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구포 개시장 철폐 이끈 동물단체들 “개 식용 종식은 동물 복지 새 출발점…농장·야생으로 관심 넓힐 것”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상임이사 인터뷰

초복(初伏)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 국내 최대 규모 개시장인 부산 구포 가축시장이 완전히 문 닫았다. 여름만 되면 개 지육으로 보신(補身)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던 곳이다. 숱한 논란에도 60년 동안 맥을 이어왔지만 옛말이 됐다. 개 도축이 전면 중단됐고, 개 지육 판매 업소도 모두 철수했다. 2016년 경기 성남 모란 개시장 폐쇄에 이어 구포 가축시장까지 빗장을 잠그면서 ‘3대 개시장가운데 대구 칠성 개시장 한 곳만 남았다.

동물자유연대(이하 ‘동자연’)와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는 구포 가축시장의 퇴장을 지켜보며 “한국 동물권 운동 역사에 기록될 뜻깊은 현장이라는 논평을 냈다. 동자연과 카라는 지난 2년간 공무원, 정치인, 시장 상인들과 끈질기게 협상해 가축시장 철폐를 이끌었다.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모란 개시장 폐쇄 때와 다르게 대화의 장 안에서 평화롭게 마무리됐다는 평가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조희경(58) 동자연 대표, 전진경(55) 카라 상임이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오랜 전우다. 각각 20, 17년간 동물권 운동에 헌신하면서 뜻을 함께했다. 이날도 각자 몸담은 단체의 로고를 새긴전투복’을 나란히 입고 나왔다.

조희경(58·왼쪽) 동물자유연대 대표와 전진경(55) 동물권행동 카라 상임이사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동물권 운동의 최전선에서 함께 싸웠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항상 구조 현장이나 정책 토론장에서 만나 밝은 얼굴로 마주할 일이 별로 없었다”며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매년 100만 마리 도축…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조 대표는 각개전투하던 활동가들이 뭉쳐 동물학대방지연합을 결성한 1999년 동물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1년에는 동물자유연대를 세워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전 이사는 카라의 전신인 아름품의 2002년 창립 멤버다. 우리나라에서 동물권 운동이 태동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김홍신 전 국회의원이 추진한 개식용 합법화를 무산시킨 1999년경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조 대표나 전 이사 모두 한국 동물권 운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부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조희경(이하조’) = ‘개를 먹는 풍습’은 해묵은 논쟁거리였다. 찬반으로 갈려 오래 싸웠다. 이제는 좀 달라진 것 같다. 개는 먹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느낌이다. 논쟁할 주제가 아니라 해결할 문제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전진경(이하전’) = 2015년부터 부산 동물보호단체들이 구포 가축시장 철폐를 요구했으니 4년 만에 결실을 봤다. 협상 과정은 지난했지만, 수십 년간 개 도살과 지육 판매를 생업으로 삼았던 상인들과 대화로 실마리를 풀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모란 개시장 철폐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고 들었다.

= 성남시의 기조는원칙대로’였다. 불법 개 도살 근절에 초점을 맞췄고, 금전 보상도 전혀 없었다. 상인들의 반발이 극심할 수밖에. 부산은 처음부터 경제적인 보전 방안이 논의됐기에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이 부분이 비판 지점이 되기도 한다. “개 잡아서 잘 먹고 잘 산 사람들에게 돈까지 주느냐”는 반발이 동물단체에서도 나왔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개시장 철폐가 빠르게 이뤄졌고, 덕분에 개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 12일 대구 칠성 개시장에서 열린 개 식용 철폐 전국 대집회에 참여한 전진경(맨 왼쪽) 이사와 조희경(맨 오른쪽) 대표. ⓒ연합뉴스

상인들 입장에서는 생업을 내려놓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 구포 개시장에서 30년 동안 일한 여성분을 만났다.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고 있길래 “개는 예쁘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예쁜데 먹고살려면 별수 있느냐”고 되묻더라. 지난 1일 구포 개시장 폐업 협약식이 열렸다. 참석한 상인들이 죽은 개들을 위해 위령제를 열어주자고 제안하더라. 사실 이분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고통받던 개들을 구원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보면 상인들의 마음까지 구원한 셈이다.

