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공헌… 부가적 선택 아닌 기본적 마음가짐 돼야”

다이애나 로버트슨 교수 인터뷰 “지금의 10~20대가 기업의 활동을 크게 바꾸어 놓을 거라고 믿습니다.” 세계적인 경영전문대학원(MBA) 와튼스쿨(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의 다이애나 로버트슨 윤리경영 교수는 자신있게 말했다. 예전의 와튼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말이다. 와튼 스쿨은 올해 6개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과목을 개설했다. 모두 “학생들이 원해서”였다. 여름 방학이면 골드만삭스, 맥킨지 등에서 인턴십을 하는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상당수의 학생들이, 요즘엔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재단에서 모금 계획을 짜고 경영 컨설팅 연습을 한다. 세계적인 MBA를 졸업한 학생들은 미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성장한다. 어릴 적부터 나눔과 봉사를 몸에 익히며 커 온 아이들은 기업 문화까지도 바꿀 태세이다. “지난 30년간 학계는 CSR을 잘하는 기업이 성과도 좋다는 연구 결과를 끊임 없이 발표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실증적’ 결과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자들이 있지요. 특히 재무 쪽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고 대세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학생 800여명 중 20%가 일종의 ‘윤리 서약’에 서명했다. 이 서약은 ‘관리자로서의 나의 목적은 더 큰 선(the greater good)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학생들도 교수와 학생이 합의해 만든 윤리 규범에 의무적으로 서약한다. 최근 월스트리트 발(發) 전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학생들은, 정직과 신용, 성실 같은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③ ‘KIVA’ 창업자 맷 플래너리

타인의 삶을 바꾸는 나눔 빛이 되는 대출 5년간 가난한 이들에게 1600억원 지원 2005년부터 52개국 35만명 도와 현지 돌아다니며 제안·타당성 검토 모금기간 한계선 정해 희소성 심어 1998년 5월 6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북쪽에 위치한 콘뎀바야 마을에 혁명군(RUF)이 들이닥쳤다. 이날 혁명군은 눈에 띄는 대로 마을 젊은이들의 손을 잘랐다. 적에게 협조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18살이었던 옌쿠 세새이(Yenku Sesay·30)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옌쿠를 오토바이에 태워 병원이 있는 수도로 3일 밤낮을 달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손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 후 옌쿠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에서 손이 없는 옌쿠가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거리로 나와 구걸을 시작했다.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온 것은 2006년, 사회적 기업 키바(KIVA)의 현지 파트너인 살롱소액금융신용(Salone Microfinance Trust·SMT)을 만나면서였다. SMT는 긴 시간의 면접과 심사를 통해 옌쿠의 잠재력과 자립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높이 사 30만레온(100달러에 해당)을 빌려주었다. 옌쿠는 작은 구멍가게를 열어 과자, 건포도 등의 마른 과일을 팔았다. 2년 만에 옌쿠는 자신의 대출금을 모두 갚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발생한 수익을 재투자하여 다양한 식료품, 의류, 신발 등을 파는 가게로 사업을 확장했다. 옌쿠처럼 키바를 통해 지금까지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은 52개국, 35만명이 넘는다. 키바는 세계 최초로 개인 대 개인(P2P) 방식의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소액금융) 사업을 온라인으로 펼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인터넷을 통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 자립하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잠깐의 귀찮음이 이만큼 지구를 살린다는 놀라운 사실!

신혼부부, 지구 살리기 신혼을 시작하다 자전거 출퇴근·이면지 쓰기… 알지만 안했던 ‘그린 행동’ 실천 옮겨 지난 5일은 환경의 날이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문제의 해결을 미뤄둘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진 요즘, 어떻게 하면 지구 살리기에 동참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 나은 미래’는 이런 사람들의 참여를 늘리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찾아봤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임동준(32), 김혜원(29) 부부가 이 고민에 동참했다. 이 부부는 IT 기업인 시스코(Cisco)의 ‘백만 개의 그린행동’ 홈페이지를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행동의 노하우를 참고했다. 편집자주 #1 5월 23일 저녁 7시,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막 퇴근한 부부를 만났다. 임동준씨는 ‘탐스슈즈’라는 신발을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가다. 이 신발 회사는 손님이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제3세계의 어린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착한 소비’ 전략으로 올해 국내에서만 5만 켤레 이상의 신발을 팔았다. 부인 김혜원씨는 케이블 TV의 방송작가다. ‘지구 살리기’라는 거창한 주제 앞에 동준씨는 “남의 얘기 같다”고 했다. “탄소 배출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먼 얘기 같잖아요.” 남편의 말에 혜원씨는 말했다. “그건 좀 무책임한 생각인데. 요즘 환경 문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교육과 강제를 통해서라도 탄소 줄이기를 해야 한다고.” 눈이 가늘어졌다. 신혼부부는 ‘그린 행동’의 목록을 펼쳐두고 앞으로 1주일간 해야 할 행동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 혜원씨는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다”며 활짝

