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아름다운 이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난 우리의 끝을 생각했어.’ 대중가요 가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요즘 기업 사회공헌 분야에서 이런 종류의 파트너십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사회공헌 업무를 해온 기업 담당자들을 만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영원한 파트너는 없다. 우리는 끝을 생각하고 시작한다.” 끝이라는 말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수많은 국내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형태의 사회공헌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빈곤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해외 저개발국 주민들을 돕기도 하고, 쇠락한 국내 중소도시와 마을을 살리는 지역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인데요. 사업 기간이 종료돼 기업이 빠져나가면 그동안 쏟아부었던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사태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개발국에서는 기껏 지어놓은 건물이나 시설이 관리가 안 돼 폐허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도울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기업들이 생각한 게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기업과의 협업이 끝난 뒤 파트너가 완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철저하게 이별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이달 초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바가모요 지역의 푸가요시 마을에서 뜻깊은 ‘이별식’이 열렸습니다. 기아자동차와 굿네이버스가 5년 전 건립해 운영해오던 푸가요시 중등학교에 대한 소유권과 운영권을 지역사회에 완전히 넘기는 이양식(移讓式) 행사였습니다. 저개발국에 건물을 지을 때 보통 준공식이나 완공식은 해도 이양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는 이양식이 준공식이나 완공식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운영권을 넘기는 자리가 아니라, 파트너의 ‘진정한 자립’을 축하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업 담당자들은 이날을 위해 최소

[사회혁신발언대] 사회적 가치,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평가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머물지 않고 효과를 확인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표와 기준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평가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된다. 평가의 신뢰성 문제도 종종 제기되고, 합리적인 피드백도 부족하다. 물론 평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가치 평가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신뢰기계(trust machine)’라는 별명을 가진 블록체인은 현재의 사회적 가치 평가 방식이 가진 문제를 개선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어디나 쓸 수 있는 만능 다용도 칼은 아니지만,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꽤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방식은 이렇다. 우선 평가 지표를 프로그램으로 코딩한 다음 블록체인에 설치한다. 평가에 기초가 되는 측정 데이터만 입력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가 진행되는 ‘평가의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은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조작하거나 수정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해진 규칙대로 작동하고, 작동 과정과 결과는 보이는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 평가 결과는 중앙 관리자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에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 유지·관리의 편의성이 극대화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암호 화폐를 활용해 평가에 대한 보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데이터가 입력되고 출력되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블록체인이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강제징용 판결, 일본과 한국의 해석은 왜 다른가?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 등에 대한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간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 선제공격과 같은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를 들으며, 일본제철의 1조 원대 소송에 대응했던 지난 수년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강했고, 무자비했다. 일본제철은 오랜 기간 증거를 수집하고 우호 증인을 확보한 후 전략적 최적지인 일본과 미국에서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 치의 양보 없이 기획된 바에 따라 진행된 소송에서 맞대응만이 최선의 방어였다.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 역시 치밀한 계획과 분석이 전제됐을 것으로 예측된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이나, 쉽게 물러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냉철한 분석과 계획이 필요하다. 발단이 된 강제징용 판결을 살펴보면, 원고들은 제철소 화로에 석탄을 넣고 철 파이프 속에 들어가 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화염의 공간에서 대가없는 노역에 시달렸다. 일체의 개인행동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도주하다 발각될 경우에는 심한 구타를 당했다. 1965년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합의한다’는 내용의 대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됐다. 이 협정에 피징용 한국인의 노역에 대한 급여 등이 포함됨은 명확하다. 문제는 강제 노역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인권 유린, 즉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가 포함되는지 여부다. 일본은 합의된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에 위자료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재산상 채권·채무 관계는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 처리하도록 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해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합의하고자 체결된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사회혁신발언대] AVPN에서 ‘한국형 사회적경제 모델’ 가능성을 보다

