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기업의 미래? 아니 현재!

기업 없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기업에서 일하고 기업이 파는 상품과 서비스로 살아간다. 역사상 유례가 없던 코로나 시기도 기업의 비대면 서비스와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기업은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기업을 곱게만 보지는 않는다. 지속가능성과 ESG가 화두가 된 시대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새로운 기업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고 있다. 지배주주의 단기적 이익보다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직원을 존중하고 소비자를 우선하며 공급망과 함께 하는 기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기업. 이런 기업이 과거에도 있었으니 새롭다는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ESG 시대를 맞아 이런 기업이 새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기업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이런 기업을 ‘목적 지향 기업’(purpose-driven company)이라 부른다. 이익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목적 지향의 브랜딩은 강력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결국 재무성과도 향상시킨다고 한다. 포브스(Forbes) 기사 중에는 “모든 기업이 목적 지향 기업으로 변모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목적 지향 기업은 아직 생소하다. 여전히 비주류이다.  새로운 법인격 기업의 목적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법인격이 등장했다. 베네핏 기업(Benefit Corporation)은 그 예이다. 베네핏 기업법(Benefit Corporation Law)은 201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시작해 미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페루, 르완다, 우루과이 등으로 퍼져 나갔다. 베네핏 기업은 여러 면에서 기존 기업과 차이가 있다. 이윤(profit)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앞으로 유망한 투자 분야를 누군가 물어본다면

임팩트투자를 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에 “어떤 분야가 앞으로 유망할까요?”가 있다. KT&G 상상서밋에서 ‘사회혁신가로 살아온 10년, 앞으로의 10년을 상상하다’란 주제의 기조강연 후 받은 질문도 유사했다.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투자하다 보면 몇 년에 걸쳐 새롭게 부상하는 주제들을 미리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곤 한다. 반려견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직전 펫테크(Pet Tech)가 동시다발적으로 부상한 적이 있다. 클린테크(Clean Tech)를 넘어 기후테크(Climate Tech) 역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과 정책 방향이 강화되기 직전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정 환경 조건이 존재함을 나타내는 식물을 ‘지표식물’(indicator plant)이라 부르듯, 특정 영역의 혁신 수요가 증가함을 선제적으로 알려주는 이런 스타트업은 ‘지표 스타트업’(indicator start-up)이라 볼 수 있다. MYSC는 올해 총 130억원을 47건의 투자로 나눠 집행했다. 누적으로 총 투자금액은 300억, 그리고 누적 투자건수는 160건에 달한다. 올해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육성한 기업 수는 267개에 달한다. 투자 집행을 하고 직접 육성을 하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부터 부쩍 빈도가 많아짐을 느끼는 ‘지표 스타트업’들이 있다. 바로 ‘인구변화’와 관련된 스타트업들이다. 아직 이렇게 부른 적은 없지만 ‘인구테크’(population tech)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일만하다. 이와 관련된 스타트업은 시니어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시니어테크가 주를 이뤘다. 투자한 기업으로는 시니어 맞춤형 1대1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무빙 컴퍼니’와 시니어를 위한 여행 및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페런츠’ 등이 있다. 하지만 인구테크는 시니어를 넘어서 인구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수요까지도 포함하기 시작했다. 농어촌 지역에 늘어나는 빈집을 공동소유 가능한 세컨하우스로 탈바꿈해 제공하는 ‘클리’, 1인 주거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리더들의 에너지 관리법

직장인들이나 리더들과 대화하다 보면 의외로 많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또는 “번아웃을 어떻게 예방하나요?” 가 그것이다.  어떤 영상을 보니 한 분이 이런 말을 한다. “소고기를 시켰는데 닭고기가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나는 그냥 먹는다. 또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럼 그냥 가게 한다. 이유는 괜스레 별거 아닌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분노하고 에너지를 쓰다 보면 막상 에너지를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한다.” 사람마다 에너지의 크기는 다르지만 그 총량은 한정돼 있다. 에너지가 다하면 ‘번아웃’이 온다. 그러므로 번아웃을 예방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①웬만한 데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고 에너지를 아낀다.②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이나 환경을 멀리한다.③에너지를 주는 환경에 자신을 놓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는 휴식, 음악, 영화, 야외활동, 독서, 걷기, 모임, 명상 등 사람마다 다르다. 만사에 예민하고 완벽해지려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든다.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려다 보면 에너지 소모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번아웃되기 쉽다. 에너지를 뺏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에너지가 빨려 위험하다. 불평불만이 많은 분들은 스스로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고 주위의 에너지도 소모한다. 그러므로 불평, 불만, 다툼, 사소한 일에 가능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매사 열정적인 리더분들 중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번아웃을 겪어본 적이 없어. 매사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 과연 그럴까? 물론 보통 사람의 에너지 총량이 100이라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200일 수 있다. 그런데도 200이 넘으면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을 위한 금융