[Cover story] 아프리카서 희망농사 짓는 이상훈·이송희 부부

지치지 않는 아프리카 봉사”말라리아도 우릴 못 막아요” 이상훈(43), 이송희(37) 부부는 결혼생활 15년 중 9년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세 아이 중 두 딸도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다. 말라리아와 풍토병에 시달리며 16년째 긴급 구호와 지역 사회 개발에 헌신하고 있는 이 부부는, 이달 말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난다. ‘청년’ 이상훈과 ‘젊은 아가씨’ 이송희의 첫 만남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 200만명이 넘는 르완다 난민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그곳에서 ‘희망 농사’를 지을 예정이다. 운명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이상훈씨가 르완다에 첫발을 내디딘 건 1994년이다. 종족 분쟁으로 대학살을 피해 수백만 명의 르완다 국민들이 난민이 된 상태였다. 극심한 식량부족과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신문에 난 ‘기아대책 봉사단’ 광고를 보고 지원한 상훈씨는, 겨우 3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르완다에 파견됐다. 의사 2명, 간호사 5명으로 이뤄진 팀과 함께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밀어닥치는 난민들로 의료팀은 하루 종일 치료와 수술로 전쟁을 치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막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먹는’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모두 힘들고 피곤하니 밥 당번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밥을 할거냐, 김치는 왜 없냐며 매일 큰소리가 났지요.” 상훈씨는 젊고 철없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지 싱긋 웃었다. “이대로는 의료 봉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근 국가들의 봉사단원들에게 SOS를 보냈지요. 다행히 케냐 나이로비에서 도와주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상훈씨는 공항까지 달려나갔다. 당연히 40~50대

백광우 교수 인터뷰_”매월 300~400명에 무료 봉사… 같은 길 걷는 후배 기다려”

2002년 개인 병원 정리 후 장애인 돕는 제자 키우고자… 아주대학병원 교수직 맡아 “봉사를 한 지 10년이 되던 해까지는 저도 거만했어요. 아픈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니까요. 20년이 넘으니까 비로소 이제 내 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년이 되자 저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매월 평균 300~400명, 31년간 17만건의 무료 치과 진료. 아주대 치의학과 백광우 교수(58)의 지난 30년간 봉사 내역이다. 백 교수는 1979년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의사자격증을 따자마자 서울 시립 아동보호소(현재 꿈나무 마을)의 고아들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 진료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 봉사로 눈을 돌려 매년 3번씩 자비를 들여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어린이집 4곳을 돌며 무료 진료를 해 왔다. 한 번 갈 때마다 그는 약 3000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돌아온다. 2008년부터는 매주 목요일마다 안양소년원을 찾아가 진료를 하고, 2009년부터는 서울시립영보자애원의 여성 장애인도 진료해 오고 있다. 백 교수가 매월 300~400건의 무료 진료를 소화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치료의 질이다. 그는 치과병원과 동등한 수준의 장비가 갖추어지기 전에는 진료를 하지 않는다. 자비를 들여 필리핀 어린이집 4곳과 안양소년원, 꿈나무 마을에 대학치과병원에 버금가는 진료 장비를 구입해 기증한 것도 나름대로의 원칙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적인 치료를 받고 싶잖아요. 몇명을 치료해 주었느냐 보다 적절한 치료를 해 주었느냐 못해 주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백 교수가 처음부터 전공을 치과로 정하고 봉사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서울 공대에 지원하려고 입학서류를 들고

