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2023 한국의 인권단체들]

인권의 다양한 얼굴 <3> ‘발전대안 피다’는 개발협력NGO 활동가들의 노동 인권에 대해 알리는 옹호 활동을 펼친다.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개발협력이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는 전문적인 활동임에도 ‘착한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인식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개발협력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구인난과 활동가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활동가들이 더 오래, 더 잘 일하기 위해서는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전문성을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발전대안 피다는 다음세대재단과 미국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 후원을 받아 ‘2023 국제개발협력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를 제작했다. 피다를 비롯해 45개 인권단체가 다음세대재단과 OSF의 ‘인권운동 및 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다<표 참조>.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한국에서 인권단체를 폭넓게 지원하는 곳은 다음세대재단과 인권재단 사람 등 사실상 두 곳이 전부”라며 “인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지만 인권단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2년 설립된 ‘피스모모’도 다음세대재단 사업에 선정됐다. ‘평화’를 주제로 활동하는 피스모모는 민주사회 시민의식, 군사주의와 지역주의, 젠더 감수성, 활동가 교육론 등 다양한 평화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누적 교육 참여자 수는 11만명이 넘는다. 소속 활동가는 7명. 지난해 연간 예산은 4억원 정도다. 기업에서 받는 기부금은 거의 없고 개인 후원금 비중이 높다.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는 “무기 박람회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지적하면 ‘정신이 나갔다’거나 ‘전쟁이 나봐야 저런 소리 안 한다’는 식의 반응을 듣게 된다”면서

왜 논쟁하는가 [2023 한국의 인권단체들]

인권의 다양한 얼굴 <2> 전문가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놓고 설명한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므로,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인권의 범위도 확장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조건과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돕는 인권단체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지난 7월 성소수자의 직장 동료를 위한 일터 가이드북을 펴냈다. ‘성소수자의 동료가 될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책자에는 평등하고 편안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비법이 담겼다. 행성인은 성소수자 노동권에 집중한 활동을 벌인다. 행성인이 청년 성소수자 345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들은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가장 꺼려지는 장소로 직장(66.3%)을 꼽았다. 학교(44.4%), 가족(39.8%), 공공장소(33.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행성인은 “많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청년 성소수자 직장인들이 직장에 가장 바라는 것은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의 여러 주제 중에서도 특히 성소수자, 젠더, 이주민, 난민, 장애 이슈는 사람들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며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흔하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권리’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권리는 ‘소유’되는 게 아니라 ‘확장’되는 것이며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권리를 가지는 사람들의 범위와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리를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상대가 권리를 가지면 그로 인해 내 권리를 빼앗긴다고 믿게 되고 결국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권리를 가질

인권의 범위가 넓어진다 [2023 한국의 인권단체들]

인권의 다양한 얼굴 <1> 2019년 등장한 국내 최초의 배달노동자 조합 ‘라이더유니온’은 설립 첫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늦어도 괜찮아요. 안전하게 와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했다. 고객이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할 때 ‘늦게 와도 괜찮다’는 메모를 라이더에게 남기는 것만으로도 오토바이 배달 사고율을 낮출 수 있다는 취지의 캠페인이었다. 배달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해달라는 당사자들의 호소는 시민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음식 배달원의 노동 인권뿐 아니라 새벽배송을 하는 택배기사의 수면권 등 플랫폼 산업 전반의 인권 문제로 번졌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초대위원장은 “배달 기사의 노동권이나 인권은 이전에는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영역”이라며 “시대 변화에 따라 등장한 인권의 새로운 주제”라고 설명했다. 인권단체들의 모습이 다변화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는 국가의 폭력, 억압적 시스템 등 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 안에서 인권의 개념을 정의했다. 최근에는 개인의 다양성과 특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인권의 범위가 확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간과했던 문화적 소수자들, 눈에 띄지 않는 차별로 고통받던 이들이 스스로 단체를 꾸려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고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초 설립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하 청주넷)’은 가정밖청소년의 주거권 보장을 외치는 단체다. 청소년의 주거권을 우리 사회가 반드시 보장해야 할 ‘인권’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더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한 집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을 직접 찾아다니며 돕는 아웃리치 조직들, 성폭력상담소, 청소년위기지원센터, 대안학교, 공익변호사단체 등이 합류해 총 17개 조직이 함께 네트워크를 꾸렸다. 변미혜 청주넷 활동가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탈가정한 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주목하지

