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개발변화의 현장④
몽골 울란바토르
유연탄 사용하는 주민들 매연으로 가시거리 짧고 호흡기 질환 심해져
지세이버(G-Saver)
대한민국 ‘적정기술’ 1호열 붙잡아두는 방식으로
빈곤층 난방비 절약 효과 몽골 정부 입찰 낙찰돼 2011년부터 본격 사용
“예전에는 석탄을 땐 지 2시간 만에 갈아야 했거든요. 요즘은 4~5시간 만에 석탄을 갈아요. 지세이버(G-Saver)를 설치하니까 오랫동안 따뜻해요. 어떤 때는 너무 더워서 문을 약간 열어놓기도 해요.”
지난해 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바이아르츠측(여·39)씨는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바깥은 영하 30도가 넘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천막으로 지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내부는 훈훈한 온기로 가득했다. 바이아르츠측씨는 2011년 9월 지세이버를 설치했다. 지세이버는 기존 난로에서 쉽게 빠져나가는 열을 붙잡아두는 축열기(蓄熱器)다. 타원형 함석통 안에 축열재료인 맥반석과 황토, 진흙 등을 넣은 대한민국 제1호 ‘적정기술’ 제품이다.
“궁금해하는 이웃이 많아요. 집에 놀러 와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땔감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줘요. 석탄을 구하기 어려워 나무나 소똥, 말똥을 연료로 쓰는 시골에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몽골의 겨울은 가난한 바이아르츠측씨의 여섯 가족에겐 재앙이다. 그 겨울은 무려 9개월 동안 계속된다. 남편은 11월부터 1월까지 탄광에서 일한다. 주말도 없이 2주마다 밤샘 근무를 해서 버는 돈은 20만투그릭(20만원 남짓).
“탄광이 문을 닫는 봄부터 가을까지 큰딸이 벽돌 공장에서 일해서 하루 7000투그릭씩 벌어요. 지세이버 덕분에 아끼는 한 달 석탄 값 4만투그릭(4만원 남짓)이 우리에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몽골 빈곤층 한 달 생활비 중 70%가량이 난방비
‘지세이버’는 몽골 현지인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있을까. 2009년 김만갑 굿네이버스 적정기술 전문위원이 지세이버를 개발한 건 몽골의 ‘추위’와 ‘매연’ 때문이다. 서태원 굿네이버스 몽골지부장은 “60만명으로 계획된 도시에 현재 150만명이 거주하는데, 이 중 무허가 게르촌에 사는 유목민만 해도 30만명가량”이라고 말했다. 전기나 중앙 난방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 게르촌의 빈민들은 난로를 쓴다. 그 연료는 유연탄과 나무다. 빈곤층 한 달 생활비 15만원 중 10만원(70%가량)이 난방비다. 30만명이 매일 뿜어대는 유연탄 매연 때문에 울란바토르는 겨울철이면 가시거리가 채 50m도 안 된다. 울란바토르의 5세 이하 어린이 호흡기 질환자는 다른 지역의 15배다.
기자가 만난 칸토고(여·44)씨도 그중 하나였다. 한눈에 봐도 초췌하고 힘이 없었다. 18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남매를 키워온 칸토고씨는 폐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남의 게르에 얹혀살고 있었다. 칸토고씨는 “월 4만투그릭씩 내야 하는데, 3개월째 임대료를 못 냈다”고 말했다. 이날 둘째아들 빈바자우(12)군은 집에 없었다. 오전 9시부터 2~3시간 걸리는 탄광까지 걸어서 석탄을 주우러 갔다고 했다. 칸토고씨는 “석탄 차량이 움직일 때 떨어진 부스러기 석탄을 주워와서 불을 때는데, 요즘엔 너도나도 나오는 바람에 이조차도 힘들다”며 “저녁 8시쯤 돌아오는데, 작은 마대자루 절반도 채우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세이버 대량 보급 위해 사회적기업 세워
빈곤층의 삶은 ‘난방’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굿네이버스는 지세이버를 몽골에 대량 생산·보급하기로 하고, 2010년 12월 사회적기업 ‘굿쉐어링(Good Sharing)’을 창업했다. 국내 NGO가 해외에 세운 첫 번째 사회적기업이었다. 윤석원 굿네이버스 적정기술센터 과장은 “현지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술이전을 해주고, 현지인을 고용해 수익을 지역에 환원할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을 세웠다”고 말했다.
지세이버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2011년부터. 난로와 연료 딱 두 가지밖에 없던 몽골의 난방 시장에 ‘축열기’라는 낯선 제품이 등장했으니 이를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우선 굿네이버스는 캠페인을 통해 자금을 마련, 굿네이버스 결연 가정 위주로 4000대가량을 보급했다. ‘입소문’ 마케팅을 시도한 것이다. 1년 만에 효과가 났다. 지난해 몽골 정부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동민 굿쉐어링 대표는 “몽골 정부의 난방제품 입찰에 낙찰돼 1500대가량(1억5000만원 상당)을 보급했다”며 “시중에 판매되는 26개 기업의 난방제품 중 6개 기업만이 선정됐는데, 이중 굿쉐어링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울란바토르시청 대기오염양질관리소 부소장 체 바트사이항(Batsaikhan.Ch) 박사는 “원래 바양골 지역은 시청에서 무연탄을 쓰려고 계획했는데, 지역 주민이 지세이버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바꿨다”며 “매연을 줄이고 땔감도 절약된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적정기술 사회적기업, 리스크 많지만 가능성도 무궁무진
지난해까지 몽골 빈민층에 보급한 지세이버는 8500대가량이다. 굿네이버스가 이 중 1000가정을 대상으로 ‘1일 석탄 사용 감소량’을 설문 조사한 결과, ‘2포대’라는 응답이 41%였고 ‘1포대'(27%) ‘3포대'(16%) 등으로 조사됐다. 한 가정당 연평균 40만원이 줄어든 셈이다. 또 76%가 ‘매연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윤석원 과장은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 15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지세이버와 사회적기업 굿쉐어링은 아직 시작 단계다. 김동민 대표는 “몽골 정부가 아파트 건립을 늘리거나 게르촌에 중앙 난방 도입을 확대하면 지세이버가 필요없는 시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적정기술 사업아이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빈곤층의 삶에 이렇게 가까이 접근해, 이렇게 확연히 개선한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적정기술’이 가진 힘이다.
울란바토르 북쪽 끝에 있는 타힐트 지역 바토이크(54)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을 한번 때보면 알아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정말 만족해요.”
영하 40도가 넘는 밤에 천막 속에서 이불을 꽁꽁 덮고 자던 가족에게 하룻밤이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울란바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