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줄 몰라 소멸됐던 포인트 “기부한다니 정말 좋네요”
나눔은 내 삶의 일부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착한카드’ 캠페인이 첫 출발을 알린 지 오늘로 2주가 됐다. 그동안 전국의 독자들이 착한카드 캠페인 홈페이지(good.chosun.com)를 통해 속속 동참해왔다. 조선일보 공익 섹션 ‘더나은미래’는 착한카드 캠페인에 참여하는 고마운 독자들을 ‘착한가족’이라 부르기로 했다. 착한가족은 생활 속에서 매일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착한카드를 쓸 때마다 포인트가 기부되니, 차를 마셔도 밥을 먹어도 영화를 봐도 기부를 하게 된다. 착한카드 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기꺼이 착한가족이 되어준 두 명의 독자를 만났다. 편집자 주
◆최철순씨(66세)
“따르릉, 따르릉.”
착한카드 캠페인 시작을 알리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던 지난 14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착한카드를 신청하려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네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최철순(66)씨는 기자의 안내를 받아 착한카드 신청을 마치고 착한가족이 됐다.
“신문을 보자마자 ‘아, 참 좋은 캠페인이다’ 싶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카드 포인트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겠지만, 저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카드 포인트를 그대로 썩히게 마련이거든요. 어차피 소멸될 포인트로 기부를 할 수 있다니 좋은 아이디어구나 싶어 얼른 신청했지요.”
최씨는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금 유용 사건이 터지면서 기부를 하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낸 기부금이 투명하게 전달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착한카드 캠페인은 “조선일보가 한다니까” 일단 신뢰가 갔다고 했다.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정직하게 기부금을 사용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동안에는 명절 때나 연말에 개인적으로 몇만원씩 일시기부를 해왔어요. 장애인 단체에 기부할 때도 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어려운 사례를 보고 ARS 기부를 할 때도 있었죠.”
착한카드 캠페인은 지금까지 그가 해온 기부와는 전혀 달랐다. ‘한번 하고 마는 기부’ 대신 ‘1년 365일 생활 속 기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착한카드 캠페인의 기부처인 5개 비영리단체 중 최씨가 택한 곳은 굿네이버스. 캠페인을 통해 모은 기부금으로 국내 결식아동과 해외 빈곤아동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한다. 착한카드 캠페인은 최씨처럼 기부자가 직접 관심 있는 단체와 분야를 선택해 기부할 수 있게 했다. 기부자의 마음이 움직여야 기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지 3년이 되었다는 최씨는 “착한카드 캠페인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건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마음의 위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누군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착한카드의 역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영씨(59세)
“착한카드 캠페인에 참여하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되어 아이들에게 기부가 된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매달 기부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 카드를 신청했습니다.”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의 정기후원자인 오영(59)씨는 착한카드 캠페인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카드를 신청했다. 기부처는 이미 돕고있는 한국컴패션으로 했다.
오씨가 한국컴패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5년. 현재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26개국의 어린이 30명을 정기후원하고 있다. 칠순 잔치 때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후원아동들을 모두 한국에 초대하는 것이 꿈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줄리 톰보’예요. 아이티에 사는 여자아이인데 천막에 살아요. 가난해서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데, 집에선 먹지도 않아요. 다른 가족들 먹으라고 그러는 건데 정말 ‘애어른’이죠? 아이티에 지진이 났을 때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요즘 콜레라가 창궐한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이달에 가족들 쓰라고 20만원을 더 보내긴 했는데.”
그는 가방 속에서 작은 사진앨범을 꺼내 “자식들 사진”을 보여줬다. 앨범 속에는 톰보양을 포함한 30명의 후원아동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오씨는 이 사진앨범을 항상 들고 다니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에게 후원을 권유한다.
지난해까지 기아자동차 국내영업지원사업부 상무를 지냈다는 그는 요즘 한국컴패션의 일반인 홍보대사 모임인 VOC(Voice Of Compassion)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일반인 홍보대사는 직장에서, 이웃에서 한국컴패션을 알리고 후원자를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오씨를 통해 후원자를 만난 아이들만 500명이 넘는다.
그에게 ‘기부’는 숨 쉬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양로원·고아원 등에 기부를 하고 해외선교사들에게도 꼬박꼬박 돈을 보낸다.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헌혈은 지난 24일로 267회를 맞았다. 오씨는 헌혈하고 받은 헌혈증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한다.
“이렇게 기부하는 게 가족의 이해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죠. 다행히 저희 가족은 기부와 관련해서는 다 헤퍼서요.”
그가 유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난해 오씨 가족은 총 수입의 60%를 기부했다. 이제 스물일곱이 된 외동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자원봉사와 후원에 열심이다.
그는 아직 기부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착한카드 캠페인을 통해 생애 첫 기부를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착한카드 캠페인은 카드를 만들고 쓰기만 해도 자동으로 기부가 되기 때문에 “처음 기부를 해보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이었다. 사실 오씨가 가장 바라는 건 “착한카드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미래의 후원자가 생겨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