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8일(월)
[대기업이 협력사와 상생하는 법 (上)] “여섯 아이 대학 등록금 걱정 말아요”

대기업·협력사가 함께 ‘공동근로복지기금’ 조성
포스코, 작년 기금 설립 88社 1만5000여 명 대상
초등생 때까지 양육비, 대학 학자금 전액 지원

최영주(44)씨는 여섯 아이의 아버지다. 고등학교 2학년 큰딸을 시작으로 중학교 3학년 쌍둥이, 열두 살, 아홉 살, 그리고 올해 세 살 된 막내가 있다. 최씨 부부는 대가족을 이뤄 다복(多福)하게 사는 게 꿈이다. 형제들과 어울려 살아온 경험을 자녀들에게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최씨는 열아홉 살에 포스코의 협력사인 ‘장원’에 입사했다.

최씨는 “쇳물이 나오는 ‘고로(高爐)’에서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걸 아니까 첫째 딸이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한다”며 웃었다. 그는 “딸이 예전에 학비가 적게 드는 경찰대를 가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서 “사립대 가면 엄마 아빠가 등록금 때문에 부담 될 것 같으니까 부모 생각해서 마음을 그렇게 썼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포스코가 협력사 직원 자녀에게도 대학 학자금 전액을 지원해주는 상생 기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씨는 자녀들에게 말했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다 좋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너희 가고 싶은 대학으로 가라.”

국내 주요 기업이 사내 복지를 넘어 협력사의 복지도 챙기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는 원·하청 기업의 상생을 돕기 위해 ‘공동근로복지기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그룹사와 협력사가 함께 기금을 조성하면 여기에 일정 규모의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 기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자녀 학자금 지원이다. 직원 수가 적은 소규모 협력사들도 대기업 수준의 학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호응을 얻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협력사에 근무하는 최영주씨. 지난해 포스코와 협력사가 공동으로 조성한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통해 여섯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까지 전액 지원받게 됐다. /포항=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협력사에 근무하는 최영주씨. 지난해 포스코와 협력사가 공동으로 조성한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통해 여섯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까지 전액 지원받게 됐다. /포항=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협력사 직원도 학자금 최대 1억6000만원까지 지원

대기업과 협력사의 상생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협력사가 많고 대상 직원도 많은 제조업 기반의 기업은 더 그렇다.

“제철소라는 대규모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역할이나 일은 제각각입니다. 그룹사 안에서도 급여 차이가 있고, 협력사별로도 그렇겠죠. 그룹사와 협력사가 각자 해야 할 역할도 분명한 거고요. 하지만 ‘복지만큼은 차별 없이 가자’는 게 공동기금의 취지입니다.”

지난 21일 포스코 협력사 에스엠 사무실에서 만난 공윤식 대표는 현재 포항제철소 공동근로복지기금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현재 기금이 학자금 지원을 중심으로 직원 휴양 시설 이용 등에 쓰이고 있지만 향후 다양한 복지 정책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라며 “기금 대부분은 포스코가 출연하고 있지만 협력사에서도 매출에 따라 일부를 출연하는 협력 모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협력사에 학자금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된 ‘기금’부터 설립해야 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가 내부 직원에게 학자금을 주더라도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서 사내 기금을 조성해 지원해야 한다”면서 “협력사 직원에게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어렵고 ‘공동근로복지기금이’라는 별도 기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협력사들과 함께 협력사 직원의 처우 개선과 복지 지원을 목표로 지난해 6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설립했다. 기금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 각각 조성돼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출범 당시 최초 출연 규모는 총 112억원. 국내 공동근로복지기금 중 최대 규모다. 올해 상반기에도 81억원을 추가로 출연했다. 참여 협력사는 포항제철소 47곳, 광양제철소 41곳 등 총 88사 직원 약 1만5000명이 대상자다.

출연된 기금은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통해 협력사 직원에게 ▲2자녀 이하 8000만원 ▲3자녀 이하 1억2000만원 ▲4자녀 이상 1억6000만원 등의 한도 내에서 조건 없이 학자금으로 지원된다. 태어나서부터 초등학생 때까지는 양육 지원비로 자녀 한 명당 연간 100만원을 지급한다. 중고등학생은 특수 목적 중·고등학교나 자율형사립고에 진학 시 학자금 전액을 주고, 대학생에게도 학자금 전액을 지원한다. 해외 유학을 가거나 의과대학·건축학과 등 5~6년을 다녀야 하는 학부에 진학할 때도 전액을 지원해준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 여성 김소연씨도 이 기금에서 양육 지원비를 받았다. 김씨는 오전에는 광양제철소 협력사 ‘포스플레이트’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김씨는 “남편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혼자 버는 돈으로 네 식구가 생활해야 하는데 지난해부터 양육 지원비가 나와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올해 받은 지원금으로 초등 6학년과 5학년 두 아이의 학용품을 샀고, 새 옷과 신발도 사 줬다”고 말했다.

