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6일(목)
기업 사회공헌 20년… ‘사회적 가치’에 눈돌리다

‘사회공헌 현주소 진단’ 7개 기업 담당자 심층 인터뷰

기업 사회공헌 2조원 시대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기업 사회공헌 비용 지출액은 2조9020억원에 이른다. 사회공헌의 역사도 무르익었다. 1994년 삼성이 기업 최초의 사회공헌활동 전담 조직인 ‘삼성사회봉사단’을 설립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과연 기업 사회공헌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을까. 더나은미래는 CSR 전담 부서에서 사회공헌을 10년 이상 체계적으로 추진한 주요 기업 7곳(▲SK ▲현대자동차 ▲LG전자 ▲KT ▲아모레퍼시픽 ▲유한킴벌리 ▲이랜드)의 담당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기업 사회공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진단해봤다.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더나은미래

◇기업 사회공헌 20년, 무엇이 변화했나

기업 사회공헌은 2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주요 600대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2006년 연간 1조8048억원에서 2015년 2조9020억원으로 약 60%가량 증가했다(전경련). 기업 자원봉사 참여율도 1999년 13%에서 2015년 18.2%로 올랐다(통계청).

SK행복나눔재단의 행복도시락. ⓒSK행복나눔재단

사회공헌 조직 규모도 체계화됐다. 기업 내 전담 부서를 만들거나,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1984년부터 기업 내 홍보실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공익 캠페인을 펼쳤던 유한킴벌리는 2002년에 사회공헌을 전담하는 CSR팀을 신설했다. LG전자도 2000년대 중반까진 지역 사업장에서 각각 사회공헌을 진행하다, 2008년 사회공헌 전담 조직이 생기면서 기업의 핵심 역량과 연계된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기프트카 캠페인’. ⓒ현대자동차그룹

이랜드그룹은 1991년 이랜드복지재단을 설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단이 그룹 사회공헌을 총괄하고 있다. 정영일 이랜드재단 사무국장은 “초기엔 사회공헌 전담 부서가 없고 홍보·마케팅팀에서 담당하는 수준이었다”면서 “사회공헌을 전문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기업 안팎에서 제기되면서 재단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재단과 CSR팀이 협업하며 사회공헌을 추진하는 곳도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함께 2012년부터 ‘H-온드림 오디션’을 통해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두손컴퍼니’ 등 지금껏 총 150여 개 창업팀이 사업비 지원금과 인큐베이팅을 받았다. KT의 청소년 공익활동 지원 사업인 ‘하자프로젝트’도 참가자 모집과 실행은 KT그룹희망나눔재단이, 멘토링은 KT 임직원들이 각각 담당하는 등 유기적인 협력을 이루고 있다.

LG전자의 ‘LG-KOICA 희망직업훈련학교’. ⓒLG전자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회공헌 내용도 달라졌다. SK는 장학, 취약 계층 지원, 사내 자원봉사 등 백화점식 사회공헌을 하다, 현재는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 SK그룹의 전체 아젠다를 사회적기업 키우기로 셋팅하고, 2011년 말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업체인 ‘MRO코리아’를 사회적기업 ‘행복나래’로 전환시켰다. 2015년엔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비례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도 세상에 내놨다. LG전자는 2011년부터 친환경 분야 사회적경제 조직의 성장을 지원하는 ‘LG소셜캠퍼스’ 프로그램을 LG화학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화두로 떠오른 ‘사회적 가치’, 기업 대응은?