정부와 지자체,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기업, 재단, 임팩트 투자자…. 지난 10년간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일궈낸 ‘한국형 사회적경제’ 모델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5~27일 싱가포르 센텍시티에서 열린 ‘2019 AVPN(Asia Venture Philanthropy Network) 콘퍼런스’는 이를 확인시켜 준 행사였다. AVPN은 아시아의 임팩트 투자자와 소셜벤처 플레이어들이 함께하는 네트워크의 장으로, 올해 7회째를 맞았다. 지금까지는 싱가포르, 중국, 인도 등이 주도해왔으나 이번 행사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AVPN 콘퍼런스에 대해 소개하자면,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행사다. 회원 멤버십을 기반으로 2011년 설립된 AVPN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아시아 15개국에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32개국 570여 개 회원사가 가입돼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회원사가 30% 증가하며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혁신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회원 수는 국가별로 싱가포르(18.5%), 인도(18%), 홍콩(9%), 미국(7%), 중국(6.5%), 인도네시아(4.7%), 한국(3.2%) 순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AVPN 콘퍼런스’ 개최, 사회혁신교육을 위한 ‘AVPN 아카데미’ 운영, 소셜벤처 사업모델 공유 및 투자 유치를 위한 ‘AVPN Deal Share’ 등이 있다. 이번 AVPN 콘퍼런스에는 총 43개국에서 1254명이 참가했다. ▲임팩트 투자 ▲전략적 사회공헌 ▲기후변화 ▲교육 등 11개 주제와 관련된 50개의 브레이크아웃 세션을 개최했다. 참가자 중에는 록펠러재단,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켈로그, 구글, 그레디트스위스, 스탠다드차타드 등 아시아권을 넘어선 글로벌 재단과 기업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크레비스파트너스, D3쥬빌리, sopoong, MYSC, 루트임팩트, 옐로우독, 함께일하는재단, 다소미재단, 아시아재단(Asia Foundation), 행복나눔재단, 한국사회투자 등 26개 단체 41명이 참여했다. AVPN 콘퍼런스에는 보통 소셜벤처는 초청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법 만드는 시민들 ‘크라우드법 운동’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제러미 하이먼즈는 “초연결된 대중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권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먼저 우위를 차지한 소수가 독점적 힘을 누리던 곳곳에 연대한 대중이 나타나 판을 바꾸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힐튼을 넘어섰고, 할리우드의 신과 같았던 하비 와인스틴은 미투 운동으로 추락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틈타 그들만의 리그로 가고 있던 입법의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새로운 흐름이 반영되고 있는데, 미국 뉴욕대 거버넌스 랩(Governance Lab)이 이끌고 있는 ‘크라우드법 운동’이 대표적이다. 크라우드법 운동은 2017년 베스 노벡(Beth Noveck)에 의해 처음 주창됐다. 집단적 숙의와 소통을 기반으로 집단지성을 모아 성안, 발의, 이행 및 평가 등 입법 절차 전반에 시민의 직접 참여를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한다.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핀란드의 경우 정부 공식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 제안을 받고 있다. 6개월 이내에 시민 5만 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은 발의안은 의회에 제출돼 일반 법률안과 동일한 심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통해 ▲모피산업 금지법 ▲여성 할례 금지법 등 다양한 의제가 발의·공론화됐다. 핀란드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가 시민 발의에 서명했을 만큼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유사한 제도로 우리나라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를 떠올릴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시민 참여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건설적인 정책 반영이나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쟁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혐오 표현이나 다수가 소수자를 억압하는 낯부끄러운 청원들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의 경우 시민 제안,

[진실의방] 어느 자산가의 계획적 기부

  10억, 10억, 24억, 10억…. 지난 8년간 네 번에 걸쳐 총 54억원을 기부한 80대 자산가가 있습니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평생 모은 재산을 순차적으로 기부하고 있는 유휘성(81)씨 얘깁니다. 2011년과 2015년 각각 현금 10억원을 기부했고, 2017년에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24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통째로 고려대에 넘겼습니다. 2년 만인 지난 12일, 또 한 번 10억원을 쾌척해 화제가 됐는데요. 고려대 고액기부 담당자는 “점심이나 먹자며 찾아온 유휘성 기부자가 갑자기 10억원짜리 수표를 건네서 다들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유씨의 기부엔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습니다. 펀드레이저(모금 전문가)들에 따르면 10억원 이상의 고액기부를 이렇게 주기적으로 실천하는 케이스 자체가 국내에 거의 없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유씨의 기부를 전형적인 ‘계획기부(Planned Giving)’라고 설명합니다. 기부의 목적과 형태, 규모를 신중하게 설계하고 결정해 계획적으로 자산을 기부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산기부’도 계획기부의 한 종류입니다. 미국과 같은 기부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계획기부가 이뤄졌지만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들어서야 개념이 도입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씨는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언제 얼마나 기부할지에 대해 본인만의 분명한 플랜을 갖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일정한 시기를 두고 재산을 적당히 끊어가며 모두 주고 가겠다는 계획이죠. 다 못 주고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유산을 기부하겠다는 유증(유언을 통해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해둔 상태입니다. 본인의 기부 스케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돈을 줄 땐 상당히 ‘쿨’합니다. 반면 본인의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무척 깐깐하게 ‘감시’합니다. 수시로 학교에 연락해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시민운동 새로운 축 ‘시민 모임’, 별도 지원 체계 갖춰야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최근 법인화·조직화를 고민하는 시민 모임의 자문 요청이 잦다. 혼자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양육비를 받기 위해 소송과 집행을 거듭해야 하는 한부모 여성들이 모임을 만들어 양육비 제도 개선을 외치고 있고,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통일 담론에 지친 청년들이 혁신의 관점에서 통일 논의를 재구성한다. 돌봄·건강·소비 등 마을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단위 시민 모임이 확장되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 기반 시민 모임도 늘고 있다. 민주주의 플랫폼 빠띠(Parti)에서는 1인 가구의 권리를 위한 ‘1인당’, 유전자 조작 관련 안전한 먹거리를 추구하는 ‘GMO, 나는 알아야겠당’ 등 프로젝트 중심의 다양한 모임과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비조직·비정형적 다수 시민운동의 힘은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운동, 2016년 광화문을 물들인 촛불 집회 등을 통해 증명됐다. SNS 공지, 구글 설문지, 유튜브 홍보 등 새로운 툴을 활용해 운영이 보다 용이해지고 있고, 활동 반경도 넓어지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발전과 함께 시민 모임의 확산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시민 모임은 활동을 이어가면서 법인화·조직화에 대한 고민에 부딪힌다. 좀 더 적극적인 운동을 펼치기 위해선 재정이 필요한데, 기부를 받는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공익성이 높고 창의적인 활동을 개발하더라도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없이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업비를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민 모임의 조직화를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재단법인 설립을 위해서는 최소 3억원의 기본 재산이 필요하다. 사단법인도 통상 수천만원의 기본 재산이

