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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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중간관리 실무자 8명…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야’ 공동 출간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기생
10년 직장 떠난 후 NGO 창업… 비영리 꿈 안고 인생 2막 시작
“진짜 비영리조직 현장 이야기 흔들리는 후배들에게 조언되길”

“어린 아이와 아내를 두고 일주일에 3~4일은 지방 출장을 다녀야 했어요.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제대로 된 인큐베이팅을 할 수 있을까’ 밤새워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난 18일 제387회 '북포럼'에 참석한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야'의 공동저자 8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원준, 강성훈, 임진기, 김종진, 김광현, 송경옥,오영수, 윤상석. /아산나눔재단 제공
지난 18일 제387회 ‘북포럼’에 참석한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야’의 공동저자 8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원준, 강성훈, 임진기, 김종진, 김광현, 송경옥,오영수, 윤상석. /아산나눔재단 제공

김종진 시니어허브 상임이사는 2005년 사회연대은행에 입사하며 처음 비영리에 발을 들였다. 영세 소상공인에게 창업 노하우를 알려주고 무담보 대출까지 해주는 ‘사람 중심 은행’. 착한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에 개인사업도 접고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10년. 사별한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도맡은 전업주부는 그의 도움을 받아 소셜 프랜차이즈 ‘신나는 이모네 곱창’ 대표가 됐다. 다섯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던 김윤상 대표는 도곡동에서 가장 사랑받는 초밥집 ‘스시생’을 세웠다.

2001년 북한 이탈 청소년을 위한 하나둘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이주 배경 청소년들을 꾸준히 지지해온 윤상석 공존플랜 소장은 지금도 ‘훈이’를 잊지 못한다.

“대학 시절 처음 만난 탈북 학생 훈이는 제게 ‘형이 되어 달라’ 했습니다. 그런 훈이가 2003년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죠. 훈이의 이야기는 영화 ‘다섯 개의 시선’ 중 세 번째 이야기로 만들어졌고, 그 일 이후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과제가 만들어졌습니다.”

◇10년의 원동력…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야

다양한 사연을 가진 비영리 실무자 8명이 자신들의 좌충우돌 분투기를 담은 책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야’를 공동출간했다. 책을 쓴 이들은 아산나눔재단 비영리 중간관리자 교육 프로그램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기 교육생들이다.

송경옥 구로공동희망학교 시설장은 자신의 일이 ‘힘들지만 행복한’ 이유를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8세 알코올중독 청년을 그의 어머니와 함께 땅에 묻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라는 의문도 들었어요. 하지만 대가 없이도 누군가를 도우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저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비영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혁신과 철학 당부하고파

“‘NPO에서 일하면 좋나요?’라고 묻는 분들에게 거꾸로 묻고 싶어요. ‘왜 NPO에서 일하려고 하지요?’ 신념을 향해 나간다는 것은 부족한 부분과 채워야 할 부분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비영리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요구한다. 오영수 서초구자원봉사센터장도 그랬다. 10년간 몸담았던 ‘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나와 40대 중반에 미생(未生) 신분이 된 그는 사회적기업 창업에 도전했고, 1인 NGO ‘브이플러스’도 설립했었다.

책의 저자 중 유일하게 영리 기업에 속해 있는 홍원준 조선비즈 지식사업팀장은 ‘인생 2막’을 위해 비영리의 문을 두드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역량이 이 분야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수료 후 SNS와 구글 앱스를 활용해 엔토크(N-Talk)를 결성하고, 모임의 과정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공유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보스포럼’,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TED’ 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야말로 저의 재능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혁신과 도전은 언제나 충돌을 낳는다. 오히려 비영리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부지기수다. 김광현 동두천시 장애인종합복지관 사무국장의 이야기는 흔들리고 있는 후배들에게 작은 조언이 된다.

“술 한 잔 하지 못하는 복지관장님이 클라이언트가 정성스레 준비한 막걸리를 망설임 없이 들이켜는 것을 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의 기준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이런 현실의 복잡함이 사회복지 실천 원칙에 유연함을 더해주는 게 아닐까요.”

이들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험의 공유’다. 강성훈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략사업팀장은 “‘비영리’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아닌, 진짜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일하던 시절, 영양 상태가 바로잡히지 못한 아이에게 현물기부로 들어온 빵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열정만 갖고는 올바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희가 이 글을 쓰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듯, 저희 이야기를 본 후배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임진기 월드휴먼브릿지 사무국장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열심히 일한 결과가 ‘내 것’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체를 키워 내 것으로 만들거나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헌신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제 막 비영리에 들어선 후배들, 비영리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성과도 얻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청춘을 불살라볼 만한 일이라고요.”

한편 엔토크 멤버들을 비롯한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수료생들은 다음 달 4일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우리가 바라본 비영리’를 주제로 ‘엔포럼(N-Forum)’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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