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흉내만 내는 ESG 보고서는 이제 그만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는 한 회사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전환하여 탄소 발자국을 낮추고 이를 ESG 보고서에 주요 ESG 성과로 담았다. 한 기업은 직장내 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비판을 받고 자동화와 외주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후 직장내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ESG 보고서에 공시했다. 또 다른 기업은 조직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가 중요해지면서 남성으로만 구성되어있던 이사회에 여성 사외이사(사내이사가 아닌)를 선임하고 다양성을 실천하는 기업이라고 홍보했다. 위와 같은 내용은 ESG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들 기업은 제대로 ESG 경영을 하고, 제대로 공시하고 있는 것일까. 올해 ESG 분야에서 가장 화두가 된 주제 중 하나는 ‘ESG 공시’ 였다.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 관련 공시 최종안을 발표했고, 앞서 유럽연합(EU)은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확정하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2026년 이후로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연기했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 입장에서 ESG 공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ESG 경영 활동을 공시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 보고서가 활용된다. 지난 8월 더나은미래는 국내 주요 30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하고 주요 현황을 공개했는데, 기업별로 공시 데이터의 질이 들쑥날쑥 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다른 매체 역시 어느 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오류투성이임을 밝히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ESG 보고서가 회사의 치적을 알리는 사보와 홍보물로 전락하고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기업이 만드는 ESG 보고서를 그리 신뢰하지는

[기후 유니버스] 7가지 기후 이슈로 보는 2024년

국가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도, 2024년도 이제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필자는 기후환경을 전공했지만, 전문가 보다는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한다.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다양한 이슈를 접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남들에 비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말정산 차원에서 올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졌던 기후 이슈를 몇 가지 골라보려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에서 선정했으니 내가 관심있는 주제가 여기에 없더라도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고서 읽듯이 진지하게 공부한다는 생각보다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까먹는 귤처럼 평범하게 다가가면 좋겠다. 1. 기후동행카드 시행, ‘대중교통 패스 시대’의 시작 1월 23일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이용요금 할인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는 취지다.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 중 수송부문은 약 757백만 톤으로 이 중 96%는 운행하는 차량에서 발생한다. 현재 서울뿐 아니라 인접한 김포, 남양주, 의정부, 고양, 과천, 성남에서도 이용이 가능하고, 후불형도 출시한 상황이다. 기후동행카드로 촉발된 정부∙지자체 단위 대중교통비 지원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언론 기사와 유튜브에는 어떤 것이 나에게 더 맞는 ‘대중교통 패스’일지 비교하는 컨텐츠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시행 1년이 되어가는 현 시점에서 낮은 이용률 문제, 지자체의 1000억 단위의 막대한 예산 투입 등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내연기관차 운행을 언제까지 중단할 것인지, 자가용 수요를 대중교통 수요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목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2.

[조직문화 pH6.5] 사무실 문화가 ‘파티션’에서 ‘집중빡빡타임’으로 변하기까지

“그런데 책상을 붙여 굳이 서로 마주 보고 일하는 이유가 뭐에요?” 조직에 새롭게 합류해 일한 지 3개월을 넘긴 구성원이 나에게 물었다. 아차, 우리가 왜 이렇게 일하는지를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아… 그게요. 홈페이지에 있는데요.”라는 말로 입을 뗐다. 생각해 보니 조금 우스운 말이다. 홈페이지에 조직문화가 문장으로 정리된 것과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료가 그 문화를 아는 것의 격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만큼이나 크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조직의 문화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것이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명문화된 조직문화와 실제 우리가 보내는 일상 사이의 격차가 보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우리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단어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누구라도 빠지기 쉬운 협곡이 있다. 바로 ‘존재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협곡이다. 그 협곡은 습관적 관행이라는 안개로 뒤덮여 있기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책 ‘어댑티브 리더십’에서는 조직의 현재 상태는 나름의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일상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조직의 구조, 문화, 관행은 조직을 규정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끈질기게 느껴질 정도로 잘 변하지 않는 이유는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쌓여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각 조직이 보내는 오늘의 질서는 과거의 위기를 넘게 하고 필요했던 변화가 일어나게 했던 일종의 성공 방식으로서, 현재도 매끄럽고 우아하게 작동되며 과거의 수많은 결정의 패턴을 통해 완고하게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책상을 붙이고 칸막이도