“복지만큼은 똑같이”… 협력사 품은 대기업

더나은미래가 고용노동부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원청기업과 협력사가 조성한 공동근로복지기금은 총 447개다. 연도별 설립 수를 따지면 도입 첫해인 지난 2016년에는 13개에 불과했지만 2017년 27개, 2018년 40개, 2019년 71개, 2020년 182개로 매년 늘었고, 지난해에만 114개가 설립됐다.

국내 첫 사례는 현대엘리베이터다. ‘현대엘리베이터 설치협력사공동기금’이라는 이름으로 2016년 1월 12억6000만원 규모로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협력사 59곳 2000명이 혜택을 봤다. 이듬해 2월 현대삼호중공업이 협력사와 공동 기금을 최초 5억5000만원 규모로 만들었다. 참여 협력사는 64사, 대상 직원은 7000명이었다. 이후 LS산전 동반성장공동기금(17사 2000명), SK에너지 설비협력사공동기금(26사 3000명), 현대중공업 협력업체공동기금(116사 1만명), 삼성중공업 사내협력회사공동기금(86사 1만1000명) 등 여러 대기업이 기금을 만들었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한 기업 447곳 중에 대기업 비율은 의외로 높지 않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설립된 공동근로복지기금 71개 중에서 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은 5곳으로 약 7.0%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50인 미만 기업이 41곳으로 전체의 57.7%를 차지했다. 300인 미만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62곳으로 87.3%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이 화끈하게 돈을 내놓으면 기금이 쉽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매년 소진되는 돈이기 때문에 직원이 많을수록 기업의 부담이 크다”면서 “장기적인 자금 조달 계획이 서지 않으면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포스코와 협력사의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에는 약 2년이 걸렸다. 지난 2018년 포스코의 주요 그룹사와 협력사들이 상생 경영과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위드 포스코 동반 성장 실천 협약’을 체결했고, 2020년에는 그룹사와 협력사가 참여한 대의 기구인 ‘상생협의회’를 꾸려 격주 혹은 매달 마라톤 회의를 했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지난해 6월 ‘상생발전 공동선언문’을 만들고 공동 기금을 조성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협력사의 헌신과 솔선수범으로 지금의 포스코가 있다”며 “나아가 상생 발전이라는 기본 가치를 실현하며 서로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포스코는 기금이 지속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포스코에서 기부금을 출연하고 있고, 올 하반기에도 사업 계획에 따라 추가 출연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 민감한 MZ세대 ‘호응’… 현장에 젊은 인재 늘어난다

협력사 직원들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포항제철소 협력사 ‘대명’의 한정석 차장은 지난해 6월 24일 기금 설립을 알리는 ‘포스코-협력사 상생발전 공동선언식’의 진행을 맡았다. 그는 “당시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이벤트성 사업으로만 생각했다”면서 “막상 공동 기금이 만들어지고 학자금이 전액 나오고 양육 지원비도 나오니까 직장 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회사에서 종전에 지원하던 학자금이 한 학기 200만원으로 제한돼 있었어요. 그게 전액으로 풀린 거죠. 금액으로 치면 엄청난 건 아니지만 아내가 무척 좋아했어요. 대학생 자녀를 셋 둔 동료가 있는데, 그런 분은 정말 좋아하죠.”

회사 복지가 좋아지면서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던 소규모 협력사들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복지 제도에 민감한 MZ세대 사이에 이런 내용이 빠르게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늘고 있다. 한 차장은 “예전에는 포항 주변 지역 청년들을 알음알음 뽑아왔는데 최근에는 다른 지역에 사는 청년들도 회사로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이광용 광양제철소 공동근로복지기금 대표도 “최근 공동 기금 덕에 협력사 직원들의 복지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고 직원들도 만족하는 분위기”라며 “이직이 잦은 편이었는데 기금 만들어지고 나서는 이직률이 확 낮아진 걸 체감한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만난 포스코 협력사 ‘화일산기’의 김범환 부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 부장은 “나를 포함해 제철소에 오래 근무한 선배들의 가장 큰 걱정은 젊은 인재들이 현장을 꺼린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간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못 받았지만 이제라도 인재가 많이 들어와 좋은 복지를 누리면서 일했으면 한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백지원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100g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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