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세계에 우리 나눔정신 알리는 봉사자들이 진짜 애국자죠”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미상_사진_국제구호_정정섭1_2010“내가 지난 21년 동안 한 일은 세상 곳곳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국제구호개발 NGO 기아대책의 정정섭(69·사진) 회장이 말했다. 대부분의 NGO가 가장 욕심내는 일이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는 곳곳이 전쟁터이거나 재난이 휩쓸고 간 지역이고, 굶주림과 질병에 고통받는 땅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사람을 돕는 마음을 내는 것도 힘든데, 아예 현장에 눌러 살며 그들과 함께 할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이 1000명을 넘어섰다. 77개국에 보낸 ‘사람의 역사’에 큰 획이 그어진 셈이다.

1989년 기아대책을 설립한 정정섭 회장은 “후원자 사무실 한편에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던 기아대책이 이만큼 성장했다”고 뿌듯해했다. 설립 첫해 780명에 불과했던 후원자 수는 2010년 현재 27만8000명을 넘어섰고, 1억8000만원(1989년)에 불과했던 후원금도 올 한 해 1246억원의 사업 예산으로 늘었다.

21년간의 세월 동안 정정섭 회장의 머리도 하얗게 세었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산행에서 늘 1등을 했었지만, 올해는 무릎이 속을 썩인다. ‘신념’ 하나로 전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뛰는 기아대책 식구들 얘기를 할 때는 눈시울도 붉어졌다. 가장 어려운 곳에서 빛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2030년까지 10만명의 해외 봉사단원을 파견하는 것이 목표다.

기아대책과 조선일보가 함께 한 ‘나눔의 리더십 자원봉사 대축제’.
기아대책과 조선일보가 함께 한 ‘나눔의 리더십 자원봉사 대축제’.

―왜 사람입니까.

“모금을 많이 한다고 좋은 NGO는 아닙니다. 사람이 함께 가야 믿을 만하고 확실합니다. 우리 후원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사람들이 돕게 하려면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람이 가야 대한민국이 돕는다는 걸 여과 없이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며, 우리나라 사람의 나눔, 사랑, 섬김 정신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는 사무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세계지도를 가리켰다. 지도엔 ‘지구촌 사랑과 섬김의 무대’라고 적혀 있었다. 세계 지역에 재난이 발생하거나 긴급 구호 상황이 벌어지면 늘 지도를 확인한다고 했다. “한국이 중국·미국·인도의 주인일 수는 없지만 그 나라들이 같이 나누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2030년까지 10만명 봉사단원 파견이라는 꿈을 꾸고 계십니다.

“취업이 안 돼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잘못입니다. 이들을 NGO와 결합해 해외에 보내야 합니다. 직업 외교관 수백명보다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훨씬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위를 선양하고 한국 이미지를 좋게 만듭니다. 젊은 청년들이 새로운 꿈도 꿀 수 있습니다. 2~3년 자원봉사한 나라에 정착해 살 수도 있고, 그 경험을 살려 한국에 돌아와 큰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우간다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에게 의약품을 지원하는 구호 활동을 펼친 정정섭 회장.
지난해 우간다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에게 의약품을 지원하는 구호 활동을 펼친 정정섭 회장.

―77개국 사업을 어떻게 다 챙기십니까.

“한 경영학 교수가 ‘셀프 리더’가 많은 조직이 최강의 조직이라면서 기아대책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보고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나로서도 모든 걸 입력했다간 ‘컴퓨터 용량 초과’이기 때문입니다.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빨리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해외와 국내에서 일하는 사람만 5400명이 넘습니다. 직원들 모두가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는 걸 믿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늘 감사하고 빚진 마음입니다.”

―처음 NGO를 설립할 때, 왜 해외 원조를 ‘목표’로 하셨습니까.

“우리나라 5000년 역사는 남에게 주는 문화가 제대로 없었습니다. 가족, 친척, 고향 사람 돕는 것은 해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돕는 일은 안 합니다. 처음 국제구호를 논의할 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정서에 맞지 않다, 때가 이르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거였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도 이런 마음으로 해외 원조를 하지 않았으면, 6·25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의 ‘오늘’은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 NGO가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요즘 해외 원조를 하는 NGO가 한 달에 1~2곳씩 생깁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보면 아주 작은 NGO일 뿐입니다. 미국 50개 주 각각이 대한민국보다 큽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전체 모금 시장보다 미국 한 주가 더 큰 셈입니다. 중국도 우리나라보다 30배 더 큰 시장입니다. 한국 NGO가 세계로 뻗어나가 모금을 하고 현장을 도와야 합니다. 기아대책은 아시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에서도 11년 전 4만달러를 모금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400만달러를 모금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서로 사랑하고 돕는 지구촌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1년간 77개국에 1000명 파견… 후원금보다 중요한 건 ‘사람’ 2030년까지 10만명 보낼 겁니다”
“21년간 77개국에 1000명 파견… 후원금보다 중요한 건 ‘사람’ 2030년까지 10만명 보낼 겁니다”

―통일 후도 대비하고 계십니까.

“94년 국내 최초로 평양 제3병원에 9000만원 상당의 의료기기를 지원했습니다. ‘정식’으로 한국 NGO가 북한을 도운 최초의 기록입니다. 실향민들이 항의 방문을 오곤 했습니다. ‘왜 김일성을 돕느냐’고 따졌습니다. 막내였던 경리 직원이 ‘우리가 안 도우면 누가 북한을 돕겠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도 북한에 가보기 전에는 편견이 많았습니다. 직접 가서 만나보니 북한 동포들이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정권은 미워하더라도 사람 구하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통일 준비 자체가 막혀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도 자주 갖고 민간 NGO 방문 금지도 풀어야 합니다. 남북이 교류하며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통일 비용이 엄청날 겁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시면 어떤 감회가 드십니까.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형수들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 미안한 걸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기간에 도움을 받는 사람의 기분이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기아대책을 설립하기 전까지 23년 동안 전경련에서 일했습니다. 이병철·정주영·김우중·구자경 회장 등 기라성 같은 사람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났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사람을 대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기아대책을 이만큼 키우도록 하나님이 저를 훈련시켰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목숨 걸고 오지에서 세계인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고 있는 해외 봉사단원들이 떠올라서인지, 이만큼 잘살게 되어 남을 돕는 걱정을 하게 된 우리나라가 뿌듯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50년 후, 100년 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의 동지’를 만난 듯한 마음에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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