간의 여행 경비는 집과 차를 팔아 마련했다. 자아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일부러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지진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는 총에 맞은 적도, 어느 부족에게 잡혀 경찰의 도움으로 구출된 적도 있다. 구즈씨는 “여행 중 온두라스에서 허리케인을 만난 것이 인생을 바꾼 계기”라고

“상처받기 싫어 관심 차단… 원래부터 무기력한 아이는 없어요”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 이끌어 가는 김현수 원장 “슬픈 사람들에겐 너무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 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주어요.” 이해인 수녀의 시 ‘슬픈 사람들에겐’의 첫 구절이다. 마음이 아프고 상했을 때, 우리는 다그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가족과 친구가 필요하다. 마음이 아프고 상한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학교가 있다. 바로 대안학교인 ‘성장학교 별’이다. “예전엔 불행했는데 지금은 행복하다”는 준혁이(16). ‘성장학교 별’에 다닌 지 1년이 지났다. 왜 불행했는지 물어보자,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었단다. 아직도 준혁이는 그 시절이 편하지 않은지 고개를 돌린다. 상윤이(13)는 “60억명 중의 하나에 불과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대견하게 말했다. 학부모 김보영(44)씨는 “따돌림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아들 동우(15)가 ‘성장학교 별’에 다닌 후로 밝아졌다”고 했다. “예전엔 너무나 우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밝고 적극적이에요. 수업 발표회 때도 어찌나 씩씩하던지…. 심부름 하나도 싫어하던 애가 요즘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건 으레 자신의 일로 여겨요.” 학교폭력, 따돌림, 우울증,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 다양한 어려움과 상처를 품었던 아이들. 이 아이들은 ‘성장학교 별’에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법, 그 상처를 싸매는 법,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고 어루만져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성장학교 별’을 시작해 꾸려 나가는 사람은 신경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현수(44) 원장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들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Cover story] 김만갑 교수·굿네이버스 개발… 대한민국 적정기술제품 1호 ‘G-Saver’

추위는 물론 가족의 삶까지 데워주는 ‘적정기술’ 다섯 아이의 아버지, 푸릅돌찌(43)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몽골 울란바토르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인 하일라스트 지역.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그의 집까지 가는 길 내내 몇 번이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투덜거릴 수는 없었다. 주민의 60%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매일 이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으러 다닌다. 언덕, 언덕마다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와 판잣집이 가득한 모습은 1970년대 우리나라의 달동네를 떠올리게 했다. 푸릅돌찌씨는 초등학교 경비 일을 하며, 노모와 다섯 아이를 부양하고 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고 들뜬 푸릅돌찌씨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G-Saver 덕에 올해 아빠 노릇을 제대로 했다”며 고마워했다. ‘G-Saver’는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이 1년 중 8~9개월이나 이어지는 몽골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축열 난방 장치다. 열원(熱源) 보존시간을 연장해줄 뿐만 아니라, 매연 또한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매년 겨울 들어가는 연료비 때문에 1년 내내 허리가 휘었어요. 연료를 안 때면 얼어 죽으니, 나무와 석탄은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죠. 그래서 빚을 질 때도 많고, 연료비 때문에 가족들 먹을 것도 장만 못 할 때가 다반사죠. 그런데 새 난방장치 덕분에 연료비가 절반으로 줄어 제가 우리 아들딸들 공책·연필·신발까지 사줬다니까요.” 푸릅돌찌씨는 그동안 아빠 노릇 제대로 못 했다며 목이 멨다. 어느새 아빠 곁으로 온 둘째 딸 체르마(14)는 “아빠가 이번에 학용품을 사 주셔서 학교 가는 게 더 좋아졌다”며 배시시 웃는다. “난로에 나무를