벤처 투자는 ‘로컬’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벤처 투자의 속성부터 알아야 한다. 벤처 투자는 리스크가 커서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에서는 도저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왜 리스크가 크다고 할까. 첫째, 리스크를 측정하려면 뭐라도 측정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신생 회사다 보니 업력도 없고 매출도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창업자가 사회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불과 몇 년에 불과하다. 둘째, 아무도 해보지 않은 사업모델이거나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도 아직 검증이 됐다고 하기엔 이르다. 리스크가 큰 정도가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벤처투자의 속성을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하고 벤처투자자들이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사람의 됨됨이만 보고 투자하는 건 아니다. 벤처투자자들이 반드시 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매출 또는 기업가치가 빠르게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수익성도 커야 한다. 이 두 지표는 시기에 따라 비중이 다른데 시장이 너그러울 때는, 다시 말해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성장성이 큰 기업을 선호하고 시장이 어려워지면 성장성보다도 수익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벤처 투자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벤처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그럼 이 기준을 로컬에 적용해보자. 로컬을 비수도권에 위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로컬 아이덴티티를 사업화한 스타트업이라고 한다면, 일단 성장성부터 걸린다. 여기서 스타트업은 초기 창업기업의

나민수 아산나눔재단 선임매니저
[사회혁신발언대]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에 나타난 세 가지 변화

내년 소셜섹터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그 힌트를 아시아의 사회적가치 창출 지원기관이 한데 모인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 네트워크(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AVPN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여러 세션 가운데 투자 형식으로 자선사업을 펼치는 ‘벤처 필란트로피’ 관련된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신뢰 기반(Trust based)’과 ‘담대한 필란트로피(Bold Philanthropy)’, 그리고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였다. 기부자와 단체 간 신뢰 기반의 필란트로피 벤처 필란트로피에서 기부자와 기부금·보조금을 받는 단체 간의 신뢰를 강조하는 담론이 등장한 배경은 바로 팬데믹이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국제개발과 비영리 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국제개발 분야는 기부자와 현지 단체가 지리적으로 나뉘어 있어 국가·지역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현지 단체에 현장 사업 운영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 청년들을 위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인 ‘아큐먼 아카데미 말레이시아(Acumen Academy Malaysia)’다. 말레이시아 ‘YTL 재단’과 세계적인 비영리 벤처캐피털 ‘아큐먼’은 갑작스러운 팬데믹 때문에 최초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글로벌 강사와 참가자 사이 시차, 온라인 교육의 효과성 등 염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큐먼의 발자취를 믿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팬데믹이라는 역경이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도전을 촉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 과정에서 얻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축적된 협업 경험들은 기부자와 단체 간의 신뢰를 다지며 필란트로피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담대한 필란트로피 그동안 임팩트 투자가 보다 역동적이고 과감한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뉴욕 지하철, 살아 숨 쉬는 책들의 비밀기지