[우리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국제 보건의 숨은 자랑거리 K-백신 이야기

국제기구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으니, 한 국가의 외교는 그 나라의 문화를 많이 따라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겸손이 미덕이고, 침묵이 금이라고 배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잘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알리고 포지셔닝 하는 데 여전히 어색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것이 많은데도 깨닫지 못하거나 알아도 남들이 알아주기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오늘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해 봄 직한 K-vaccine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또 K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국제사회는 잘 알고 있는 이야기, 바로 콜레라 예방의 숨은 영웅 한국 백신의 이야기입니다. 콜레라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질병입니다.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발생해 흔히 ‘후진국 병’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전파되는 급성 설사병입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몇 시간 내로 탈수로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특히 5세 미만 아동이 가장 큰 희생자입니다. 게다가 증상이 없는 감염자가 배출한 콜레라균이 환경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특히 화장실 같은 위생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콜레라는 더욱 빠르게 확산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3년 약 54만 건의 콜레라 사례가 보고됐으며 이에 따라 4000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주로 아프가니스탄, 콩고민주공화국(DRC), 소말리아 등 분쟁 취약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콜레라 감염이 증가하는 이유에는 기후 변화와 국제적 분쟁, 대규모 난민 이동 등의 환경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후

[지역의 미래] 담당 공무원이 또 바뀌었다고요?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들과 일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일이다. 이제 말 좀 통하나 싶으면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서 새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 말이 잘 통하면 다행인데 가끔 자신의 고집을 앞세우는 공무원을 만나면 정말 난감하다. 갑자기 사업의 방향이 바뀌고 그동안 쌓은 경험자산이 한순간에 쓸모 없어지기도 한다. 순환근무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정부패 방지다. 한 부서에서 오래 일하면 유착이 생기기도 하고 제도의 맹점을 이용하기도 쉬워진다. 반대로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 가지 업무만 하던 사람보다는 여러 업무를 해본 사람의 시야가 넓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과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행정은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여러 업무를 두루 거친 사람이 조금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 인구 감소는 출산, 육아, 교육, 일자리, 주거, 교통, 여가 등 모든 문제가 얽혀 있다. 모든 분야를 근무했던 사람이 이 업무를 맡는다고 해서 모범 답안이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 업무만 했던 사람보다는 좀 더 넓은 시야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부서를 두루 거친 사람도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순환보직으로 몇 년 후면 떠나야 한다. 순환보직이 아니라도 문제다. 어떤 사람도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메이저리그의 3번 타자도 열 번 중에 여서 일곱 번은 출루하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순환보직이 아니라 경험자산이 사람에게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공익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정책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다. 존스홉킨스대 SNF 아고라 연구소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미국 시민사회의 현황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코드 포 아메리카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 테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으며, 지금도 미국 정부와 협력해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는 다양한 현장 실험(field experiment)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핀테크는 간편 결제와 같은 각종 금융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반 서비스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시빅 테크는 이용자가 공공 서비스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반 서비스를 개발한다. 미국에서는 핀테크처럼 시빅 테크도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관련된 많은 서비스와 단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코드 포 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 저소득층이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정부에 작성해야 했던 온라인 신청서를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이 디지털 정책 신청 보조 도구(GetCalFresh)는 기존에 한 시간 걸리던 식품 할인권(food stamp) 신청서 작성 시간을 평균 10분으로 단축했다. 코드 포 아메리카는 약 200명이 일하는 일종의 대규모 시민 단체로, 미국의 국세청(IRS) 같은 연방정부와 15개 주정부와 협력한다. 필자는 코드 포 아메리카의 캘리포니아, 뉴욕, 콜로라도, 뉴멕시코 담당 데이터 과학자로 활동했다. 지금도 코드 포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긴밀히 연구 협력 중이다. 코드 포 아메리카 외에도 미국 정부 내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시빅 테크 기관으로는 백악관의 디지털 서비스청(USDS)이 있다. 이 기관은 코드 포 아메리카를 창립한 제니퍼 폴카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부문 CTO(차관급)으로 재직하며 설립했다. 디지털 서비스청에는 약 230명이 근무하며,

