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영하 20도 비닐하우스서 숨진 이주노동자… 1년 반 만에 산재 인정

추운 겨울밤을 비닐하우스에서 보내다가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씨에 대한 정부의 산업재해 승인이 결정됐다. 속헹씨가 목숨을 잃은 지 1년 반만이다.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일 논평을 내고 “오늘 근로복지공단 의정부지사의 산재승인 결정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결정”이라며 “다시는 열악한 임시가건물 숙소로 인한 피해자가 없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12월 30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가 속헹씨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근본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페이스북
지난 2020년 12월 30일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가 속헹씨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근본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페이스북

경기 포천의 한 농장에 취직한 속헹씨는 2020년 12월 20일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영하 20도에 이르는 한파가 닥친 날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패널로 만든 임시 거주 공간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난방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은 속헹씨의 사인을 ‘간경화로 인한 혈관 파열’이라고 발표했다. 직업환경전문의 의견은 달랐다. 한파로 혈관이 급격히 수축해 파열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이주노동자 ‘속헹’ 사망 1주기…숙소 개선 등 종합대책 촉구>

속헹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건강검진은 받을 수 없었다. 속헹씨가 일하던 농장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 건강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9년 지역건강보험이 의무화되고서야 가입했다. 대책위는 “속헹씨 사건은 열악한 주거 환경, 부실한 전력 및 난방장치 관리 문제, 건강검진도 받지 못하고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사회적 죽음’이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속헹씨 사망이 ‘개인질병에 의한 사망’이라며 중대재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건강검진 미실시를 이유로 3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대책위에 소속된 인권단체가 나서고, 언론에 보도되고서야 문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속헹씨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난 2021년 12월 20일에야 산재보상 신청이 이뤄질 수 있었다.

대책위는 “(속헹씨 사건이 전 사회적으로 알려진 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반쪽자리 대책이었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임시가건물은 여전히 금지되지 않고 있다”며 “이주노동자 기숙사 개선은 너무 더디고 또 다른 속헹들이 전국 곳곳의 열악한 숙소에서 악조건을 감내하며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인 근로자 지원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4시간으로 세계 2위다(2019년 기준). 국내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이보다 1000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실정이다. 갈 시간이 없고, 병원을 찾아도 의료진과 말이 통하지 않아 방문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난해 경기도의료원이 발표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허가제(E-9) 비자를 받아 입국한 캄보디아 노동자 63명 중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었다’고 답한 비율은 55.7%에 달했다. 가지 못한 이유는 의사소통 문제(34.9%), 갈 시간이 없어서(31.7%), 병원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23.8%) 등이었다(중복 응답).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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