빅애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뉴욕의 애플화.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찾은 뉴욕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였다. 대중교통은 물론 키오스크 같은 일상의 영역이 애플페이로 움직인다. 타고 있던 지하철 호선이 갑자기 바뀌거나 연착되는 건 여전하지만. 차량 공유 플랫폼 우버, 리프트의 새로운 대항마로 등장한 테슬라 전기차 레벨까지 앱마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가격을 비교하다 지쳐 옐로캡을 잡아도 애플페이 결제는 웰컴. 지하철 여기저기서 버스킹하는 뮤지션을 만날 때마다 뉴욕을 실감하지만 그사이 승강장에서 묻지마 떠밀기 같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도 증가했다. 현지인에게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재확인할 때면 ‘Safe Trip’이라는 인사가 뒤따랐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보다 더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던 할렘 교회의 가스펠은 다음을 기약했다. 그 방향의 지하철에서 탄피를 발견했으니 조심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아이들과 책 읽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평화로운 풍경을 꽤 자주 목격했다. 뉴욕의 독서율이 높은 건 지하철 와이파이가 먹통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가방에 가벼운 페이퍼백 하나 정도는 가뿐히 넣어 다니는 일상이 부럽기만 하다. 화창한 날의 센트럴파크나 길가의 카페에서 종이책을 펼쳐 든 사람을 쉽게 목격하는 것도.  우주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우리는 관성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존재다. 조금 무겁고 귀찮더라도 가방의 한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 시간의 빈틈에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다시 초대하고, 곁에 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면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은 문장이 쌓인다. 읽고 보는 대상이기 전에 책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두서없는 발걸음으로 오래된 서가 사이를 종횡무진하다 고른 건 ‘지금 여기’가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은 왜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지 않을까?

한국 기업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행동을 하는데 소극적이다. 각자 움직인다. 경쟁 관계이므로 공익을 위한 협력도 어려운 것일까? 문제 해결보다는 기업의 성과나 홍보가 중심이기 때문일까?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는 개념이 들어왔지만, 스타트업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모색하는 정도이다. 산업 내부의 협력이나 기업간 연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의 ESG 이니셔티브에는 가입하면서 정작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니셔티브는 거의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은 심각한 환경문제 중 하나다. 관련된 한국 기업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통업, 음료업, 식품업, 화학산업 등 업종별 공동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간 공동행동을 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말이다.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사업은 SK그룹이 2015년부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또는 소셜벤처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한 뒤 보상한다.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그에 기반해 ‘보상’하므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된다. SK그룹은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들은 보호종료아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보호종료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 분리된 위기아동의 문제를 풀기 위해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거나 공동행동을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니레버는 2008년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유니레버가 사용하는 팜유 생산과정에서 열대우림과 오랑우탄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팜유는 비누와 샴푸, 초콜릿과 빵 등에 널리 사용되는 기름이다. 팜유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
[D.MZ 칼럼] 청년 활동가들은 이렇게 연결된다

선배 활동가들을 보면 부러웠다. 연륜과 경험, 빠른 정세 분석,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발언, 필요하면 뚝딱 써내는 성명서와 논평….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선배들의 끈끈한 연대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서로 돕고, 당연하게 의지하고, 든든하게 일을 나누는 연대. 선배들의 연대는 업무적인 연대를 넘어서서 정서적인 지지가 되기도 했다. 평일에는 업무 연대로 만나고, 주말에는 취미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동료’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너무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동료가 필요했다. 힘들 때 손을 내밀 수 있고, 당연하게 그 손을 잡는 끈끈한 연대가 필요했다. 청년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그런 자리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기회를 만들어 봤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기록단’의 ‘요즘 것들 이야기’는 총 11명의 청년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였다.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어렵고 힘든지, 그런데도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두 시간은 기본이고, 네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비슷한 경로로 활동을 시작했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비슷한 것들을 활동의 원동력으로 꼽고 있었다.  청년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경험하며 거리로 나와 행동했고, 그 행동의 경험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활동하면서는 조직 내에서 느끼는 소통의 문제와 가족·지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등의

최한빛 마이오렌지 콘텐츠에디터
[D.MZ 칼럼]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감각

‘소셜섹터’나 ‘임팩트 생태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작 내가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업무 특성상 소셜섹터 내 여러 소식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또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하지만, 때로는 붕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만드는 임팩트가 선명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업무 중 느끼는 혼란한 마음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어쩌면 그 시기를 이미 통과해 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보다 그저 지금 나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 앞에 있는 그대로 꺼내어 보고 수용 받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 시기에 소셜섹터 활동가들의 네트워킹 모임 ‘D.MZ’에 참여하게 됐다. 직장 밖 동료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또래들과 편안한 대화 그 자체로 기대됐다. ‘D.MZ’는 첫 모임부터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원하는 닉네임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원치 않으면 굳이 소속을 밝히지 않아도 됐다. 모임 중간중간 우리를 안심시키는 운영진에게서 이곳이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덕분에 경계를 허문 채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뭘 굳이 잘 하지 않아도, 슬쩍 약한 모습을 내비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모임은 3주간 매주 수요일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진행됐다. 지금까지도 각 회차가 제법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다 같이 빙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첫 모임이 인상적이었다. 말을 꺼낼 때마다 일제히 나를 향하던 시선들,

김현숙 서울YWCA 간사
[D.MZ 칼럼] ‘안 될 것 같은 일’을 지속하는 힘은?

