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15년 도전해 매출 50억… ‘정신장애인은 일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다

[특별 대담] ‘향기내는사람들’ 임정택·이민복 대표

경북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에 10평 남짓한 커피숍이 들어선지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 카페는 현재 전국에 35개 지점을 운영하며, 필리핀에도 매장을 열었다. 장애인 중에서도 사회 통합이 유독 어렵다는 정신장애인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카페, 장애인이 매장 뒤켠이 아니라 앞서서 손님들과 소통하는 카페, ‘히즈빈스’ 이야기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50% 이상 급성장하며 매출 50억을 돌파했고,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장애인만 200명이 넘는다. 지난 17일, 더나은미래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카페 히즈빈스를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향기내는사람들’의 임정택·이민복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9년 전 본지 취재로 포항에서 만났던 30대 초반의 청년 대표는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히즈빈스의 이민복 대표(좌)와 임정택 대표(우).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임정택 대표가 대학생 때 히즈빈스를 창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민복 대표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이민복=2008년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한국 지사 창업 멤버로 시작해 대표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히즈빈스를 조명했던 더나은미래 기사(2015년 6월 23일자)를 읽었다. 회사가 인상 깊어서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창업하면서 10년 일하고 이직을 고민하고 있던 터, MYSC를 통해 사회적기업 대표를 대상으로 영업 전략 및 제안서 작성과 관련된 컨설팅 강의를 의뢰받았다. 당시 20곳 정도 사회적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그 중 한 분이 임 대표였다.

임정택=히즈빈스를 운영하면서 ‘장애인 일자리 문제 해결의 열쇠는 기업이 쥐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렇다면 기업이 장애인을 잘 고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당시 회사에는 B2B 비즈니스를 담당할 전문 인력이 없었다. 계속 고민 중에 있었는데, B2B 영업 관련 강의가 열린다는 문자를 받고 포항에서 서울로 왔다. 사실 이런 강의에 참석한 적이 처음이었다(웃음). 강의가 끝나고 이 대표에게 명함을 건내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이 대표는 기사를 보고 히즈빈스를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임정택 대표는 “사업이 힘들고 지치지만, (장애인) 선생님이 20년간 외롭게 사시다가 친구도 생기고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또 저의 행복이자 사명이다”고 말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민복 대표는 2019년 10월 (주)향기내는사람들의 영업이사로 합류했고, 2020년 7월부터 약 2년간은 단독 대표로 경영을 책임졌다. 그리고 2022년 10월부터 창업자인 임정택 대표와 이민복 대표 두 사람이 함께 공동대표 체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민복 대표는 특히 기업의 장애인 고용 해법을 컨설팅하는 B2B 비즈니스를 맡고 있다.

―고용한 장애인 중 대부분이 정신장애인이라고 알고 있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장애인 직원에 대한 노무 이슈가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이민복=15가지 장애유형 중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이 최하위다. 일자리를 얻더라도 3개월 이상 유지하는 비율이 18% 밖에 안된다. 10명 중 8명이 그만둔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신장애인 대부분 제 때 약을 잘 먹고, 적절한 케어 시스템이 마련되면 충분히 일할 수 있다. ‘위험하다’,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등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문제다(실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7%에 그친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달리 일반적인 정신질환을 가지는 분들은 위험한 분들이 아니다.

임정택=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다각적 지지 시스템’이다. 한 분이 갑자기 ‘내일부터 안 나오겠다’고 하면, 일반 회사라면 고용을 종료할 거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린다. 이들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한다. 아침이면 비장애인 매니저가 장애인 직원의 컨디션을 확인한다. 약은 잘 먹었는지, 증상은 없는지 확인한다. 혹시 어려움이 발견된다면 이 직원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연락을 한다. 그날 바로 와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 약 복용에 어려움이 있다면 의사에게 연락도 한다. 한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장애인 직원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도 특별함이 있을 것 같다.

임정택=우리는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모든 사람이 ‘강점’이 있다고 본다. ‘이 분은 무엇을 잘하실까’,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을까’로 바라보면 달라진다. 매장 커피머신이 고장난 적이 있는데, 바리스타로 일하던 한 직원이 기계를 분해해서 재조립을 했다. 본사 담당자가 도착하기도 전에 문제가 해결됐다. 알고 봤더니 이 분이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자동차 산업에서 일하셨던 분이었다. 로스팅 기계를 다루는 게 자동차 시스템과 유사하다. 이후로 로스팅을 제대로 배워볼 것을 권했고, 지금은 히즈빈스의 로스팅 총괄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민복=복잡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관심과 지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위생이나 서비스 교육 등을 진행할 때도 각자의 속도에 맞춘다. 금방 할 수 있는 분도 있지만, 몇 년이 되어도 샷을 못 내리시는 분도 있다. 한 분이 ‘간첩이 날 쫓고 있다’는 망상 증상이 심해져서 폐쇄 병동에 3개월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 이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영상을 보내주면서 기다린다. 복귀했을 때 환영 파티도 열었다.