[진실의방] 스마트폰이란 게 나왔다며?

스마트폰을 처음 접한 건 기자 6년 차 때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은 ‘선택’의 대상이었죠. “스마트폰이란 게 나왔다던데 쓸 거야? 말 거야?” 하는 식이었습니다. 자판이 없는 것도 어색하고 조작법 익히는 것도 귀찮아서 ‘안 쓴다’ 쪽에 손을 들었는데, 어느 기자 선배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앞으로는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세상이 올 거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뒤처지고 도태될 것이니, 사용법이 다소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써야 한다.” 서너 살짜리 어린애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누구나 스마트폰을 다루는 요즘 상황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죠. 조선일보 공익 섹션 ‘더나은미래’가 이달로 9주년이 됐습니다. 스마트폰을 살지 말지 고민했던 예전 기억이 문득 떠오른 건, 더나은미래의 역대 지면들을 살펴보며 비슷한 종류의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공익에 대한 대중의 인식, 공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공익을 다루는 언론의 방식 등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초창기 발행된 더나은미래는 주로 기업 사회공헌이나 NPO(비영리단체)들의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려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도왔느냐’에 관한 이야기죠.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이 커지고 모금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나눔, 기부, 국제구호개발 등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가 잔칫상처럼 푸짐하게 지면에 차려집니다. 이후 본격적인 ‘소셜(Social)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부나 기업, 소수의 리더가 주도하던 공익의 판이 시민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더나은미래의 내용과 관점도 확 달라지죠. ‘얼마나 많이 도왔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가들, 환경·난민·동물·젠더

[정우성이 말하는 ‘내 인생의 나눔’] “학교란 말조차 생소한 로힝야 아이들…난민 문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죠”

[정우성이 말하는 ‘내 인생의 나눔’]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촌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미얀마가 보인다. 미얀마는 로힝야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그리운 고향이다.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 이웃의 집에 놀러 가고, 일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당연한 권리조차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이것이 내가 아는 로힝야 사람들이다. 지난 19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서 나는 이들을 다시 만났다. 지난 2017년 8월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로 인해 74만명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은 집을 떠나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1990년대부터 피신 온 난민까지 포함하면 91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머무르는 쿠투팔롱 난민촌은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난민촌이다.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12월,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의 부탁으로 쿠투팔롱 난민촌을 방문했었다.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당시 로힝야 난민들의 상황은 그 어떤 곳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처참하고 절망적이었다. 삶의 터전이 불타고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유엔난민기구와 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 번 방문했던 난민촌을 재방문한 건 처음이다. 콕스 바자르 사무소의 직원들은 2년 전 내가 만났던 가족 중 두 가족을 찾아줬다. 난민들은 정식 거주지가 정해질 때까지 ‘트랜짓 센터(Transit Centre)’에서 임시로 머물게 된다. 2년 전 트랜짓 센터에서 만났던 ‘조흐라’는 현재 두 딸, 그리고 손녀와 함께 34개의 구역으로 나뉜 쿠투팔롱 캠프4에서 지내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목숨을 잃자

[정연주의 우리 옆집 난민] “인티 무쉬 바살! 인티 아살!”