문화의 다양성 가르치는 필리핀 레아 선생님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 아닌 소통의 시작점 되도록 설득할 것” 메콩강 인접 6개국의 사회문제… 문화 예술 통해 개선 목표… 예술가 초청, 3주간 역량 교육… 문제 해결 위한 네트워크 조직·공연… “우리의 다양성을 축하하기로 해요.” 26개국에서 모인 35명의 서로 다른 종교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레아 에스팔라르도(41)씨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3일까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주관으로 열린 교원 연수 과정에서다. 유네스코 평화센터에서 이뤄진 이 강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역사 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평화적인 대화를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열렸다. 레아씨는 메콩강 인접 6개 국가의 문화 예술가들을 육성하는 ‘메콩 프로젝트’의 총감독이면서 얼마 전까지는 록펠러재단 동남아시아 사무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녀가 요즘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메콩 프로젝트는 메콩강에 인접한 6개의 국가(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그리고 베트남)의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문화 예술을 이용해 개선시켜보자는 것이다. “2002년부터 메콩강 유역의 국가들이 아시아개발은행(ADB)에 의해 경제적으로 한 권역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급속한 개발이 벌어지고, 이 개발 속에서 소수민족 간의 갈등, 정치 난민과 이주 노동자의 발생, 성의 상업화나 인신 매매 같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레아씨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6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녀는 1년에 한 번씩 6개 국가에서 23~28명 정도의 프로 예술가들을 초청해 3주간에 걸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술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의 메시지를 공연이나 작품과 결합시키는 방법, 이 작품을 이용해 지역사회 내의 토론을 조직하는

[Cover story]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④’안데스 식료품점’ 설립자 기욤 밥스트

빈곤층에 꿈을… 일자리·저렴한 식료품에 독립심까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드리스 벤메라(Idris Benmerah·52)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프랑스에 왔다. ‘프랑스 드림(France Dream)’을 품고 이민 온 수많은 알제리인 중 하나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신 후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농사며 공사장 일이며 손에 닿는 일은 다 했다. “어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이루었지만, 도무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오히려 부양해야 할 가족만 늘어난 셈이죠. 우리 아이들에게 이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벤메라씨는 그렇게 프랑스로 건너갈 결심을 하고 2005년 홀로 지중해를 건넜다. 큰 꿈을 품고 프랑스에 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으니 일자리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직장도 집도 구하지 못한 벤메라씨는 고향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 수개월 그렇게 방황하던 중, 그는 구직상담소의 도움으로 안데스(ANDES:Association Nationale De Développement des Epiceries Solidaires)라는 곳을 알게 됐다. 빈곤층 대상의 식료품점인 이곳에서 가난한 ‘고객’들은 시중가의 10~20%에 해당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한다. 벤메라씨는 총 14개월 동안 이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며, 채소와 과일을 나르고 손으로 불량품을 골라내고 각 식료품점으로 갈 상품을 포장하고 배송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안데스 중앙물류센터에서 배달과 인턴 교육을 담당하는 정규 직원이 됐다. 알제리에 남아 있던 가족도 드디어 프랑스로 데려올 수 있었다. “두 딸, 두 아들에게 제 어린 시절과는 다른

“기다리는 분들 있어 행복… 이런 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구나”

나눔 실천하는 이발사 아저씨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평상시 복지관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던 사람들까지 지하 2층에 마련된 간이 이발소 앞을 서성거린다. 조규동씨가 익숙하게 간이 철제 의자에 앉자 조병헌(63세)씨가 이발 가운을 두르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조병헌씨가 이곳에서 이발 봉사를 한 것은 3년째. 규동씨는 “아침 10시부터 어두워지도록 하루 종일 머리를 깎는데도 매번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조병헌씨가 이발 봉사를 시작한 것은 30년째이다. 이곳을 포함, 이발소가 쉬는 매주 수요일마다 여러 복지기관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한다. 한 번 갈 때마다 보통 50명 정도의 ‘단골’이 눈 빠지게 기다린다. 사람들이 몰려 점심도 국에 만 밥만 꿀떡 넘기고 다시 가위를 잡는다. 6남매 중 장남인 조씨는 18살에 혼자 상경해 이발 기술을 배웠다. 32살에 결혼하고 집과 직장이 자리를 잡아 갈 무렵 어머니와 아버지가 1년 새 모두 돌아가셨다. 그가 이제 막 부모님께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릴 수 있겠구나, 마음먹은 찰나였다. 고향인 홍천에서 아버님 상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오는 길, 만나는 어르신들이 모두 아버지처럼 보였다. 노인정 봉사를 처음 시작한 것도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노인정이 재개발로 철거될 때까지 자원봉사를 나갔어요.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더 나이가 들면 아예 조그만 복지시설을 마련해 오갈 데 없는 분 20명 정도를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조씨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2002년부터 3년 동안은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명지대를