측은한 맘에 시작한 도움… 대표 사회 공헌으로

국민연금공단 사회공헌 ‘저소득층 연금 지원’ 국민연금공단 이경욱(38)씨가 박수미(51·가명)씨를 만난 것은 10년 전이다. 박씨는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노후를 위해 들었던 연금 가입을 취소하기 위해 공단 포항지사에서 근무하던 이씨를 찾아왔다. 박씨는 “남편이 죽고 난 후 불행이 끊이질 않았다”며 “물혹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고, 그 후 숨쉬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일자리도 잃었다”고 울먹였다. 기초생활수급비 21만원으로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두 남매를 키워야 했던 박씨에게 연금 가입은 사치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금 가입을 포기한 후에도 박씨의 연금 보험료는 매달 납부됐다. 1만9800원씩 내던 보험료도 오히려 월 4만원으로 늘었다. 박씨를 상담했던 공단의 이씨가 대신 보험료를 납부해줬던 것이다. 이씨는 “동네 수퍼 배달을 해 주고 돈 대신 과일을 받아와 어린 아이들을 먹인다는 박씨 말에 울컥했다”고 했다. 이씨는 2009년까지 꼬박 9년 동안 박씨의 연금을 대신 납부했다. 이씨의 당시 월급은 67만원. 빠듯한 월급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아내가 속상해할까 봐 박씨의 연금 통장을 몰래 만들어 관리했다. 이씨 덕에 국민연금 최소 의무 납부 기간인 10년을 채운 박씨는 만 60세부터 매달 30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박씨는 “형편대로 살겠다고 몇 번씩 얘기했지만 어려워 말라며 계속 도와줬다”고 했다. “친척도 이렇게 도와주지는 못할 거예요.” 목소리가 떨렸다. 1995년부터 국민연금공단이 본격적으로 연금 가입을 유치하면서 이씨와 같은 직원이 각 지사 별로 생겨났다. 이씨처럼 저소득층 연금 가입자와 상담하면서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도와주기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주지사의 한 직원은 5명의 연금

[Cover story]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②’아쇼카 재단’ 창업자 빌 드레이튼

“사회적 기업가? 불평 대신 실용적 해답을 찾는 사람” 5만달러 모금으로 시작해… 현재 3500만달러로 성장… 아쇼카 펠로우 선정 과정?… 새로운 생각·창의성·윤리성… 기업가 자질·사회적 영향력의… 5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검토… “모든 사람이 변화 창조자로… 한국의 ‘아쇼카 펠로우’ 기대”… 지원서ㆍ아이디어ㆍ에세이ㆍ사업장 방문까지… “5단계 거치면 후보 중 12% 정도만 남아”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라고 불리는 사람. 전 세계 100만명이 넘는 사회적 기업가의 롤 모델(role model). 71개국 2800명 ‘아쇼카 펠로우’의 정신적 스승. 모든 사람이 변화 창조자(change maker)가 돼야 한다고 믿는 남자. 아쇼카(Ashoka) 재단의 창업자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67)을 만나기 위해 미국 버지니아주로 찾아가는 길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세계의 Top 10 사회적 기업가 시리즈를 시작하며 어떤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냐는 설문 조사에 빌 드레이튼이 첫손에 꼽혔던 것이다. 인터뷰 전 프로필만으로 접한 빌 드레이튼은 열정적이고 때로는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였다. 사회적 기업가이면서도,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미국 최고의 지도자 25인(2005년 US 뉴스앤월드리포트)에 뽑힌 이력이나, 하버드 대학(2006년), 예일 로스쿨(2005년) 등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창으로 선정됐다는 프로필도 이런 심증에 확신을 더했다. 하지만 빌 드레이튼의 첫 모습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는 마른 체구. 작은 목소리로 느리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말투.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의 이미지보다는 인도 고승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회적 사업과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을

“나누는 일도 이젠 재밌어야 합니다”

