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4일(수)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인류에게 던져진 不和의 황금사과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인류에게 던져진 不和의 황금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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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설립자)

어린 시절 열심히 읽던 그리스 신화 세계관의 시작은 바로 트로이 전쟁에 대해 다룬 ‘일리아스’였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아카이아인과 트로이인들을 통해 대리전을 펼치는 이 중요한 이야기가 ‘에리스’라는, 그리스어로 ‘불화(不和)’를 뜻하는 여신에게서 시작됐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불화와 이간질의 여신인 에리스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 사이도 이간질하며 불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진 전쟁터를 전쟁의 신 ‘아레스’와 함께 누비며 자신이 일으킨 파괴의 흔적을 즐기는 존재로 묘사된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에리스가 열심히 가꾸는 ‘불화의 황금사과 과수원’쯤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 시시각각 닥쳐오는 기후변화 등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문제가 산적한 상황인데도 인류는 대동단결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서로 갈라져 다투느라 여념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극단주의다. 정치, 종교, 사회적 이슈 전반에 걸쳐 극단주의가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극단주의는 자신이 믿는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내세워 자신과 타인 모두의 이익을 짓밟는 비합리적 행동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백인 우월주의 단체 프라우드보이스나 음모론을 신봉하는 큐어넌이 대표적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남기고 떠나자, 이를 차지하기 위해 (왼쪽부터)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라가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훗날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조선일보DB

문제는 현재 이러한 극단주의가 자라날 최적 상황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자본의 세계화와 반복된 경제 위기는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국가들의 중산층을 붕괴시켰고, 빠른 속도로 양극화가 진행됐다. 실업률 증가, 정부 복지 재정 고갈은 일본·영국·미국 등 선진국들의 급격한 우경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정치와 아프리카,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대규모 난민 이슈 또한 ‘다름’에 대한 공포를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SNS가 가져온 ‘정보 접근성’과 ‘발언의 자유’는 극단주의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2004년 90만명에 불과했던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현재 35억명으로 늘었고, 소수의 믿음이 다수에게 확산되는 ‘사회적 폭포 현상’과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득하는 ‘확증 편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 SNS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만드는 거대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까지 결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보고 믿는 것만이 절대적이라는 토끼굴에 갇히게 만들었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는 SNS의 트롤링(trolling)에 그치지 않고, 테러와 증오 범죄, 그리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는 다양한 극우 세력이 코로나19 음모론을 퍼뜨렸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인 마스크에 대한 불신론과 함께 ‘No Mask’ 운동이 벌어졌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쿵후 플루’ ‘차이나 바이러스’ 등으로 부르며 아시아 인종에 대한 혐오를 조장했다. 그 결과 지난 1년간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만 4000건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에리스가 아무 일 안 해도 인간들끼리 알아서 서로 불화의 사과를 집어던지며 싸우는 꼴이 아닌가 싶다.

이런 극단주의의 근간에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이를 풀 방법으로 미디어와 콘텐츠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생각하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HGI가 투자한 ‘안전가옥’은 여성과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콘텐츠를 통해 ‘다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넷플릭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다양성 리포트를 통해 콘텐츠의 주제부터 등장인물의 역할 및 출연·제작진의 다양성을 진단 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전통적 성 역할’과 ‘인종차별’ 등으로 악명 높던 디즈니조차 2020년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 전체에 ‘다양성과 포용성’을 감독할 임원을 선임했다.

‘다름’에 대한 증오와 혐오, 그로 인한 극단주의는 기후변화나 전염병에 비해서는 추상적인 사회문제이나, 인류 공동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인류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치명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인간의 면역체계에 비유하자면 외부에서 공격하는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인간 사회 자체에 대한 면역 결핍인 셈이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을 해결할 방책을 찾고, 행정가들이 제한된 자원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가장 도움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난 피해만 봤고, 다 네 잘못이야’라고 증오와 분노를 극대화하는 일에 매진한다면 위기를 막기는 요원한 일일 것이다.

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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