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기후테크 시장 베트남에 가다 <下>
‘넷제로 챌린지 2024’ 수상 글로벌 기업 3곳
베트남 기후테크 투자사 터치스톤파트너스와 싱가포르 테마섹 재단이 주최한 글로벌 기후 기술 대회 ‘넷제로 챌린지 2024’의 최종 우승자가 지난달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린 그랜드 파이널에서 발표됐다.
이번 대회는 전 세계 55개국에서 500건의 기술이 경합을 벌였으며, ▲쿨 테크놀로지(캐나다·재생 에너지 및 탄소 감축 부문) ▲N&E 이노베이션(싱가포르·식량 시스템 및 지속 가능한 농업 부문) ▲바이젠(호주·순환 경제 및 폐기물 관리 부문)이 우승을 차지했다.
◇ 기후 위기가 고향을 위협한 과학자,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바꾸다
쿨 테크놀로지는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환원(Electrochemical Carbon Reduction·이하 ECR) 기술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경제적 자원으로 바꾸는 스타트업이다. 이 기술은 이산화탄소를 물과 함께 장치에 넣고 전기를 주입해 화학적으로 분해해 에틸렌, 합성가스 등을 생산한다.
쿨 테크놀로지의 ECR 기술은 에너지 소비를 90% 절감하고, 생산 단가를 기존 시장 가격보다 40% 낮출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베트남의 대형 화학 제조업체와 협력해 시멘트 생산 공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포름산(formic acid)으로 변환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쿨 테크놀로지를 설립한 안 찬리(Anh TranLy) 대표는 고향 메콩 델타에서의 경험이 기후테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였다고 밝혔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 근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기후 변화로 인해 염수가 점점 더 깊이 침투하는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이런 변화는 다음 세대가 고향을 방문할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재료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과학자로서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며 이 경험이 쿨 테크놀로지 설립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넷제로 챌린지 2024’ 수상을 통해 그는 “ECR 시스템을 확장 및 최적화해 연간 1톤의 이산화탄소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 세 아이를 위해 ‘친환경 항균제’ 만드는 회사를 창업하다
N&E 이노베이션의 시작도 다름 아닌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호주 멜버른 대학에서 생물학과 생명과학을 공부한 과학자인 디디 간(Didi Gan)은 “회사 이름의 N과 E는 제 아이들의 이름에서 따왔다”며 “내 아이들과 모든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N&E 이노베이션의 핵심 기술은 식품 폐기물에서 병원체를 제거하는 활성산소종(ROS·Reactive Oxygen Species)을 활용한 친환경 항균제다. 이 항균제는 식품 포장재, 농업, 보건, 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으며, 특히 식품 포장재에 적용 시 유통기한을 최대 4배 연장하고,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 대비 유독가스 배출량을 32배 줄일 수 있다.
현재 이 기술은 베트남 농장에서 3만 개 이상의 농작물 보호에 사용되고 있으며, 연간 3만6000톤의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디디 간은 “우리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N&E 이노베이션의 항균제는 이미 싱가포르의 호텔과 슈퍼마켓 등을 통해 시장에 출시됐다. 제품 가격은 기존 제품보다 3~5%가량 높지만, 회사는 베트남 내 생산시설을 확장해 비용 절감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유럽, 중동, 한국 등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디디 간은 “한국은 농작물과 과일 수출 시장이 크기 때문에, 우리 기술이 한국 농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석탄 대신 ‘견과류 껍질’로 친환경 활성탄 만든다
바이젠은 견과류 껍질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활성탄을 생산하는 스타트업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활성탄 시장 규모는 52억1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기존 활성탄의 원료가 대부분 석탄인 것과 다르게, 바이젠은 아몬드나 호두 같은 견과 껍질의 바이오매스를 활용한다. 또 저온 활성화 공정을 통해 전통적인 활성탄 생산 과정 대비 에너지 소비를 최대 60% 줄였다. 현지 생산에 초점을 맞춰 물류 및 운송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도 줄였다.
2018년 설립된 호주의 바이젠은 지난 6년간 활성탄의 생산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초기 시간당 몇 그램에 불과했던 생산량은 올해 초 시간당 400kg까지 늘어났다. 특히, 북미에 설치될 새로운 공장은 시간당 2000kg을 처리해 연간 2000톤의 활성탄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활성탄은 음용수 및 폐수 처리, 식품·음료 탈색, 가스·증기 처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된다.
현재 바이젠은 상업화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활성탄 생산 업계를 지속가능하게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메론 그리피스(Cameron Griffiths) 바이젠 CCO는 “향후 7~10년 안에 연간 5만에서 10만 톤의 생산량을 달성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고 싶다”며 “이번 수상은 동남아시아 지역 사업 확장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호찌민=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