수해복구 자원봉사가 남긴 세 가지
수해복구 자원봉사가 남긴 세 가지

기후재난 시대의 자원봉사 25일간 5만명 봉사폭염 속에서 복구작업 지역 간 교류 활발재난 대응 노하우 나눠 농어촌 1인 노인가구 등기후 취약계층 보호는 ‘숙제’ 25일간 5만명이 움직였다.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7일까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폭우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수해복구를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5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지난 한 해 국내 재난 대응에 투입된 자원봉사자 수가 7만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숫자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등 올여름 수해는 수십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겼다. 폭우에 이어 찾아온 극심한 폭염은 재난 복구에 어려움을 더했다. 김의욱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악조건 속에서 자원봉사자 수는 오히려 늘었고 각지의 자원봉사센터는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다”며 “이번 여름 자원봉사자들의 수해복구 활동은 기후위기로 인한 ‘중복 재난’ 시대의 자원봉사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남겼다”고 했다. 중복 재난 시대, 자원봉사자의 ‘안전’을 확보하라 올여름 수해는 충북 청주·괴산, 경북 북부 지역인 봉화·예천·영주 지역에 집중됐다. 특히 청주에는 사흘간 500㎜ 넘는 비가 쏟아져 미호강이 범람했고 주택과 농지가 침수됐다. 15일 청주 흥덕구 오송읍에서 발생한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예천에서는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 15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봉화와 영주에서도 비닐하우스가 쓰러지고 논밭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소식을 들은 자원봉사자들이 각지에서 수해복구를 위해 모여들었지만 곧 전국적인 폭염이 닥쳤다. 청주의 경우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한 15일에는 호우경보와 홍수경보가, 나흘 뒤인 19일부터는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서울에서 열린 '2023 H-온드림 데이'에 올해 지원팀으로 선정된 11기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
창업 오디션 대명사 ‘H-온드림’… 이제 기업가 키운다

현대차정몽구재단 ‘H-온드림’ 생태계 조성에만 10년이제는 기업가 육성에 집중 경영 컨설팅 강화투자 연계 기회도 확대 ‘테스트웍스’는 인공지능(AI) 데이터 구축 산업을 선도하는 스타트업이다. 발달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AI 학습용 데이터를 가공해 지난해 매출 9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150억원 수준이다. 최근에는 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브릿지 투자를 유치하면서 누적 투자액 110억원을 돌파했다. 위기도 있었다. 2015년 설립 초기에는 ‘취약 계층 고용’이라는 소셜 미션을 고집하다가 낮은 품질 때문에 고객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기도 했다. 윤석원 테스트웍스 대표는 창업 3년 차인 2017년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장애인 직원과 비장애인 직원이 유기적으로 일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R&D(연구·개발)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장애인 직원이 업무에 적응하려면 이들의 생활 루틴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이들의 보호자와도 소통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윤 대표는 “R&D 자금이 절실했던 바로 그 시기에 현대차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지원금 5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지원금으로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꼽히는 작업치료사와 사회복지사들로 팀을 꾸렸습니다. 덕분에 장애인이 편견이나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는 ‘포용적 고용(inclusive employment)’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어요. 직무 매뉴얼이 마련된 뒤 장애인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크게 올라 품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원 대표는 지난달 30일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한 ‘2023 H-온드림 데이’에서 최고의 사회 혁신 기업가에게 수여하는 ‘H-온드림 어워드’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H-온드림 어워드는 재단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인 H-온드림의 펠로 기업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 신설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 국제기구 전문인력 키운다
현대차정몽구재단, 국제기구 전문인력 키운다

