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7일(금)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사회적기업 vs. 소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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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사회적기업’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2008년 8월이다. 당시 경기 화성에 있는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총괄본부의 사회공헌을 담당하면서다. 사회공헌 담당의 역할은 농번기에 1사 1촌 봉사활동, 겨울이 오기 전에 집수리 봉사, 봄가을에 제부도나 연구소 인근 하천 쓰레기 줍기 등 주로 임직원이 참여하는 봉사활동 위주였다. 새롭게 맡은 업무가 낯설지만 흥미가 생겼고, 단순 봉사활동이 아닌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화성시 새마을회 사무국장을 만나게 됐다. 나의 고민을 들은 사무국장은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기업을 함께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분이 제안한 사회적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70세 이상 노인분들께서 새마을회에서 제공한 공간에서 뻥튀기를 생산·포장하고, 제품은 화성시 관내 공공기관에 무인 판매대를 설치해 개당 1000원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뻥튀기 생산을 위한 초기 설비비만 3000만원이 필요했다.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해 거금 3000만원을 집행하기 위한 내부 승인 절차를 진행했다. 다행스럽게도 사회공헌 담당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회사의 승인을 받았고, 얼떨결에 ‘H&S 두리반’(현대차의 H, 새마을회의 S를 따온 이름)이라는 민관협력 모델의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자활개념으로 시작된 H&S 두리반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성시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빵을 만들어서 화성시 전역에 납품하고 있고, 직업학교 학생들이 제빵 실습을 하는 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될 당시 사회적기업은  대부분 자활기업, 사회복지단체, NGO 등에서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고용노동부 주도로 2008년 사회적기업 육성 기본 계획이 수립되면서, 대기업의 사회적기업 설립, 육성, 물품 구매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사업이 나타나게 됐다. 포스코는 장애인 일자리창출을 위해 포스위드라는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설립해 포스코 작업장의 작업복 세탁, 총무·후생 업무 위탁을 맡겼다. 현대차그룹은 3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와 함께 장애인과 노인 보조기구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이지무브’를 설립했다. 삼성은 2010년 10월에 200억원을 투자하면서 취약계층의 자활·자립 지원을 위해 3년간 4개 분야에서 사회적기업 7개 설립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기업의 사회적책임이 사회적기업으로 집중되는 ‘사회적기업 전성기’였다.

지난 10여년간의 고용노동부와 기업, 사회적경제 기업의 노력 덕분에 현재 인증 사회적기업 3000여개에서 6만여명의 임직원이 근무 중이다. 6만명 중에 약 60%가 취약계층이라고 하니, 2007년 시작된 사회적기업의 설립 목적인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영역도 등장하게 된다. 인증을 받기보다는 스스로를 사회혁신 기업 혹은 체인지메이커로 규정하며, 보다 자율적이고 혁신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소셜벤처’라는 카테고리다. 이들은 주로 서울 성수동을 기반으로 활동했고, 이에 성수동은 ‘소셜벤처밸리’로 불리게 됐다. 현재 성수동에는 헤이그라운드를 설립한 루트임팩트를 비롯해 크레비스파트너스, 임팩트스퀘어, MYSC, 소풍 등 임팩트투자사와 액셀러레이터가 둥지를 틀고 300여개의 소셜벤처가 새로운 사회적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소셜벤처의 성장과 함께 2017년 10월 대통령은 헤이그라운드를 방문해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회적가치 창출 기업에 투자하는 1000억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 조성,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적경제기업이 공급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구매, 신용보증기금에서 사회적경제 분야에 5000억원의 보증 지원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후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2018년 5월 ‘소셜벤처 활성화 방안’을 발표면서 소셜벤처의 창업, 기술개발, 투자, 보증 지원 등 사회적기업과 구분되는 소셜벤처의 등장을 공식화했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하위 법령을 정비해 소셜벤처 기업이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지난해 8월말 기준으로 국내 소셜벤처의 수는 1500여개로 늘어났다. 이제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청년 창업가들은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를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창업 환경은 여전히 어렵지만 지난 10여년간 이러한 선택을 통한 성공 스토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현대차정몽구재단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 2기 출신의 두손컴퍼니는 노숙인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종이 옷걸이를 제작하고, 옷걸이에 광고를 유치하는 사업으로 창업했다. 지난 2019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물류 풀필먼트 사업으로의 변화에 성공해 소셜벤처 제품의 보관, 포장, 배송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H-온드림 6기인 테스트웍스는 인공지능 데이터, 자동화 및 소프트웨어 테스팅 전문 사회적기업이며 발달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테스트웍스는 취약계층에게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하는 분야를 발굴해 교육 훈련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경쟁력을 심어줬다. 생활지도 매뉴얼과 맞춤형 근무 지원으로 ‘퇴사율 제로’를 기록하고 있다.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새롭고 혁신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단순히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두드러지는 점을 더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교육해 차별화된 직무 능력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이슈를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성숙기에 접어든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창의적이고 혁신적 도전을 하면서 사회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고 관련 생태계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이윤과 사회적 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그 활동 양상이 기존의 정부나 기업, 비정부기구 가운데 어느 부류에도 딱 집어넣기 어려운 ‘제4섹터’가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이윤추구를 확실히 한다는 점에서 사기업에 가깝지만, 자신들의 비영리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기업과 구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여년간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변이, 복제, 진화하며 한국형 제4섹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섹터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돈도 벌고 일자리도 창출하면서 사회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착한 기업’ 만들기에 도전하는 이 시대의 체인지메이커에게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상호 보완적으로 진화하기를 바란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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