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6일(일)
“멸균팩 섞이면 재활용 못 해”… 제지업계가 종이팩 반품하는 이유

우수한 재활용 자원으로 주목받던 종이팩이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천연펄프로 만들어진 종이팩에 알루미늄을 섞은 멸균팩 사용이 늘면서다. 멸균팩은 펄프에 합성수지로 코팅한 일반팩과 달리 장기간 실온 보관할 수 있도록 알루미늄을 중복으로 코팅해 만들어진다. 다만 재활용 과정에서 알루미늄 입자가 펄프에 박히거나 황변 현상을 일으켜 원료의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최근 제지업계에서는 종이팩 재생원료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갈 곳 잃은 종이팩은 결국 폐기될 수밖에 없다.

멸균팩 사용이 늘면서 종이팩 재활용률이 감소하고 있다. 종이팩 재활용률은 2014년 26.5%에서 2020년 15.8%로 10%p 가까이 떨어졌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제공
멸균팩 사용이 늘면서 종이팩 재활용률이 감소하고 있다. 종이팩 재활용률은 2014년 26.5%에서 2020년 15.8%로 10%p 넘게 떨어졌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제공

제지업체 “멸균팩 섞인 종이팩은 안 받습니다”

멸균팩 제품은 일반 종이팩에 비해 유통기한이 길고 장기간 실온 보관이 가능해 사용량도 점차 느는 추세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4년 종이팩 출고량 6만8000t 중 멸균팩은 1만7000t(약 25%) 수준이었지만 2020년 기준 6만7000t 중 2만7400t(약 41%)로 크게 늘었다. 2030년에는 멸균팩이 전체 종이팩 사용량의 6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팩 재생원료는 수거업체가 제지업체에 전달하고, 제지업체에서 직접 가공한다. 제지업체에서 종이팩 재생원료를 사용해 만드는 대표적인 상품은 화장지다. 종이팩 수거물에 멸균팩이 섞여 있더라도 그 비율이 15%를 넘으면 화장지 원료로 쓸 수 없다.

22일 국내 한 제지업체 관계자는 더나은미래와 통화에서 “수거업체에서 종이팩을 통으로 넘겨받을 때 멸균팩 혼입률이 15%를 넘으면 화장지를 만들기 어렵다”면서 “최근엔 멸균팩이 워낙 많아 대체로 반품하고, 종이팩 대신 천연펄프를 수입해 화장지 원료를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종이팩 수거업체에서는 제지업체에 납품하기 위해 멸균팩을 직접 분리하기도 한다. 경기의 한 종이팩 수거업체 관계자는 “인건비를 들여서라도 멸균팩 분리 작업 거쳐야 한다”며 “제지 업체에서 종이팩을 사용하지 않으면 또 비용을 들여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러한 추세에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도 매년 하락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종이팩 재활용률은 2014년 26.5%에서 2020년 15.8%로 10%p 넘게 줄었다.

알루미늄 섞인 멸균팩, 국내선 재활용 못 해

환경부는 멸균팩 사용 증가로 인한 재활용 감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경기 남양주시·부천시·화성시, 세종시 등 4개 지자체 6만4000가구가 대상이다. 하지만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멸균팩 수거량이 석 달 동안 2t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부터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장하려던 계획도 잠정 보류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멸균팩을 분리 배출해도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에 멸균팩 재활용 설비를 갖춘 제지 업체는 강원 강릉시의 삼영제지 단 한 곳이다. 삼영제지도 아직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업 초기 단계다. 실증에 성공하더라도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연간 600t에 그친다. 한 해 국내 멸균팩 사용량인 3만t의 2% 수준이다.

국내와 달리 유럽에서는 종이팩 재활용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유럽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2016년 47%에서 2019년 51%를 넘어섰다. 종이팩 재활용률이 80%를 웃도는 스웨덴은 전국에 ‘스테이션(station)’으로 불리는 재활용 시설이 지역 주민 수에 비례해 체계적으로 설치돼 있다. 멸균팩 재활용 산업도 발달해 있어 제지 업체들이 멸균팩의 부산물인 펄프 외에도 알루미늄, 플라스틱까지 발전소를 가동하는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멸균팩 사용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이를 재활용 할 수 있는 자원순환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제지업계 관계자는 “시민이 종이팩을 선별 배출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업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샘”이라며 “멸균팩 기반이 전무하기 때문에 공공을 주도로 멸균팩 분류 체계를 만든 뒤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배연정 서울대 그린에코공학연구소 실장은 “제지업체 입장에서 멸균팩을 재활용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려면 수십억의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며 “멸균팩 재활용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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