국격 높이는 글로벌 인재육성 실무자급 전문직 ‘P2’ 인력풀 확대아세안 사회문제 해결 전문가 육성 “청년들은 세계 최대의 미개발 자원입니다.” 제7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코피 아난(Kofi Annan·1938~2018)은 평소 청년들의 역량과 잠재력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어쩌면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미국으로 유학 간 스무 살 때 포드재단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를 국제기구로 이끌었다. 그는 1962년 24세 나이로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 담당관으로 국제기구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유엔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 유엔본부 예산담당관과 유엔평화유지군(PKO) 담당 사무차장 등을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그에게는 늘 최초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아프리카계 흑인 최초로 유엔을 이끌었고, 2001년 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 처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유엔 평직원 출신으로 수장 자리까지 오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60년 전 청년 코피 아난처럼 한국에도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수많은 청년이 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우리나라 청년들을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여러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제기구 취업을 돕는 ‘온드림 글로벌 아카데미’(OGA)와 아세안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는 ‘CMK 아세안 스쿨’(CSAS) 사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OGA는 국제 전문가 교육에 국제기구 ‘인턴십’ 기회까지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국제기구로 가는 사다리 외교부에 따르면 국제기구에 진출한 한국인 직원 수는 지난해 기준 1120명. 유엔 사무국의 152명을 포함해 세계보건기구(WHO), 유엔환경계획(UNEP), 세계은행(WB) 등 다양한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10년 전 480명과 비교하면 큰 폭의 성장세지만 국가 위상에 비하면 아쉬운 숫자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7년째 진행하고 있는 OGA 사업은

다문화 가정 멘토링을 지원하는 서울 강서구 화평교회의 오정은 사모가 아이들과 책읽기 수업을 하고 있다. /화평교회
[소외된 미래, 다문화 아이들] “공동체 만드는 밀착 멘토링, 전국으로 확대를”

총괄멘토·전문가·이웃멘토 참여하는‘삼각 멘토링’으로 다문화 가정 교류 이랜드재단, 현장 지원조직 돕는온라인 플랫폼 ‘에브리즈’ 7월 출범 최근 민간조직에서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을 발굴하고 해결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장기간 밀착 관리가 필요한 심리·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공통점은 다문화 가족 구성원에게 친구이자 멘토를 연결한다는 것이다. 언제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핵심이다. 포천하랑센터는 다문화 청소년에게 ‘또래 공동체’를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3년째다. 다문화 청소년 2명을 짝으로 연결하고, 여기에 성인 자원봉사자 1명이 동행해 매달 1~2회 만난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영화관이나 놀이동산 등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돕는다. 박승호 포천하랑센터장은 “학교에서 위축돼 있던 아이들이 또래와 즐거운 활동을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민을 나누고 유대를 쌓게 된다”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아이들이 점차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센터에 나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만큼이나 다문화 가정의 부부에게도 친구는 필요하다.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A(35)씨에게는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한국인 부부가 있다. 매주 아이들과 함께 만나 식사도 하는 가족같은 사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남편 없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정부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실 정도였다. 이른바 ‘멘토 부부’를 만난 이후에는 삶이 달라졌다. 한국어도 배우고,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도 한다. 주변 친구들에게 종종 중국 요리를 대접하기도 한다. 변화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30일 서울 구로구 가족센터를 방문해 '공동육아나눔터'에 참여한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소외된 미래, 다문화 아이들] 엄마의 우울감, 자녀의 심리문제로 이어져