“연봉 절반 줄었지만 내 열정, 사람 위해 쓸 거예요”

“내가 마음 먹는 만큼 세상이 변하겠구나…” 영리에서 비영리로 옮긴 사람들 “비영리의 사람 중심 마인드와 영리의 효율성이 합쳐지면 엄청난 변화 가져올 것”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은 2010년 공채를 진행하면서 ‘세상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기업 근무자, 해외 MBA 출신, 고연봉의 쟁쟁한 사람들이 다수 지원한 것이다. “좀 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다음세대재단 역시 최근 프로젝트 담당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방대욱 총괄실장은 “얼마 전만 해도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는 실력과 열정을 모두 갖춘 지원자가 많아 누구를 뽑아야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쟁쟁한’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비영리로 옮기는 이유는 뭘까. 그 궁금즘을 풀기 위해 최근 1~2년 새 영리 부문에서 국제구호 비영리 단체로 ‘이적’한 4명의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한국컴패션의 지경영 홍보팀장(39·LG전자 근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채정아 미디어팀장(36·MTV 근무), 월드비전 길연수 해외사업본부과장(33·인천국제공항공사 근무), 굿피플 김기원 해외사업팀 주임(29·삼성전자 근무)은 만나자마자 비영리의 ‘경쟁력’에 대해 얘기를 풀어놨다. “비영리 조직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 중심’의 일 진행에 있는 것 같아요. 한 명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주 크고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운영까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거든요.”기원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때는 모든 사람이 딱 자기 분야의 일만 했어요.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제품 개발을 맡으면 끝까지 그 일만 해요. 그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팔수 있을까 같은 마케팅 아이디어는 낼 엄두도 못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 개발자 메리 고든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 헤아리는 ‘공감’ 알려주고 싶어” 캐나다에 사는 9살, 데이비드는 자폐아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적이 없다. 반 아이들에게 데이비드는 좀 이상한 아이, 함께 놀기에는 꺼려지는 아이였다. 어느 날, 데이비드 교실에 아기와 아기 엄마, ‘공감의 뿌리’ 전문 강사가 찾아왔다. ‘공감의 뿌리’는 유치원·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1년간 아기의 성장과 부모와의 소통을 경험하며 ‘공감’역량을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친구 사이엔 따돌리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아기의 성격, 감정, 아기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함께 느끼고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반 아이들은 조금씩 느끼게 됐다. 따돌림을 당하면 얼마나 괴롭고 슬플지를. 그 후 한 해 동안 데이비드는 생일 파티에 세 번 초대됐다. 이 ‘공감의 뿌리’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메리 고든이다. 1996년 개발, 2000년 교육 재단을 만들었다. 그녀는 2002년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가에게 주어지는 ‘아쇼카 펠로(Ashoka Fellow)’로 선정됐고, 2008년에는 아쇼카의 ‘체인지메이커 상(Changemakers Award)’도 받았다. ‘공감의 전문가’답게 직접 만나 본 메리 고든은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목소리에도 따뜻함이 넘쳤다. “유치원 교사로 처음 교실에 들어섰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는 열정이 넘쳤던 때죠. 그런데 처음 교실에 들어선 날 모든 열정이 무너졌어요. 불과 대여섯 살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어떤 아이는 인기 있는 스타가 되고, 어떤 아이는 패자로 낙인 찍혀 따돌림을 당해요.” 그녀는 그때부터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