네이버 ‘해피빈’ 요즘 사람들은 기부가 쉽고 재미있다고 한다. 정말 기부는 쉬울까? 답은 예스이다. 만약 아직까지 기부 경험이 없다면, ‘해피빈’ 서비스를 이용해볼 것을 권한다. 해피빈은 네이버의 기부 플랫폼이다. 네이버 사용자들은 해피빈에 올라온 각종 사연 중 마음에 드는 사연을 골라 자신이 가진 콩을 직접 기부할 수 있다. 콩은 메일이나 블로그, 지식iN 답변 등 네이버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무료로 받는다. 혹은 기업들이 사회공헌 캠페인을 통해 후원하는 콩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구입도 가능하다. 사용자가 기부한 콩은 개당 100원으로 환산되어 해당 사연에 기부된다. 이렇게 기부된 콩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해피빈을 통해서 기부된 돈이 182억원이 넘습니다. 약 458만명이 현금과 물품 기부에 참여했습니다.” 권혁일 해피빈 재단 이사장<사진>의 설명이다. 기부뿐만이 아니다. 해피빈 서비스에선 사용자들이 모금도 할 수 있다. 실제로 한 파워블로거는 자신의 저금통으로 2000만원을 모금해 인도의 학교 건립에 기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해피빈은 단순한 모금 사이트가 아니라 모금 문화를 확산하는 열린 장인 것이다. “이 열린 장에는 기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기업의 사회공헌이 의무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해피빈을 사용하면 훨씬 세련되고 효과적인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의 경우 ‘해피브랜드’로 가입하면 해피빈 서비스를 이용해 공익연계 마케팅을 펼칠 수도 있고, 자기 기업의 사회공헌 소식을 네이버의 사용자들에게 홍보할 수도 있다. 이미 242개 기업이 해피브랜드로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공익단체들은 ‘해피로그’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 해피로그의 장점은 공익단체들이 기부를 받기 위해 필요한

‘메이드인 희망’… 철학이 담긴 제품을 팝니다

사회적 기업 ‘잡 팩토리’ 사회적 기업 ‘잡 팩토리(Job Factory)’가 위치한 스위스 바젤은 전 세계 300여 갤러리와 250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아트 바젤(Art Basel)로 유명하다. ‘잡 팩토리’는 이런 예술의 도시 중심가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었다. 트램(전차)을 타고 풍경에 빠져 있다 보니 금세 파란색 건물이 눈에 띄었다. ‘잡 팩토리’의 대형 상점이다. 1층으로 들어가니 상점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 니치 보흐간(Nicci Vaughan)씨와 홍보 담당자 소냐 슈흐마흐어(Sonja Schumacher)씨가 반갑게 맞아 줬다. 카페테리아, 인테리어 용품점, 옷 가게, 미용실, 레스토랑 등 다양한 업종이 한 건물 안에 있었다. 니치씨는 “인턴들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건물 곳곳에서 20여 명의 직원과 30여 명의 인턴이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냐씨는 “하루 평균 500명 정도가 매장을 찾는다”고 했다. ‘잡 팩토리’ 건물은 마을에서도 인기 있는 곳인 듯했다. 비교적 이른 시각에 회사를 방문했는데도 손님이 많았다. 특히 2층과 3층의 의류 매장이 북적댔다. 니치씨는 “시내 중심가에서 15분 정도 거리 안에 있어야 손님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의류 할인매장을 열었던 것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최근 리(Lee), 무스탕(Mustang) 등 몇몇 브랜드들이 ‘잡 팩토리’의 철학에 공감,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해 주면서 손님이 더 늘었다. 의류 매장 곳곳에는 예쁘지만 조금은 서툰 포즈의 모델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니치씨는 “직원들과 청소년 인턴들이 모델을 했다”며 “고객도 즐거워하고 청소년들도 스스로 뿌듯해한다”고 말했다.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에는 멀리