최근 사회공헌 현장의 화두는 ‘사회적 가치 측정’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가치’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내건 것은 물론, 기업 사회공헌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기업은 사회공헌 프로그램별로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해, 사회적 가치를 도출하고 있었다. 예컨대 한 부모 여성의 창업 대출을 지원하는 아모레퍼시픽의 ‘희망가게’ 프로그램의 경우, 창업 가게의 월 소득, 상환율, 생존율 등 3가지 정량 지표를 바탕으로 경제적 자립 수준을 측정한다. 강승성 아모레퍼시픽 CSR팀 부장은 “월 소득은 한국 소상공인 평균 소득 대비 100% 이상, 상환율과 생존율은 80% 이상을 목표로 하는데 작년에는 모든 항목에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암 환자들에게 메이크업 방법 등을 알려주는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아모레퍼시픽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성과 측정은 지원 대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한킴벌리의 ‘학교 숲 운동’ 프로그램의 경우, 단순히 학교 숲을 많이 조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통해 숲의 가치를 체감하는 게 목표다. 손승우 유한킴벌리 커뮤니케이션&CSR 본부장은 “학교 숲 조성 사업 후 지역 주민과 교사들에게 ‘학교 숲을 조성하는 데 기부금을 내겠는가’ 등의 설문을 돌렸는데, 80% 이상이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면서 “프로그램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때는 수혜자 관점에서 변화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공헌 임팩트 내려면?… ‘사각지대 발굴’이 관건

기업 사회공헌의 강점은 ‘사각지대 해소’에 있다. 정부에서 매년 100조가 넘는 예산을 투입해 복지 정책을 펼치지만, 복지 시스템이 메우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늘 있기 마련이다. 특히 기업은 정부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수혜자를 지원할 수 있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사회공헌 활동의 임팩트를 높이기 위해 ‘사각지대 발굴’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도서지역에 인터넷망을 설치하는 KT그룹의 ‘기가스토리’. ⓒKT

이랜드복지재단은 지난 2015년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정순둘 교수팀과 함께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했다. 그 결과 노숙 가정, 학교 밖 청소년, 범죄 피해자 가족 등을 복지 사각지대로 꼽았다. 이듬해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신 질환을 가진 여성 노숙인을 위해 5200여 만원 규모의 임대주택 보증금을 지원했다. 어호선 현대자동차그룹 사회문화팀 차장은 “그룹 사회공헌 사업을 기획할 때 주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지원하는 것이었다”면서 “성폭력 피해 아동, 탈북민 및 이주 청소년에 이어 고령자의 교통안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고 했다.

유한킴벌리의 ‘시니어케어매니저’. ⓒ유한킴벌리

각 기업이 꼽은 사각지대는 무엇일까. 아모레퍼시픽은 ‘나눔 문화의 비활성화’를 사각지대로 설정했다.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 기업의 특성을 살려, 사회공헌 포털, SNS 등을 활용해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등 공익적 이슈를 지속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이정환 KT지속가능경영기획팀장은 “응급 환자를 원격에서 진료할 수 있는 설루션과 감염병 유행 지역의 방문 정보 알림 서비스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신재생에너지 활용과 미세 먼지 문제를, 유한킴벌리는 도시 숲 부족과 노년의 은퇴 후 삶을 각각 사각지대로 설정해 기업의 자원과 역량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랜드가 설립한 ‘목포이랜드노인복지관’. ⓒ이랜드그룹

‘협력’ 또한 사회공헌의 임팩트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꼽혔다. 대표적인 예는 SK그룹 주도로 지난해 말 결성된 기업 사회공헌 연합체 ‘행복얼라이언스’다. 행복얼라이언스는 기업들이 연합해 복잡·다변화하는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현재 멤버사는 총 35곳으로 SK그룹뿐만 아니라 SM엔터테인먼트, 전자랜드, 도미노피자, 토니모리 등 기업과 소셜벤처 로앤컴퍼니, 사회적기업 아름다운커피 등 다양한 브랜드가 참여한다. 유한킴벌리는 2012년부터 시니어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소기업을 육성 중이다. 총 33개 소기업이 육성됐고 코딩 강사, 디자이너, 도그 워커 등 450개 이상의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했다.

정무성 숭실사이버대 총장은 “이제는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면서 “하나를 하더라도 업의 특성을 살린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 사각지대가 좋은 사회공헌을 하는 방법 중 하나”라면서 “다만 기업들이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비영리기관과 같은 전문성을 가진 파트너 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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