―’보신탕’을 찾는 사람이 과거보다 확실히 줄었다. 어차피 사라질 개시장을 굳이 세금까지 투입해 가면서 문 닫게 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 전국에 약 3000개의 전업 개농장이 있다. 평균 300마리 정도 기른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연평균 100만 마리의 개들이 도축된다. 이 개들은 뜬장에 갇혀 발 한번 땅에 못 붙인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면서 6개월 정도 살다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는 가혹한 운명이다. 물론 개 식용은 곧 없어질 것이다. 그럼 그때까지 보고만 있는 것이 옳은가?

= 구포 가축시장 철폐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음성적으로 개 도축, 지육 판매가 이뤄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시장이 어떤 곳인가.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는 곳이다. 이런 장소에서 지금까지 개를 죽이고 고기를 전시했다. 이런 끔찍함이 시민의 생활에 아무렇지 않게 녹아나지 않도록 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구포 개시장 철폐 과정에서 동자연과 카라는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IS)의 도움을 받아 86마리의 개를 구조했다. 내버려두면 도살될 처지였지만,두 사람은 웃지 못했다. 구조 이후 치료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4마리의 개가 눈에 밟힌다며 한숨을 쉬었다.

개 식용 찬성자나 개 식용 반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소와 돼지는 먹으면서 유독 개만 안 되는 이유를 묻는다.

= 동물권 운동의 흐름을 살피면 어느 나라든 유기 동물 보호로 시작해 농장 동물과 야생동물의 복지로 확대된다. 우리는 지금 과도기에 있다. 관심의 폭을 점차 늘려가는 중이다. 소와 돼지는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축산 동물도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밀집 사육을 해소하고 본성을 억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개 식용부터 막아보자는 것이다. 관습적으로 소와 돼지를 먹었으니 개도 합법적으로 먹게 하자는 논리는 동물권이 높아지는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 완전히 역주행하는 것이다.

각자 몸담은 단체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이야기 나누는 전진경(왼쪽) 이사와 조희경 대표.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성장통 겪는 한국 동물권 운동… “뜨겁게 뭉쳐서 이겨내야”

조 대표와 전 이사는 우리나라 동물권 운동의 발자취를 사람에 비유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정도”라고 말했다. 이미 1970년대 초반 동물권 운동이 움튼 미국 등 서구권과 비교하면 역사는 짧지만, 빠르게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진통이 따랐다. 전 이사는 “이제는 성숙한 동물권 운동을 고민할 시점”이라며 “지향하는 바에 따라 노선 투쟁을 벌이되 때로는 대의로 뭉쳐 함께 목소리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단체들에 2019년은 유독 시렸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케어 사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 고통스럽다. 어제(17)도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박소연 케어 대표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나. 박 대표도 유 대표를 사기 혐의로 맞고소한다고 한다. 동물단체들이 서로 물고 뜯는 과정을 지켜보는 대중의 시선이 자꾸만 차가워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단체의 잘못된 행동이나 태도가 마치 동물단체 전반의 문제처럼 왜곡돼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끼리도동물권 운동 전체가 20년 가까이 후퇴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중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후원금에도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동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구조가 동물권 운동의 전부는 아니다. 구조 이후의 보호 대책을 세우고, 구조될 일 자체를 줄이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인식 개선을 위해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1999년을 우리나라 동물권 운동의 출발점으로 보면 이제 갓 성인이 된 셈이다.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다.

= 노선은 다양할수록 좋다. 동물해방전선처럼 선명성이 강한 단체도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서로의 신념과 역할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동자연이나 카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우리를 믿고 지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3대 개시장 가운데 대구 하나 남았다. 카라와 동자연은 칠성 개시장이 조속히 철폐되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동물단체들과의 협력이다.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 칠성 개시장이 철폐되는 날, 모두가 뜨겁게 뭉쳐 있었으면 좋겠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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