이호영 십시일방 대표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임팩트 오마카세

오마카세의 사전적 정의는 손님이 주문할 음식을 가게의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주방장은 손님의 취향, 알레르기, 포만감 등을 고려하여 알맞은 음식을 내어준다. 정해진 메뉴를 제공하는 일반 음식점과 비교했을 때 오마카세는 손님에게 맞춤형 다이닝 경험을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임팩트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을 이에 대입해 보았다. 먼저 일반 음식점처럼 사전에 정해진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방식은 균질한 제품과 서비스를 많은 사람들에게 스케일업(scale-up)하여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방식은 오마카세처럼 상대방의 상황에 적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개인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케일딥(scale-deep)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각각의 특성을 띤 서로 다른 2개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하나는 ‘십시일밥’이고 다른 하나는 ‘십시일방’이다. ◇ 십시일밥, 사전에 정해진 것을 제공하는 ‘일반 음식점형’ 십시일밥은 취약계층 대학생들에게 식권을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한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취약계층 대학생 1명당 약 20~30장의 식권을 전달한다. 필자가 대표로 있던 기간 동안 약 10만 장의 식권을 전달했으니, 중복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2000여 명의 취약계층 대학생에게 도움이 전달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십시일밥 식권을 받는 사람들의 삶이 변했나요?’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식권을 신청하신 분들께 식권을 보내드렸을 뿐, 그분들의 삶에 깊이 있는 변화를 일으켰다’고 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의 고된 삶이 식권 몇장으로 인해 나아질 수 없다. 한 끼 식사 걱정을 더는 것 외에 그가 겪을 수많은 어려움이

[조각 맞춤] 감응의 파트너십

‘파트너십’은 쉬운 듯 어려운 말이다. ‘서로의 이익 증대를 위해 함께 일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뜻일 텐데 파트너십이란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지 그 앞에는 늘 수식어가 붙는다. 동등한 파트너십, 대등한 파트너십, 그리고 동반자적 파트너십까지. 모두 위계 없이 각별히 잘 지내보겠다는 뜻인데, 수사를 붙이면 붙일수록 어쩐지 더 아리송한 말이 된다. 내가 아는 가장 선명하고 쉬운 해석을 소개한다. 비영리기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함께 일한 선배가 알려준 실전형 가이드이다. 사전적 정의나 화려한 수사로 존재하는 ‘파트너십’이란 단어를 현실로 끌어내려 사고하도록 이끌어준 조언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아래 3가지를 기억하자 했다. 첫째, 우리는 왜 파트너와 함께 일하나? 혼자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기에 함께 한다. 파트너가 내 일을 대신해줘서, 비용이 덜 들어서가 아니다. 둘째, 파트너십의 기본 조건은 무엇인가? 내 일과 파트너 사이에 겹침이 없어야 한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만나야 한다. 셋째,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익숙하고 편한 상대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춰야 한다. 최고와 함께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서로가 일의 기준을 높일때라야 점진주의를 넘어 도약한다. 일의 결과가 나아진다.  임팩트 스타트업에 합류해 7년째 일하다 보니 시나브로 실전에 뛰어든 기분이다. 학습이 어려운 아이도 성공적으로 배우도록 돕는 디지털 교육 도구를 만들어 전 세계 여러 나라, 특히 교육 격차가 큰 지역의 학교, 교사, 아이들에게 닿고자 한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교육 현장을 지키는 파트너와 함께할때라야 가능하다. 국제기구, 정부,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평] 조속한 타결 위한 국제사회 노력 계속돼야

산유국의 이기주의,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 발목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주요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이번 협상에서 플라스틱 최다 생산국인 중국이 예상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강력히 거부하며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협상 결렬의 주요 쟁점은 ① 1차 플라스틱(폴리머) 생산 규제 ② 유해 플라스틱 및 화학물질 퇴출 ③ 협약 이행 재원 마련 방안 등이었다. 이번 협상에서는 최소한 ‘선언적 협약’이라도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으나, 산유국들의 반대로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방해하는 산유국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정부와 부산시가 2022년부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이번 협상은 글로벌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산유국과 선진국 간의 갈등을 좁히는 데 실패하며, 더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중재 역할이 부족했다는 비판과 함께 선언적 합의조차 도출하지 못한 점은 이번 회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플라스틱 오염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글로벌 위기다. 전 세계에서 매년 약 4억6000만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지만,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 한국도 플라스틱 오염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으며, 하루 약 1만2000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본 의원이 발의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무상 제공을 금지하며, 국내 플라스틱 사용 감축의 중요한 출발점이

