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의 사전적 정의는 손님이 주문할 음식을 가게의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주방장은 손님의 취향, 알레르기, 포만감 등을 고려하여 알맞은 음식을 내어준다. 정해진 메뉴를 제공하는 일반 음식점과 비교했을 때 오마카세는 손님에게 맞춤형 다이닝 경험을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임팩트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을 이에 대입해 보았다. 먼저 일반 음식점처럼 사전에 정해진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방식은 균질한 제품과 서비스를 많은 사람들에게 스케일업(scale-up)하여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방식은 오마카세처럼 상대방의 상황에 적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개인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케일딥(scale-deep)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각각의 특성을 띤 서로 다른 2개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하나는 ‘십시일밥’이고 다른 하나는 ‘십시일방’이다.
◇ 십시일밥, 사전에 정해진 것을 제공하는 ‘일반 음식점형’
십시일밥은 취약계층 대학생들에게 식권을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한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취약계층 대학생 1명당 약 20~30장의 식권을 전달한다. 필자가 대표로 있던 기간 동안 약 10만 장의 식권을 전달했으니, 중복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2000여 명의 취약계층 대학생에게 도움이 전달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십시일밥 식권을 받는 사람들의 삶이 변했나요?’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식권을 신청하신 분들께 식권을 보내드렸을 뿐, 그분들의 삶에 깊이 있는 변화를 일으켰다’고 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의 고된 삶이 식권 몇장으로 인해 나아질 수 없다. 한 끼 식사 걱정을 더는 것 외에 그가 겪을 수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식권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변화의 깊이에 한계를 느끼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것이 십시일밥 사업의 특징이자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단체의 대표로서 필자는 사업에 참여하는 대학교의 숫자를 늘려나가는 일에 다시 집중했다.
십시일밥은 확장을 위한 규격화가 쉬운 사업이었다. 대부분의 대학교와 학생식당이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었다. 2014년 1개 대학으로 시작한 십시일밥은 3년 뒤 전국 29개 대학에 지부를 두고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많은 수의 취약계층 대학생들에게 식권을 전달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이 다가가지 못한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 십시일방, 상황에 맞는 것을 제공하는 ‘오마카세형’
필자가 십시일밥을 떠나고 설립한 또 다른 비영리단체인 십시일방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지와 자립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앞선 사례와 비교했을 때 적은 숫자인 30명의 자립준비청년들과 수년에 걸쳐 교류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누군가 ‘십시일방의 도움을 받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삶이 변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필자는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십시일방에 합격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제공되는 기본적인 혜택은 주거와 교육이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 때문에 자동으로 깊은 변화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혜택들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십시일방의 연락을 받고, 필자와의 면담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명분과 동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 덕분에 필자가 자립준비청년 개개인의 상황과 고민을 깊이 인식할 수 있었고, 이에 기반해 어떤 도움을 제공할지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이 같은 고민의 결과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맞춤형 도움이 지속해서 제공되었을 때 필자는 깊이 있는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 오마카세의 본질, 십시일방의 본질
오마카세의 본질은 손님들에게 단순히 공간을 내어주거나 허기짐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다. 맞춤형 다이닝 서비스를 제공하여 손님들이 식당을 나갈 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필자는 십시일방 사업의 본질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십시일방에서 제공하는 주거와 교육 프로그램은 자립준비청년들을 ‘오마카세 카운터’에 앉게 만드는 요소일 뿐, 본질은 이를 매개로 자립준비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발빠르게 파악하여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건강은 어떤지, 친구들과 평소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몸 아픈 곳은 없는지 등 자립준비청년들이 내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 십시일방 오마카세 카운터의 본질적 기능이다. 필자는 이를 통해 자립준비청년에게 개인화된 도움을 구상하고, 때로는 위급/위험 상황을 감지하여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한다.
오마카세의 주방장들은 손님들의 표정과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래야 손님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손님을 받을 수는 없다. 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동료 주방장들이 필요한데, 이를 육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섣부르게 음식점의 규모를 키워 많은 손님을 받으면 퀄리티 컨트롤에 실패하여 방문한 손님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십시일방과 같은 비영리단체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이 들어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일은 마치 오마카세와도 같아서 종사자들의 세심한 주의와 교육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십시일방은 ‘스케일딥(scale-deep)’은 가능하지만 ‘스케일업(scale-up)’은 어렵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업 모델이다.
◇ 100억원을 벌기보다는 100명의 삶에 깊이있는 변화를 주는 일
누군가 필자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100억원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일 수 있지만, 필자는 100명의 삶에 깊이 있는 변화를 주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이러한 필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십시일방이 오마카세와 같은 임팩트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수의 사람에게 깊은 임팩트를 전달하는 이 같은 방식이 모든 상황에 적합하지는 않다. 다수의 사람이 영양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마카세를 운운할 수 없다. 이때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임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케일업이 필요하다. 또한 개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지 않아도 사용자들에게 충분한 가치가 전달되는 제품/서비스들의 경우에도 스케일업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술 혁신을 통해 친환경 솔루션 제품을 개발했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판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반면 십시일방처럼 각 개인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는 스케일업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제품/서비스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부적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골손님들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동네 오마카세 식당이 늘어나는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고민과 상황을 잘 파악하여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가 늘어나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의미 있을 것이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CRO·십시일방 대표
필자 소개 임팩트를 측정·평가하는 전문 기관인 (주)임팩트리서치랩에서 최고연구책임자(CRO·Chief Research Officer)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생들에게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창업, 임팩트 측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무료 식권을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설립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N잡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