한국 생활 10년 넘어도 적응 못해가족 전 구성원 대상 통합 지원 필요부모 우울감-자녀 방임 악순환 끊어야 “아이들도 알아요. 엄마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엄마 스트레스는 자녀에게 전달됩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데 새로운 문화에 적응은 어렵고, 고향은 더 그리워지고….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웃으면서 대할 수 있을까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이모(32)씨는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A씨를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년 8개월 동안 상담했다. A씨는 스무살이었던 2009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딸 둘을 낳았다. 남편은 10년 넘게 변변한 수입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한국어가 미숙한 A씨가 직접 돈을 벌 방법도 없었다.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구실로 시댁의 구박까지 이어졌다. A씨는 줄곧 우울감에 시달렸다. 3년 전에는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도때도 없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흥분과 우울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극성 장애도 생겼다. A씨 상태가 불안정해지자 자녀들까지 이상 행동을 보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에게 불안장애 증상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또래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얼마 후에는 언어장애 판정도 받았다. 이씨는 “평소 상담 때는 ‘모성애가 없나’ 싶을 정도로 A씨는 자녀 이야기에 무심했는데,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는 목놓아 울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결혼이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국내 다문화 가구 수는 34만6017가구로 추정된다. 5년 전에 비해 20% 가량 증가한 수치다. 20여 년간 유입된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 체류 기간은 점차 길어지고 있다. 결혼이민자와 귀화자 가운데 한국 생활 10년이 넘은 비율은

[소외된 미래, 다문화 아이들]
[소외된 미래, 다문화 아이들] 은둔 청소년, 문제는 무너진 심리

다문화 청소년 5명 중 1명 우울감 호소사회적 관계 단절한 청소년 발굴이 과제 올해 고3인 A양은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또래와 조금 다른 외모를 가졌다. 이국적인 외모는 학교에서 늘 놀림거리였다. 속 터놓을 곳이 필요했지만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사춘기를 겪을 때도 어머니는 바빴다. 낮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고, 밤에는 방직공장에 나가 철야 작업을 했다. 주말에도 식당에 나가 돈을 벌었다. 몇 해 전에는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새 가족을 만났다. 동생도 3명이 더 생겼다. 새 아버지와 어색한 관계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결국 일이 터졌다. 학교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교실 물건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나마 이야기 나누던 친구들도 점점 멀어졌다. A양은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8개월을 집에서만 지냈다. A양의 사례는 보기 드문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은 학교를 그만두거나 아예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 한해에만 전국 초중고 다문화 학생 1312명이 학업을 중단했다. 국내 다문화 가정 학생 수는 지난해 기준 16만8645명. 지난 2012년 4만6954명에서 10년새 3.5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학생 수는 673만명에서 535만명으로 약 20% 줄었다. 현장 관계자들은 “학령 인구 감소에도 다문화 가정 학생은 급증하는 추세인데,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수준을 넘어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다문화 청소년이 급속도로 늘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시리아 난민 아동 '마즌'과 '빌랄' 이야기
[르포] 시리아 난민 아동 ‘마즌’과 ‘빌랄’ 이야기

6월20일 ‘난민의 날’ 기획 “텐트촌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가 가장 좋아요. 작년에 4학년이었고, 원래는 이번에 5학년이 됐어야 하는데…. 지나가는 버스만 봐도 속상해서 눈물이 나요. 그러면 엄마도 울어요.” 지난 5월 31일(이하 현지 시각) 레바논의 베카(Bekaa)주.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에서 13살 마즌(Mazen)을 만났다.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인 마즌은 올해부터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다. 한 살 아래 여동생 에흐다도 마찬가지다. 통학 교통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간다. 마즌의 엄마가 감자 농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받는 일당은 50센트(약 650원). 통학 버스비는 하루 20센트(약 250원)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12년째 이어지면서 난민 아동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만성 재난’의 상태로 돌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난민들을 받아준 레바논에도 문제가 생겼다. 레바논 인구는 약 600만명. 이 중 시리아 난민이 200만명이다.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포용한 레바논에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난민들의 상황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 5월 28일부터 6일간 월드비전과 함께 레바논 곳곳을 돌며 만성적·복합적 위기에 빠진 시리아 난민 아동 문제를 취재했다. 아무도 모른다 마즌 가족이 시리아 알레포를 탈출한 건 2012년이다. 사방에서 터지는 포탄들을 피해 어렵게 국경을 넘은 가족은 감자와 포도, 올리브가 생산되는 레바논의 대표적인 농업지대 베카에 도착했다. 마즌이 2살 때 일이다. 베카의 난민 대부분은 ‘ITS’(Informal Tented Settlements)라

포스코는 지난달 30일 아시아 기업 최초로 보스턴칼리지 기업시민연구소(BCCCC) 혁신상을 받았다. 최영(왼쪽에서 넷째) 포스코 기업시민실장이 수상 후 트로피를 들고 있다. /포스코
‘나눔’은 어떻게 사내문화가 됐을까?