[사회혁신발언대] 임상시험 담당자로서 환자와 공감한다는 것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기업철학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회사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일하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회사 에자이는 모든 직원이 기업철학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며 일하는 곳이다. 에자이의 기업철학인 hhc(human health care)는 환자와 그 가족을 헬스케어의 중심으로 보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이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약 1만 명의 에자이 직원들이 이 철학을 바탕으로 환자와 가족의 관점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본사에는 hhc 활동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가, 한국에자이에는 기업사회혁신 부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2년 6개월 전, 에자이 의학부 임상 담당자로 입사했다. 임상시험 기획과 운영을 통해 신약 개발을 돕는 업무를 맡아왔다. 입사 초기에는 hhc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환자를 중심으로 약을 개발하는 건 제약회사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저 내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 부서에서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여한 혈액암 환자와의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의외로 임상시험 담당자로서 환자와 직접 마주할 기회는 거의 없다. 나 역시 임상 업무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이 인터뷰는 hhc 철학의 의미를 몸소 체감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은 임상시험과 관련된 실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겪은 불편함은 무엇이었는지?”, “제약회사가 개선해야 할 점은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우리는 ESG의 목적과 의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적) 성과에 대한 각종 평가결과가 공개되고, 해당 분야의 시상식도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년간 ESG 경영이 경제계뿐 아니라 공공과 비영리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ESG는 더 이상 새롭거나 낯설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으로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던 듯하다. 예를 들면 ESG 경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ESG 경영을 도입하면서 혼란을 겪는 조직도 있었고, 환경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ESG’를 접두어처럼 붙여 사용하며 ESG에 대한 본질을 흐리고 대중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와 함께 ESG를 개념화하고 실제화했던 금융기관들은 현재 ESG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SG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블랙록과 뱅가드 등 주요 자산운용사는 환경과 사회 이슈, 즉 ESG와 같은 주주제안에 대한 지지를 수년째 줄이고 있다. 실제로 블랙록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환경과 사회 관련 제안 중 4%에 해당하는 20건만 지지했고, 뱅가드는 단 한 건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면 투자자의 ESG에 대한 관심은 왜 식었을까? 아니, 실제로 식지는 않았지만 마치 식은 것처럼 보일까? 그 이유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발간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로 리뷰(Harvard Business Law Review)에 게재된 펜실베니아대학교 로스쿨 총장이자 교수인 리사 페어팩스가 쓴 ESG 관련 논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리사 페어팩스 교수는 우리 사회가 ‘ESG의 목적과 의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잘못된 ESG가 아무런 여과 없이 전파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벤처, 건강하게 성장하기] 착한 조직과 건강한 조직은 동의어가 아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력직 구성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고민거리가 있다. 노을에서는 뭔가 더 친절하게 행동해야 할 것 같고, 동료가 잘못을 해도 함부로 지적하면 안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수직적인 기업 문화를 경험했던 이들일수록 이런 문화적 압박을 낯설어한다. 그때마다 녹음기 틀듯이 하는 답변이 있다. 노을은 건강한 조직을 지향하는 것이지, 착한 조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 둘을 헷갈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이 메시지는 신입 구성원 온보딩 교육에서부터 강조하는 내용이다. 또한, Work Ethic 교육, 전사 타운홀 등에서도 반복해서 전하는 핵심 내용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착한 조직과 건강한 조직이 뭐가 다른지’, ‘다 좋은 조직을 만들자는 의미인데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지인들로부터 가끔 접하는 반응이기도 하고, 또 틀린 말도 아니다. 착한 조직이든, 좋은 조직이든, 건강한 조직이든 바람직한 모습을 향한 의지와 진정성이 중요하지, 용어나 방식은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용어나 표현을 칼같이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머릿속 개념의 미묘한 차이가 조직 운영의 현실에서는 어떤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알 필요는 있다. 그래야 함정에 빠지지 않으니까.  ◇ 착한 조직의 함정 1: 파괴적 공감  착한 조직과 건강한 조직에 관한 인식과 행동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조직 내 피드백 관행이다.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은 보통 동료 간 피드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