착한 가격에 카드결제·전기사용료 확인까지 똑똑한 충전기 개발 위해 달린다

전기차 충전기 개발 KEPCO 전력연구원 한 달 20만원 정도 들던 휘발유 승용차를 전기 자동차로 바꾸면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현재 기름값과 전기료를 기준으로 하면, 평균 15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전기 자동차가 언제쯤 시판되는지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기 자동차의 보급 속도가 매우 더디다.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자동차 자체의 성능 향상 못지않게 충전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최근 선진국들이 앞다퉈 전기자동차용 충전소를 설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은 이미 2006년에 공공 충전기를 런던에 설치했다. 현재까지 보급된 충전기는 총 165대지만 영국 정부는 올해 안에 1500대를 추가로 보급할 계획이다. 일본도 올해 말까지 주요 도시와 간선도로에 급속 충전기 1000대를 보급할 계획을 세우는 등 적극적으로 전기자동차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섰다. 뒤늦게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우리나라는 지난 4월 6일 서울에 저속 전기자동차(NEV) 운행을 허용했다. 하지만 충전기는 겨우 5대에 불과하다. 전기 자동차를 산다고 해도, 충전할 곳이 없어 운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KEPCO 전력연구원 전기자동차 충전인프라개발팀 소속 13명의 연구진은 충전기와 IT 기술을 접목한 ‘한국형 충전 시스템’을 개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승호 책임연구원은 “외국의 충전기는 전기자동차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설치한 것들로 단순히 전력 공급만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우리 연구팀은 사용자에게 많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좀 더 똑똑한 충전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팀은 충전기에 카드 결제 시스템을 부착하는 것에서

韓·美·英 3국의 공정무역 예찬론 ③영국 – 앤터니 이르빈 문

“가난한 생산자들도 정당한 대가 받아야죠” 앤터니 이르빈 문 “가난한 생산자들도 정당한 대가 받아야죠” “영국이 다른 나라보다 공정무역 상품을 구하기가 쉬운 건 맞아요. 그래도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옥스팜 같은 전문 상점에 가지 않으면 사기 힘든 물건이 많거든요.” 앤터니 이르빈 문(Anthony Irvine Moon·29세)씨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앤터니씨의 ‘공식 직업’은 교사다. 영국 데번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면, 앤터니씨는 멋진 ‘공정무역가’로 변신한다. 인도 델리에 공장을 짓고 만든 가방을 영국으로 수입해 팔고 있다. “사람들이 공정무역의 내용을 알게 되면, 당연히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물건의 생산 과정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생산자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앤터니씨가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네의 단골 수퍼마켓 때문이었다. 상점에는 ‘카리브해 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인 세인트 루시아(Saint Lucia)와 공정무역 계약을 맺고 수입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바나나가 있었다. 바나나 판매 수익으로 섬의 허물어져 가는 학교를 고치고, 소독기와 살균 도구가 없는 병원을 개선시킨다는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개당 100원 정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착한 일을 한다는 기분 때문이었는지 그날 먹은 바나나 맛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앤터니씨가 공정무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어려운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들이 만드는 제품의 가치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2010년 현재 영국에서 팔리는 공정무역 제품은 3000여 종, 거래 금액은 10억파운드(1조7000억원)에 달한다.

韓·美·英 3국의 공정무역 예찬론 ②미국 – 아시위니 쿨카르니

“쉽고 재미있게 사람 돕는 놀라운 공정무역” 아시위니 쿨카르니(Ashwinee Kulkarni·27세)씨는 3년 전 인도 여행 때 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6살 남짓한 어린 소녀들이 진흙 바닥 공장에 앉아 성냥을 만들고 있었다. 공장 내부는 유황 냄새와 연기로 자욱했다. 숨쉬기조차 힘든 공간에서 아이들은 하루 12시간도 넘게 일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받는 돈은 그녀가 피트니스 트레이너를 하며 받는 월급의 2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참을 자괴감에 시달렸지만, 바쁜 생활에 그녀는 곧 인도를 잊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무로 된 옷걸이를 선물로 줬어요. 인도네시아 빈곤 가정에서 만든 ‘공정무역 옷걸이’라는 거예요. 인도에서 봤던 소녀가 떠올라서 울컥했어요.” 보통 옷걸이보다 1달러 정도 비쌌지만, 그 돈이 어려운 가정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때부터 아시위니씨는 공정무역 상품 마니아가 됐다. 친구들에게 줄 선물은 모두’1000개의 마을(1000villages)’ 같은 공정무역 상점에서 구입하고, 지인들에게도 공정무역 제품을 사라고 추천하기 시작했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예전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녀는 언젠가 모든 기업이 공정무역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가능하면 싸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조금만 신중하게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도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공정무역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환상적인 방법이에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는 그녀 같은 ‘착한 소비자’들이 많은 걸까.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정무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더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