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6일(일)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보물섬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어느 밤, 영국 런던 번화가의 어느 작은 도로에서 ‘하이드’라는 남자가 소녀를 무참히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하이드에게 “돈으로 소녀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했고, 하이드는 지역 내 명망 높은 지킬 박사의 서명이 적힌 백지 수표를 건네주고 자리를 떠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서막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자아에 내재하는 또 다른 자아에 쫓기는 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가 사실은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을 지닌 하이드였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최근 한국의 어느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평가기관이 ‘ESG 워치리스트’를 발표했다. ESG 리스크가 높은 요주의 기업 9곳을 선정해 공개한 것이다. 오염물질 배출 및 배출량 조작,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사건, 근로자 산업재해, 고객정보 유출 사고, 하도급업체 기술 유용, 총수일가 횡령, 뇌물공여, 계열사 부당지원, 정경유착을 통한 합병 등이 선정 이유였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ESG 경영을 선언하고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타 ESG 평가에서는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ESG 우수기업으로 ESG 경영을 잘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러한 이중성을 막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학교의 알폰소 델 주디체 교수와 실비아 리가몬티 교수는 기업의 부정행위와 ESG 평가 결과와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ESG 평가는 복잡한 설문지와 기업이 공개하는 정보, 그리고 기업이나 기관의 위법행위 현황, 사회적 평판 등을 이용하는데 이때 이 정보들의 출처가 각 조직에서 발행한 보고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했다. 재무보고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되었지만, ESG와 같은 비재무보고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므로 기업의 ESG 정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노출해 궁극적으로 ESG 점수의 신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스스로 공개한 정보가 ESG 평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유리한 정보만 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시장과 기업의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키며 대리인 문제를 가속화해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어느 조직이 좋은 ESG 평가를 받기 위해 불완전한 공시를 하는 것은 ESG 경영을 내재화하고 고도화하는데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조직의 제대로 된 ESG 수준을 알기가 어렵고,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소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이 ESG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는 순간, ESG는 경영진의 관심 밖 주제가 될 가능성도 크다. 신경 쓸 것 많은 경영진 입장에서는 여러 이유로 꼭 해야만 하는 숙제거리 하나를 해치운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이라면 ESG 평가 결과에 상관없이 경영진이 많은 관심을 갖겠지만, ESG 경영을 흉내만 내는 조직일 경우 오히려 좋은 ESG 결과가 경영진의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ESG 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투명하고 균형 있는 공시가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명의 연구자는 2007년부터 10년간 실제 기업의 공시내용과 기업이 야기한 총 71개의 스캔들(부정행위) 사이의 영향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기업과 시장 참여자 간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3자 검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제3자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공시하는 내용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ESG 공시내용을 검증받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에서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누가 더 큰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했는데, 제3자 검증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외부 기관으로부터 보고서를 검증받은 기업은 스캔들이 있더라도 등급이 크게 악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조직이 ESG 공시에 대한 외부 검증을 받으면, 기업이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해서 보고서에 담을 수가 없게 되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 균형 있고 투명하게 공시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ESG 정보 품질이 좋아지고 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리 수용하기 때문에 스캔들이 생기더라도 기업의 ESG 등급이 크게 악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EU(유럽연합)의 지침 중 하나인 ‘2014/95/EU’는 재무정보에 대해서 법적으로 감사인을 확인하도록 요구하지만 ESG와 같은 비재무 정보에 대한 감사와 검증은 요구하지 않고 있다. 다만 ESG 공시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외부 검증이 ‘더 명확하고 정확한 정보’를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자는 ESG 공시도 재무정보와 마찬가지로 의무적으로 외부 검증이 이루어진다면,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행해지는 기업의 이중적인 행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앞서 ‘ESG 워치리스트’를 공개한 기관의 대표도, 워치리스트라는 감시기능을 통해 기업이 ESG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ESG 경영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소설가 스티븐슨의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이 있다. 바로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본 ‘보물섬’이다. 짐 호킨스라는 소년이 우연히 얻은 보물섬 지도를 따라 보물찾기에 나서며 흥미진진한 모험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긴 항해와 해적단과의 싸움 등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결국 선(善)과 정의(正義)를 지킨 호킨스 일행이 보물을 얻게 되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유혹을 이겨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조직이 될지, 아니면 짐 호킨스처럼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고 귀한 보물을 얻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Alfonso Del Giudice & Silvia Rigamonti (2020), “Does Audit Improve the Quality of ESG Scores? Evidence from Corporate Misconduct”, Sustainability, 12(14), 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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