모 홍보대행사 재직 시절, 주변 동료들은 늘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다투며 일했다. 특히 어느 기업 오너의 부정기사라도 나는 날이면 컵라면도 반납하고 연신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아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출퇴근 때마다 다짐했고 결심했다. 이렇게 살지 않기로. 사장님이 아닌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선한 마음으로, 그리고 매출 목표가 아닌 조금 더 숨통이 트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비영리 단체에 문을 두드렸다. 사실 비영리에 엄청난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로 입사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세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곳 시스템에 많은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돈 얘기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늘 재정 걱정에 시달렸고, 대의를 내세우며 당장의 물질적 이득을 내칠 때는 우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무려 100년도 더 전에 기독 여성들이 의기투합하며 만들어졌다. ‘여성’과 ‘기독교’라는 특수성이 공존한다. 이 때문인지 가끔 이유 없는 질타와 욕을 먹기도 하는데, ‘제로웨이스트’나 ‘기후위기대응’ 캠페인을 할 때면 이유 없이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하기에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가 눈떠서 생활하며 아무 의식 없이 지나쳐 온 모든 시스템, 법적 규제, 사회적 합의 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은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며 많은 선배들이 사회적 아젠다를 던지고 싸워 결과를 이뤄왔다. 그렇다 보니 50여 년 넘게 우리 단체를 지켜봐 온 선배들과 2023년을 살고

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

오랜 인연을 이어온 미국의 한 대학교 영화과 교수가 올 여름에 한국에 다큐를 찍으러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그는 지난 7년 간 필자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폐기물과 쓰레기 이야기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Right to Forget, Duty to Remember)’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용하고 나서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물을 버립니다. 버리는 행위는 그 대상물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버린 쓰레기와 폐기물의 흔적을 남기게 되고, 다음 세대는 이 흔적으로 우리를 기억하게 됩니다. 폐기물이 남긴 흔적에 우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멀리 바다나 산 속에 버린 쓰레기로 고통받는 거북이나 고래, 코끼리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거대한 소각장과 매립장 그리고 다양한 폐기물 처리장 등은 이미 사회의 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가 편리하고 풍요롭기 위해 소비한 이후의 모습들입니다. 실제로 재활용선별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재활용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며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분리배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지고 싶은가?”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더럽고 못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이나 포장재, 일회용품을 사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모금에도 ‘넛지 전략’이 필요한 이유

모금이란 무엇인가. 모금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목적사업)을 다양한 대상에게 다양한 소통방식으로 알리고, 공감을 형성하고 그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여러 공익단체가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각자의 목적과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맥락과 정보와 자원을 가지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단체가 성공적인 모금을 하려면 과연 단체에 맞게 ‘적절한 준비를 했는가’를 묻게 된다. 적절한 목적인지, 적절한 대상인지, 적절한 매체인지, 적절한 내용인지, 적절한 금액인지, 적절한 타이밍인지. 모금의 성공 공식은 정해진 게 아니라는 뜻도 된다.  누군가로부터 크든 작든 돈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누가 줄 수 있는지’를 찾게 된다. 보통은 정부, 기업, 기부자 등을 떠올리지만, 재정확보의 확장적인 개념으로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까지 고려한다면 구매자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 재정이 확보되려면 돈을 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먼저 탐색하고 기회를 엿봐야 한다. 자금을 제공하는 주체별로 특이점이 있긴 하나 모두 돈 받을 자격과 가치를 따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다 비슷하다. 이렇게 보면 모금은 일종의 투자 유치 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양한 제공자로부터 재정을 어떤 방식으로 확충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즉, 받는 게 있다면 무언가를 대가로 줘야 한다. 받고자 한다면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부 측면에서 보면 돈에 상응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가로 줘서는 안 된다. 기부는 반대급부 없이 무상으로 받는 것이다. 돈에 상응하지 않는 대가는 돈으로는 따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