전체 취업 장애인 중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1.3%(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2). 이에 반해 히즈빈스의 정신장애인 누적 근속률이 90%로, 10명 중 9명이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히즈빈스의 ‘다각적 지지 시스템’과 ‘강점 관점의 직무 개발’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특히 ‘다각적 지지 시스템’은 장애인 고용 위탁 관리 시스템으로 2018년 특허도 출원했다.

―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전문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임정택=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기업문화 차원에서도 긍정적일 수 있다. 우리 회사가 바로 증거다.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고 어려운 상황일 때,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주시는 분이 장애인 선생님이다(히즈빈스는 장애인 직원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분과 통화 한 번 하고, ‘괜찮다’는 말 한 마디를 들으면 힘이 난다. 이 분이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에만 25번이나 다녀왔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회사는 나를 기다려 주는 곳’이라는 사실은 직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에 집중하게 되면 혁신적인 요소도 발현될 수 있다. 장애인 고용은 조직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이민복=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회사의 생산성이 높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아티클도 있다. 작년 한 해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9500억원이 넘었다. 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용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만약, A라는 회사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장애인이 일하는 사내 카페를 만든다고 하자. 장애인이 동료로 다가오는 순간 기업 문화에도 관용이 덧입혀진다.

히즈빈스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감사편지를 전달하는 등 기업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이벤트를 기획해 열기도 한다. /히즈빈스

상시근로자가 50인 이상인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의무제도에 따라 장애인을 일정 비율(민간 3.1%, 국가 및 지자체, 공공 3.8%) 이상 고용해야하고, 이를 못 채우는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히즈빈스는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히즈빈스를 사내 카페로 설립하도록 돕고 위탁 운영을 맡아 장애인 고용, 직업 교육 등을 책임진다. 올해부터는 장애인 직무를 보다 다양하게 개발하며 확장할 계획이다.

― 기업에서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무가 한정적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임정택=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인 고용 통합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외식업, 조경업, 교육업, 웰니스, 스포츠, 예술 쪽 직무를 개발하고 있고 롤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다. 사내 카페 같은 경우는 히즈빈스의 경험과 노하우를 이식하면 되지만, 다른 업종들은 기업과의 윈윈(win-win)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는 직원의 복지 차원에서 접목할 부분은 없는지 유의깊게 보고 있다. 지금까지 바리스타, 로스터, 파티쉐, 패킹 전문가, 강사 등 5가지 직무를 개발했는데, 2040년까지 100가지 직무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민복=경기도사회적경제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경기도 임팩트 프랜차이즈 모델도 올해부터 시작한다. 10가지 비즈니스 모델별로 최대한 장애인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이 당사자의 관점에서 카페나 식당 등 일상 서비스를 점검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서비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히즈빈스가 시작된 포항, 경남 지역 단체 사진. /히즈빈스

―15년 후, 히즈빈스는 어떤 기업으로 불리고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임정택=10년 전쯤 매장이 적자여서 장애인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기업의 ‘본질’을 지켰다. 근데 갑자기 다큐멘터리에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주요 사례로 조명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결국 본질을 지키는 것이 더 큰 힘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현재 기업 경영의 주요 원칙이다. 작년에 비전2040을 선포하고 3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 히즈빈스의 문화와 시스템을 확산해 전 세계 10억명의 장애인 중 1억명 이상이 본인의 강점으로 일하면서 자립할 수 있게 하자. 둘째, 장애인 고용에 관심이 있는 기업은 히즈빈스의 교육을 받거나,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게 하자. 마지막으로는 장애인이 직무별로 전문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 글로벌 직무훈련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민복=기본적으로는 히즈빈스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사회적기업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1호점 시작할 때 ‘어떻게 정신장애인이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있냐’며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말렸다. 그런데 15년 후, 정신장애인 150명이 일을 하고 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1600m(1마일)을 4분 이내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의학계에서는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면 폐와 심장,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진다는 등의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옥스퍼드 의대생이었던 로저 베니스터가 4분의 장벽을 넘자, 이 소식을 접한 다른 사람들이 이 기록에 도전하며 두 달 만에 10명, 1년 후에는 37명, 2년 후에는 300명 이상의 선수들이 벽을 넘었다. 히즈빈스는 앞으로도 계속 시도하고, 성공의 모델을 만들어낼거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noa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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