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6일(목)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갈 곳 잃은 여행자들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갈 곳 잃은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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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설립자)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궤멸적인 피해를 본 산업 중 하나가 여행·관광 산업이다. 2019년 전 세계 GDP의 10.4%를 차지하던 여행·관광 산업은 2020년 5.5%로 약 49.1%(약 4조5000억달러)나 감소했고, 관련 일자리도 18.5%가량 감소했다. 정부의 긴급 보조금을 가장 많이 수혈받은 업계 중 하나였는데도 이 정도라면 실제 여행·관광 업체 종사자들이 느낄 고통은 얼마큼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무착륙 비행’이라는, 기후변화 시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고탄소 배출 상품이 인기를 끈 것도 결국 이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리라. 예상보다 장기화되는 코로나에 해외여행 욕구가 커진 고객들과, 당장 현금이 없어 피가 마르는 관광 업계와 항공 업계의 수요가 맞아 도착지도 없이 면세점 쇼핑과 비행만 하는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씁쓸하다. 설령 갈 곳이 없어도 훌쩍 떠나고 싶은 욕구를 지닌 인류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점점 발목이 묶일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여행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장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여행 산업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 ‘서스테이너블 트래블 인터내셔널(Sustainable Travel International)’에 따르면 관광 산업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하며, 그중 절반이 이동 수단에 의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전까지 중국, 인도 등 최근 경제 성장이 가파른 국가의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고, 저가 항공들이 대거 생겨나면서 1990년 5억t 수준의 항공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8년 10억4000만t이 돼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차치하더라도 관광은 해당 지역에 큰 사회적, 환경적 부담을 준다.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관광객이 몰려 결국 현지의 환경이 파괴되고, 현지인들의 삶이 피해 보는 현상을 가리키는 ‘오버 투어리즘’이란 단어가 생길 정도로 관광지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연간 3000만명이 방문해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았던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대표적인 사례이고, 한국의 제주도 또한 관광객이 폭증하며 상하수도, 건축 폐기물, 생활 쓰레기 등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으로 많은 유명 관광지들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에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몰디브, 세이셸, 피지 등 섬 국가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방콕, 하노이, 베네치아 등 저지대 도시들은 만성적인 홍수와 침수로 도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등은 극심한 가뭄과 산불에 위협받고 있다. 미국 최대의 관광도시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는 수자원 남용과 기후변화로 인해 수자원의 대부분을 끌어오는 미드 호수 자체가 소멸 위기에 처하면서 도시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코 투어리즘, 혹은 생태 관광이라 하여 관광지의 환경을 보존하고 지역 주민들의 웰빙을 고려하는 여행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에코 투어리즘 또한 결국 탄소 집약적인 이동 수단을 사용해야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부산에서 즐기는 도심 관광이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태관광보다 더 친환경적(?)인 셈이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자 하는 국제 여행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기후변화를 막자면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빈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빌 게이츠가 적극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탄소 중립 비행기 연료’를 찾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그는 기존 연료 대비 세 배 이상 비싼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저렴한 녹색 수소를 잠재적인 후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저렴한 탄소 중립 비행기 연료가 현실화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 진정한 에코 투어리즘일지 모른다.

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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