세계가 주목한 K-기업시민 국내 대기업 3社ICCC서 관심 한몸에 포스코경영연구원‘리얼밸류경영’ 철학과실천 방식 공유 현대차정몽구재단“체인지메이커 육성이기업의 지속가능 전략” 지난달 30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는 전 세계에서 온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전문가들로 북적였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이날부터 사흘간 열린 ‘2023 글로벌 기업시민콘퍼런스(ICCC)’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ICCC는 미국 보스턴칼리지 경영대학 산하 기업시민연구소(BCCCC)가 매년 개최하는 국제 행사다. 기업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주체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콘퍼런스의 슬로건은 ‘회복탄력성을 다시 생각하다(Rethink Resilience)’였다. 제너럴모터스, 네슬레, 월트디즈니, 페덱스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 리더와 실무자 500여 명이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나눴다. 이번 행사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포스코, 포스코1%나눔재단, 현대차정몽구재단, SK, SK사회적가치연구원 관계자들은 주요 세션 무대에 올라 소셜임팩트 확산 사례를 공유했다. 포스코는 울릉도 앞바다에 바다숲을 조성해 탄소중립을 앞당긴 공로를 인정받아 혁신상(Innovation Awards) 환경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 기업으로는 최초 수상이다. 최영 포스코 기업시민실장은 “최근 세계에서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이 참석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면서 “발표 현장에서 관심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직원 98%가 만드는 소셜임팩트 “포스코1%나눔재단 설립 초기부터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봉사와 나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지금은 참여율이 98%에 이릅니다. 이 일을 담당하면서 느낀 건 직원들이 직접 나눔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행사 둘째 날이었던 지난 1일 최영 실장은 ‘임팩트의 성장(Grow Your Impact: Expand Your Team)’ 세션에서 CSR의

온드림소사이어티 창밖으로 보이는 명동성당. /현대차정몽구재단
공간이 혁신을 만든다

온드림소사이어티 1년, 명동을 바꾸다 공익목적 행사 무료 대관1년새 6만2004명 다녀가 명동에 문 연 공간플랫폼‘한국판 벨라지오센터’ 노린다 이탈리아 북부 벨라지오. 알프스 빙하가 녹으며 만들어진 코모(Como) 호수와 맞닿은 인구 3800명의 소도시다.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이곳에는 사회 혁신가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 록펠러재단은 지은 지 300년 된 낡은 빌라를 ‘벨라지오센터(Bellagio Center)’라고 이름 짓고 1959년부터 전 세계 경제학자, 화가, 시인, 물리학자, 정책 입안자, 현장 실무자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입주해 기후·보건·국제개발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나누고, 재단은 이들의 활동을 무료로 지원한다. 약 70년간 130국 5000명이 넘는 사람이 센터를 거쳐 갔고 이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만 100명에 이른다. 재무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2007년 벨라지오센터에서 열린 콘퍼런스였다.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 따르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시장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해 1조1640억달러(약 1555조원)로 추산된다. 이처럼 특별한 공간은 사회 혁신 DNA를 깨운다. 국내에도 사회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있다. 한국판 벨라지오센터를 꿈꾸는 ‘온드림 소사이어티’다. 지난해 4월 서울 중구 명동에 개관한 이후 1년 만에 6만2004명이 찾을 정도로 명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한국판 벨라지오센터’ 첫발을 떼다 온드림소사이어티에는 문턱이 없다. 물리적으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불편 없이 출입하게 만들었지만 공익 목적의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라면 무료 대관할 수 있게 개방했다. 건물 1층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 ‘온소스퀘어’에서 열린 공익 행사는 총 256회.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