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6일(월)

[기후 유니버스] 당신의 2024년 여름은 어땠나요?

김민 빅웨이브 대표

언제부턴가 여름이 오면 걱정부터 앞선다. 안타깝게도 그 걱정은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현실이 되었다. 지난 8월 13일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아르바이트로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 청년이 작업 도중 폭염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 사례가 아니라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여름철 온열질환자는 3226명으로 지난해 2818명을 넘어섰고, 2018년 4526명에 이어 통계를 작성한 이래로 두 번째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2022년 강남역 일대와 2023년 오송 지하차도에서처럼 대형 재난만 없었을 뿐이지 기후위기로 올해도 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올해 3월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작년 한 해 글로벌 기후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공식 보도자료에 이런 표현을 썼다. “off the charts”, 모든 기후 지표가 “차트를 벗어났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여름도 그러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패턴이 매일 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하늘에서 구멍 난 것처럼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가 일상이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우산을 챙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급한 대로 우산을 샀더니 금세 비가 그치며 쓰레기가 된 일회용 비닐우산, SNS와 커뮤니티에 퍼진 비현실적인 국지성 호우 사진들, 이러한 장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지난 7월 10일 강원 원주시에 쏟아진 국지성 호우 모습. /연합뉴스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번 여름이 유난히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6월에 노동자들이 국회에 ‘폭염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올해부터 택배기사 일을 시작한 친한 친구와 여름이 시작할 때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생수만 나르는 택배기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블로그에 검색해 보니 생수 택배기사 구인구직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유튜브에는 채용 후기에 대한 콘텐츠도 많았다. 그 친구는 택배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7~8kg나 빠졌다. 다이어트도 하고 돈도 벌어서 좋다며 농담 섞인 말로 웃어넘겼지만, 이미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 후였다.

밥상에서도 기후위기가 대화 주제였다. 폭염 등 이상 기후로 인해 작물 재배가 어려워지고 과일, 채소 등 농산물 가격이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서 올해 배는 102.9%, 사과는 80.8%나 가격이 올랐다.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이 0.4~0.5%p 올라간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보다 현실이 더 심각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뿐 아니라 마트와 시장에서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는 어머니의 한숨도 덩달아 늘었다. ‘아침에 먹으면 금사과’라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러나 이제는 ‘금값’이 된 사과를 우리집 장바구니와 밥상에서 보기 어려워졌다. 지난 총선에서 대파 가격이 정치적 논쟁이 된 것에 비하면, 사과는 오히려 밥상 물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고마운 ‘금쪽이’었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너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기후위기를 풍자한 대사다. 이번 여름을 경험해 본 입장에서 이보다 더 와닿는 말이 없었다.

올여름 여러 가지 파편화된 현상들로부터 또 다른 기후위기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는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진전시켜야 한다. 각자만의 렌즈로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어디를 출발점으로 삼을지 고민하며 나만의 ‘기후위기 세계관’을 만들어 보자. 혼자만 실천하면서 개인적 차원으로 수렴하는 활동이 아닌, 타인에게 가치를 전파하며 발산하는 활동을 실천하자.

구슬땀을 흘린 어떤 청춘에게는 2024년 여름이 우리의 남은 여름보다 시원한 계절로 남았길 바라며, 끝으로 송정림 작가의 책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의 글귀를 전한다.

“오늘은 내 남은 날들 중에 가장 젊은 날입니다. 오늘은 내 남은 날들 중에 가장 멋지고 예쁜 날입니다.”

김민 빅웨이브 대표

필자 소개

‘당사자에서 배제되고 파편화된 청년들이 기후위기의 대응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단법인 빅웨이브의 대표입니다.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벤져스’를 모으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역량 있는 청년들이 성장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전히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NGO, 국회, 정부 위원회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후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기후 유니버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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