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일)

벽돌·창살까지 문화재로 보는 시선 “관광지 조성 아닌 후대 위한 복원에 힘써야 합니다”

박나래 건축문화재 복원가
인도·터키… 세계 벽지 찾아,폐가·민가 실측자료 제작…구축한 자료 유네스코에 제출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파리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문화재가 훼손되었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문화재가 아프다고 이야기하죠. 숭례문이 불탈 때 저도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지난 1일 잠시 한국에 방문한 박나래(37)씨를 만났다. 나래씨는 1887년에 설립된 이래로 프랑스에 하나뿐인 건축문화유적 복원 전문 교육기관인 에꼴 드 샤이오(Ecole de Chaillot)의 유일한 한국인 졸업생이다. 프랑스에서는 에꼴 드 샤이오를 졸업한 건축가들에게만 프랑스의 문화재를 복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공부를 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건축 문화재 복원을 가르치면서 역사와 도시, 건축 모든 것을 공부하게 합니다. 건축 문화재 하나를 복원하려면 그 건축이 가지는 건축적인 의미 외에도 그 문화재가 놓인 도시에 대한 분석, 당시의 역사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해서 복원을 한다면 그 복원작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박나래씨가 인도 아메다바드(Ahmedabad)에서 작성한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한 연하장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위해, 문화재 그림을 이용한 색칠공부 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나래씨가 인도 아메다바드(Ahmedabad)에서 작성한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한 연하장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위해, 문화재 그림을 이용한 색칠공부 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문화재를 보여주기 위해서 복원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복원하죠. 그래서 아주 안 좋은 상황이 아니면 차라리 복원을 하지 않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기자의 말에 나래씨는 한국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예전에 한 성당의 복원에 대한 자문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었습니다. 당시 성당 복원을 맡고 있던 분이 얘기했던 건 성당 벽돌이 낡아 보이니 새 벽돌로 교체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벽돌 자체가 당시의 역사적이고 건축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문화재라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의 문화재 행정이 올바른 문화재 복원과 괴리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성당에 있는 벽돌까지 문화재로 보는 시선. 나래씨는 우리 국민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옛 기무사 건물이 문화공간으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설계안과 분석자료들을 검토해 봤습니다. 좋긴 했지만 한편으론 안타까움도 느꼈습니다. 문화재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활용하는 건 좋은데, 보존해야 할 부분이 보존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옛 기무사 건물에서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창살’이었다. “전에 기무사 건물을 봤습니다. 기무사 건물에 쓰인 창살은 동시대 한국의 산업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래씨는 문화재의 역사성, 장소성, 건축성 모두를 조화롭게 봐줄 것을 제안했다. “문화재의 겉모습에만 집중하면 문화재를 문화재로 보지 못합니다. 문화재가 그 장소에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건축되었나를 보아야 합니다.”

문화재를 보는 시야가 넓어서인지 나래씨에게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 문화재가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래씨는 매해 동료들과 함께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마을을 찾아가 그 마을의 오래된 건축물을 도면으로 만드는 봉사를 하고 있다. “보통 우리는 건축 문화재라고 하면 커다랗고 화려한 궁궐 같은 걸 떠올립니다. 하지만 시골 마을의 집을 장식하고 있는 창틀이나 문, 장식물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나래씨와 동료들은 지난 5년간 터키나 인도, 프랑스 지역의 벽지 마을에 찾아가 그 지역의 폐가나 오래된 민가의 실측자료를 제작했다. 작은 장식물도 놓치지 않았다. 실측 자료 중 건축적으로 남겨야 할 요소가 있는 집들은 전문 도면프로그램(CAD)으로 다시 도면화하고, 데이터를 구축해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언젠가 꼭 필요한 자료가 될 겁니다. 우리도 7세기나 8세기 때 선조가 남긴 도면을 보고 지금 문화재를 복원하고 있잖아요.” 이런 작업은 전문가로서 나래씨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별할 즈음 나래씨는 기자에게 연하장을 건네줬다. 연하장은 나래씨가 2006년 인도의 한 마을에서 실측한 도면을 이용해 만들었다. 나래씨는 이 연하장을 받는 사람들이 문화재에 대해 좀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래씨에게 이렇게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심어놓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렸을 때 우리 집이 경주에 있었어요. 그 옆엔 천마총이 있었죠. 지금도 그 능선의 아름다움이 눈에 선합니다.”

나래씨는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주문하며 따끔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화재를 섣불리 현대적인 관광지로 만들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문화재가 문화재로 남을 때 사람들이 찾아오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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