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기후재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후대응기금을 운용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하락으로 기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기후대응기금 이행점검과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 국회기후변화포럼 대표인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기후금융이라는 좋은 정책이 있더라도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녹색금융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국내 기후대응기금의 방향성을 진단·점검하기 위해 국회기후변화포럼, 한국환경경제학회, 한국세계자연기금(WWF), 한국환경공단이 공동 주최했다.
발표의 첫 순서로 윤정주 기획재정부 기후대응전략과장이 ‘국내 기후대응기금의 현황 및 관리 계획’을 주제로 연단에 나섰다. 2021년 1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제정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만들어진 ‘기후대응기금’의 추진 배경과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윤정주 과장은 “탄소중립 사업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부처별로 기존 수행하는 유사사업을 통폐합하여 기금사업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며 “첫 시행연도인 2022년엔 13개 부처 139개 사업을 진행했고, 올해는 16개 부처 152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더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내년에는 16개 부처 144개 세부사업을 추진할 예정으로 현재 정부 계획안을 제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후대응기금의 문제점 등도 설명했다. 기후대응기금의 가장 큰 수입원인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으로 인한 기금 운용의 불안정성을 이야기했다. 윤 과장은 “코로나19 이후 배출권 가격이 오른 해외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기후대응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배출권 시장을 안정화하는 것이 정부 차원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대응기금을 통해 이뤄지는 사업의 문제도 지적됐다. 구체적으로 불명확한 지출 명목, 운영 중 예산 변경, 사업 수요와 집행 가능성 미신고, 과한 이월액 등이다. 윤 과장은 “기후대응기금이 1년 정도 운영되면서 기재위원회 등에서 지적해주신 여러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며 “여러 부처에서 중복된 유사 사업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협의체 등을 활성화해 부처 간 소통 접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형나 경희대학교 교수는 ‘기후대응기금의 개선과제와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오형나 교수는 “기후금융의 가장 큰 수입원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보면 한국 시장만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제대로 정비해 기후대응기금의 수입을 확보하고, 제조업 부문의 저탄소 지원을 지원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등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선순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국가 탄소감축 목표 달성과 연동한 기후대응기금 지원대상을 선정해야 하고, 기후금융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규모 투자비중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EU의 혁신기금이나 일본의 녹색기금이 탈탄소화를 목적으로 다른 기금과 다른 지원체계로 설계된 반면, 기후대응기금은 기존 투자지원 방식과 차이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시장을 이끄는 퍼스트무버가 되려면 산업부문 저감에 집중해야 한다”며 “소규모 프로젝트 등은 다른 재원으로 충당하고, 현재는 성과가 좋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기후대응기금의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한 패널 토론이 진행됐다. 패널 토론 좌장으론 조용성 한국환경경제학회장이, 패널로는 김현석 한국개발연구원 재정투자평가실장, 홍현종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사무총장, 홍윤희 한국세계자연기금 사무총장, 오승환 한국환경공단 기후대응기금센터장, 진익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국장 등이 참석해 발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패널토론에서는 기후대응을 위한 산업계의 지원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다. 김현석 한국개발연구원 실장은 “기후대응금융의 핵심 수입원인 탄소배출권 거래제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고려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줄이고, 전기차 비중을 늘리면서 이 세제 역시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 구조 변화가 수입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세체계 개편 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현정 지속가능경영기업발전협의회 사무총장은 “최근 홍수, 산불 등 기후 재난으로 기업의 공급망 연쇄 손실도 발생하고 있다”며 “용수 부족 대응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대기업의 경우 비용을 충당해 해결이 가능하지만, 대응이 어려운 중견·중소기업 등은 기후금융 등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홍윤희 한국세계자연기금 사무총장은 “기후의 문제는 인간과 자연, 세계가 얽혀 있어 점차 해결하기 복잡해지고 있다”며 “지역에 최적화된 사업이나 단기적 성과도 좋지만, 기후금융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선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