[정연주의 우리 옆집 난민]   요셉이네 가족은 리비아에서 왔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로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리비아는 끊임없는 부족 간의 전쟁과 IS의 공격으로 피폐해졌죠. 자동차 수출 사업으로 리비아와 한국을 오가던 요셉이 아빠는 한국에 투자이민을 신청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2016년 한국에서 태어난 요셉이는 지난 3월 세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요셉이는 희망마을센터의 ‘왕자님’이랍니다. 요셉이의 매력은 ‘시크함’. 경로당 근처 놀이터에서 놀 때 할머니들이 “고 녀석 예쁘기도 하다!”, “머리는 ‘빠마’한 거야?”하며 요셉에게 말을 걸어도 요셉이는 놀이기구에만 열중합니다. 그러다가 놀이터를 떠날 시간이 되면 일부러 할머니들 앞에서 가서 미스코리아가 퇴장하듯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고 몇 분께는 ‘손 뽀뽀’를 날리죠. 요셉이의 시크한 애교에 할머니들은 ‘심쿵’하여 환성을 지르시고요. 그런 요셉이를 볼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인티 아살’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꿀입니다’라는 뜻의 아랍어인데, 친한 사람끼리 서로 친근함을 표현할 때 써요. 올해 초 제가 이집트에 가 있을 때 요셉이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요셉이가 제게 “인티 아살”이라고 하려다가 “인티 바살(당신은 양파입니다)”이라고 해버린 일화가 있습니다. 요셉이 엄마와 저는 요셉이의 말실수가 너무 귀여워서 크게 웃고 넘어갔죠. 그런데 요셉이는 그걸 마음에 담아두었나 봐요. 제가 이집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요셉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몇 주 전에야 오랜만에 요셉이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요셉이가 엄마에게 저를 바꿔 달라고 떼를 쓰더군요. 수화기를 건네 받은 요셉이는 제게 대뜸 “인티 무쉬 바살!

[내 인생의 나눔] 차드의 심장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더욱 선명해지기를

[내 인생의 나눔] 배우 구혜선 우리에겐 멀고도 낯선 땅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가장 생소한 나라 차드. 저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함께 지난해 12월 아프리카 차드에 다녀왔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크고 푸른 호수를 가졌던 차드는 이제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으로 불립니다. 계속되는 사막화와 정치 불안으로 옛 모습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차드호는 메마르고 황폐했으며, 나라 곳곳에 무장 단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그곳 아이들에게 이런 위협과 불안이 일상이 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차드의 어린이들을 만나기 전,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보코하람’에 피해를 본 아이들. 그림에는 새빨간 피가 가득했습니다. 어떤 자극적인 묘사보다 순수했기에 더 끔찍한 그림. 오랜 내전과 분쟁까지 겪어야 했던 어린이들은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고향을 떠나, 집을 떠나, 그리고 가족을 떠나온 어린이들. ‘차드의 심장 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갑니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무척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어린이들은 마냥 천진난만했습니다. 분쟁과 폭력을 피해 도망친 어린이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었지만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니세프의 심리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벽화를 그리는 아이들은 손에서는 이제 평화로운 풍경만이 펼쳐집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차드의 영양 병원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한 아기를 만났습니다. 처음 아기를 안았을 때, 너무도 작아 부서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기의 가녀린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화마와 싸워야 할 소방관인데…극한 근무 환경에 ‘악전고투’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지난 4일 강원도 대형 산불 소식을 접하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초속 30m 강풍을 타고 산불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며, 5년 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침몰하던 세월호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불길이 잡혔고, 피해는 컸지만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기적과 천운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그 기적 뒤에는 전국에서 신속하게 모여든 2000여 소방관의 헌신이 있었다. 치솟는 불길 앞에서 속초 길목 LPG 충전소를 지켜낸 한 소방관은 “손발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는 심경을 전했다. 흔히 소방관을 화염과 싸우는 ‘영웅’으로 그리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방관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치솟는 불길만이 아니다.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지방직 소방관들은 늘 과로에 시달린다. 소방 장비 등도 부실해 희소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내 병이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받기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죽고 나면 소송이라도 해줘. 우리 아들에게 병 걸린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어.” 2014년 혈관육종암이라는 희소병에 걸려 7개월 만에 숨을 거둔 고 김범석 소방관의 유언이다. 가족들은 유언대로 5년째 법정에서 싸우고 있지만 1심에서 패소한 상황이다. 소방관의 공무상 재해에 관한 판결을 살펴보면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여실히 드러난다. 뇌지주막하출혈로 사망한 소방관 사건에서 망인은 24시간씩 2교대의 격일제 형태로 근무했는데 주당 근무시간이 84시간에 달했다. 구급요원으로서 월 77회 현장 출동을 하면서 행정 업무도 병행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다. 허술한 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