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십’은 쉬운 듯 어려운 말이다. ‘서로의 이익 증대를 위해 함께 일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뜻일 텐데 파트너십이란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지 그 앞에는 늘 수식어가 붙는다. 동등한 파트너십, 대등한 파트너십, 그리고 동반자적 파트너십까지. 모두 위계 없이 각별히 잘 지내보겠다는 뜻인데, 수사를 붙이면 붙일수록 어쩐지 더 아리송한 말이 된다.
내가 아는 가장 선명하고 쉬운 해석을 소개한다. 비영리기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함께 일한 선배가 알려준 실전형 가이드이다. 사전적 정의나 화려한 수사로 존재하는 ‘파트너십’이란 단어를 현실로 끌어내려 사고하도록 이끌어준 조언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아래 3가지를 기억하자 했다.
첫째, 우리는 왜 파트너와 함께 일하나? 혼자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기에 함께 한다. 파트너가 내 일을 대신해줘서, 비용이 덜 들어서가 아니다.
둘째, 파트너십의 기본 조건은 무엇인가? 내 일과 파트너 사이에 겹침이 없어야 한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만나야 한다.
셋째,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익숙하고 편한 상대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춰야 한다. 최고와 함께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서로가 일의 기준을 높일때라야 점진주의를 넘어 도약한다. 일의 결과가 나아진다.
임팩트 스타트업에 합류해 7년째 일하다 보니 시나브로 실전에 뛰어든 기분이다. 학습이 어려운 아이도 성공적으로 배우도록 돕는 디지털 교육 도구를 만들어 전 세계 여러 나라, 특히 교육 격차가 큰 지역의 학교, 교사, 아이들에게 닿고자 한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교육 현장을 지키는 파트너와 함께할때라야 가능하다. 국제기구, 정부, 비영리기구, 학교, 혹은 주민 공동체와 손을 잡지 않고 스타트업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파트너십이란 산을 오르는 동안 어떤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에누마와 4년째 함께 하는 파키스탄의 Teach the World 재단(이하 TTWF)과의 협력에서 경험한 바를 나눠보려 한다.
TTWF는 파키스탄에서도 자연재난이 잦고 빈곤율이 높은 신드 주에서 교육 사업을 하는 비영리기구다. 학교밖아동이 600만 명이 넘는 나라, 특히 여아 청소년의 교육권 박탈이 심각한 지역에서 ‘기초 교육의 실패는 너무나 크고 만연해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다’는 편견에 도전하는 일을 한다.
이 재단은 2021년부터 ‘마이크로스쿨’ 사업 모델을 만들어 확산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한 켠에 간이 책상 서른 개와 태블릿 30대를 마련하고, 7세~14세의 학교 밖 아동 100명을 초대한다. 홍수가 잦은 지역에서 자연재난으로 이사를 다니느라,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해서, 기초가 약한 탓에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서.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다닐 기회를 놓친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이른바 ‘속성 기초반’ 과정을 공부한다. 그 아이들 곁에 학습 소프트웨어 ‘에누마스쿨’이 있다. 기초가 약한 아이들, 저마다 학습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 개별의 학습 과정을 잡아주는 디지털 학습 도구다.
작고(‘마이크로’) 엉성해 보이는 이 학교는 실제로는 큰 임팩트를 낸다. 일하다가 달려와 하루에 40분씩 공부를 하고 돌아가는 시간이 열 달쯤 쌓이면, 어느 아이는 자기 나이에 맞는 학년에 편입해 학생이 되고, 다른 누구는 여전히 학교에는 못 가지만 이제부터는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이 모델은 비용이 적게 들고 빠르게 확산이 가능해서 단 번에 신드 주 정부의 눈에 들었다. 2023년~2024년에는 주 정부 교육재단 기금으로 125개 학교를 열었고, 얼마 전에는 2025년에 300여개 학교를 새로 여는 안이 주 의회를 통과했다.
TTWF은 비용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기관이지만 매년 적지 않은 비중의 사업비를 학습 소프트웨어를 큐레이션 하는 데 쓴다. 첫 만남에서 파트너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우리에게는 무료이면서 적당히 만든 학습 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학습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도록 하는 검증된 학습 도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누마와 함께 일한다” 라고 했다. 좋은 학습 도구를 갖기 위해 펀드레이징을 하는 것이 TTWF 역할이고, 좋은 학습 도구를 만드는 것이 에누마의 역할이니 서로의 영역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하자고 했다.
4년이 넘도록 TTWF팀과 얼굴 한 번 직접 본 적 없이 랜선에서 일했지만, 그 시간을 거치며 아래를 새롭게 배웠다. 혹은 아래처럼 생각이 바뀌었다.
첫째, 좋은 파트너십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깐깐하게 파트너를 찾는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모질다 싶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태도다. 그런데 겪어보니 어느 한 쪽의 바람이나 필요만으로 완성되는 파트너십은 없었다. 내가 상대를 원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원하는가? 하는 (혹은 그 반대의)질문 앞에서 정직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질문에 답이 서면 하나의 목표를 두고 서로 할 일이 명확해진다. 이런 파트너십이라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일일이 서로를 점검하지 않아도 일이 앞으로 나아간다. 협업이 가져오는 사회적 임팩트도 커진다. 반대로, 짝사랑은 어렵더라. TTWF과의 협업이 이를 비로소 직시하게 했다.
둘째, 파키스탄 현지 비영리기구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내 파트너는 느리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전략적이다. 처음 10개~20개 학교를 여는 게 더디었던 이유는 현지에서 작동하는 모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외부인 전문가로 자리를 채우는 대신 현지 스텝의 속도에 맞춰 여러 방안을 실험했다. 일단 그 시간을 지나자 속도가 붙었다. 그들의 전략을 몰라보고 조급했음을 반성한다. 덕분에 내가 나서야만 일이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아는 감각, 더 중요하게는 남이 서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않고 비워두는 것이 전문성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셋째, 마지막으로 기초 교육 문제는 거대하고 만연해서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민간의 좋은 실천 사례가 정책으로 자리 잡기는 드문 일이지만 그런 일은 언제든 일어난다고 믿기로 했다. 민간이 먼저 움직이면 정부가 감응한다. 세상에는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오랜 시간 단단한 가이드가 되어 준 선배의 조언 위에 내 버전의 지침 하나를 조심스레 보태 보려 한다. 파트너십에 앞에서 어떤 태세가 필요한가? 정답을 정해두기보다는 행동하면서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익숙한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상대를 만나 반응하며 마음이 따라 움직이는 시간, 내 안의 변화를 기꺼이 끌어안는 ‘감응의 시간’이 곧 파트너십의 시간이다.
“무엇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법”
은유 작가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감응’에 대해 쓴 문장이다. 감응은 나를 기꺼이 열어두고 변해가는 태도, 타인을 만나는 힘, 내 안에서 이는 변화, 그러므로 상대에 대한 윤리라고 한다. 감응의 파트너십을 바라본다.
김현주 에누마코리아 임팩트 사업 본부장
필자 소개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의 임팩트 사업 본부장으로 스타트업과 비영리 조직, 국제개발협력에서 임팩트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에누마에서는 학습이 어려운 아이를 돕고 교육 격차를 좁히는 제품으로 전 세계 교육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영리와 사회적 임팩트를 함께 추구할 때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최선의 기술이 태어나고 확산될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