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Cover Story] 백만장자가 된 부부… “우리는 임팩트 투자에 올인한다”

[임팩트 투자가 바꾸는 세상] <1>
임팩트 투자가 부부, 리사&찰리 클라이스너 인터뷰

‘넥스트’ 수석 엔지니어·’애플’ 초기 멤버 출신
“투자 방식 바꿔야 사회도 바뀔 수 있다”
2000년 KL 펠리시타스 재단 설립

재단 임팩트 투자 비율 100% 달해
수익률 높고 금융 위기에도 거뜬
단기 투자는 지양


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가 됐다. 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가 늘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여기 ‘세상을 바꾸는 투자자’의 삶을 선택한 부부가 있다. 없던 길은 새롭게 내고, 필요한 씨앗도 뿌렸다. 함께 갈 마음 맞는 동료도 모았다. 2000년 KL 펠리시타스 재단(KL Felicitas Foundation)을 설립하고, 15년 넘게 임팩트 투자자로 활동해 온 리사 클라이스너(Lisa Kleissner) & 찰리 클라이스너(Charly Kleissner) 부부 <사진>이야기다. 이들의 여정은 오늘날 ‘임팩트 투자’ 흐름의 앞선 걸음이 됐다. 지난 3일, 2박 3일에 걸쳐 제주에서 개최된 글로벌 임팩트 투자 포럼 ‘D3 임팩트 나이츠(D3 Impact Nights)’에서 만난 클라이스너 부부에게 지난 10여년의 여정을 물었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기관 D3쥬빌리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에 더나은미래는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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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쥬빌리 제공

 
오스트리아 출신 컴퓨터 공학박사 남편과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 아내. 이들은 80년대 ‘기업가 정신 열풍’을 좇아 실리콘 밸리에 정착했다.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넥스트(NeXT)의 수석 엔지니어, 인터넷 상거래 스타트업 아리바(Ariba) 등 거쳐가는 스타트업마다 성공을 거뒀다. 아내 리사 역시 ‘애플’의 초기 멤버였다. 1999년, ‘아리바’가 떠들썩한 신규 상장(IPO)에 성공하면서, 이들은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됐다. 어떤 삶을 살지 고민이 뒤따랐다.

“당시 실리콘 밸리에는 인터넷 기업 열풍으로 자금이 넘쳐났다. 돈이 만드는 긍정적인 변화와 혁신도 봤지만, 돈 때문에 가족이 갈라서고 삶이 망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돈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뭔지, 죽을 때 어떤 삶을 살았다고 남기고 싶은지 스스로와 서로에게 계속 물었다.”(리사)

‘우리가 중요하게 믿는 가치에 돈을 쓰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자’. 긴 대화 끝에 부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2000년, 이들은 ‘KL 펠리시타스 재단(KL Felicitas Foundation)’을 설립했다. 다른 부호(富豪)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행보.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변화의 열쇠는 ‘투자’였다. 단, ‘수익’이 아닌 ‘사회적 임팩트’를 극대화하는 곳에 투자하는 것. 이들은 “투자 방식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Getty Images / 이매진스
Getty Images / 이매진스

◇세상을 바꾸는 투자

하지만 2000년대 초, 이들이 말하는 ‘임팩트 투자’ 개념을 이해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투자자들을 붙잡고 설명해도 ‘그런 투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처음엔 투자할 옵션 자체가 극히 적었다. 초기 2년은 거의 현금 자산으로 들고 있었다. 기껏해야 ‘담배회사’같이 부정적인 투자처를 걸러낸 옵션 정도를 추천받았다. 우리 생각이 실현 가능한지 막막했다.”

2004년, 우연히 읽은 제드 에머슨(Jed Emerson) 스탠퍼드 박사의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 임팩트 투자의 초기 선구자 중 한 명인 그는 ‘포트폴리오 전체를 사회적·환경적인 임팩트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균형 잡힌 수익을 내도록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부부는 “가야 할 방향을 봤다”고 했다. ‘재단에서 가진 자산의 일부를 임팩트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 전체를 임팩트와 가치에 맞게 정렬해 나가야겠다’고 목표를 잡았다. 적정한 수익도 내서, 이런 방식의 투자가 가능함을 증명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올해로 12년째, 재단의 ‘임팩트 투자’ 비율은 지난해 99.5%에 달했다. 현금 자산부터 채권, 부동산 등 포트폴리오의 99.5%, 거의 모든 자산이 ‘임팩트’를 기준 삼아 투자됐다는 의미다 . KL 펠리시타스 재단은 임팩트 자문사 소넨 캐피털(Sonen Capital)과 함께 8년간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리포트를 출시했다. 포트폴리오 구성, 재무 수익 등 모든 세부 정보를 공개한 것.

―포트폴리오 100%를 ‘임팩트 투자’ 하는 게 가능한가. 구성이 궁금하다.

“가능하다. 몇 년 전에 비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겼다. 만약,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큰 뜻이 있다면, 그 주제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우리 설문 결과에 따르면 임팩트 투자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현금’이다. 어디에 넣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포트폴리오에서 현금 자산은 약 3% 수준이다. 이 돈을 몇 년 전 석탄 회사에 큰 자금을 빌려줬던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같은 곳 대신, 지속 가능한 금융의 대표격인 ‘트리오도스(Triodos) 은행’이나, 지역 기업가와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뉴리소스뱅크(New Resource Bank)’ 같은 곳에 맡기는 식이다.”

―재무 수익이 났나.

“늘 따라오는 질문이다. 물론이다. 2013년 보고서에 의하면, 2006년부터 같은 기간 2.38%의 수익률을 올린 시장 투자 척도 대비, 우리는 2.56% 수익을 올렸다. 또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 내 포트폴리오 평균 35-39%정도가 하락했던 데 반해, 우리는 17%밖에 안 내려갔고 회복도 훨씬 빨랐다. 지속 가능하지 않거나 실물자산과 동떨어진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지 않았던 게 큰 이유였다.”

부부는 이어 “질문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며 말을 이었다. “투자로 발생하는 외부 효과는 결국 인류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그 값 역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간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단기 이익 극대화를 해 왔다. 이제는 일반 투자자에게도 각자의 투자가 사회·환경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는지 물어야 한다. 그 값이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무 이익만 비교하는 건 동등한 비교가 아니다.”

―임팩트 측정은 어떻게 하나.

“어려운 문제고 아직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각기 다른 자산 형태를 단 하나의 기준으로 측정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매트릭스에서 기준치(proxy)를 설정해 각각의 임팩트를 보고, 전체를 총합한다. 아직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연구 기관 NPC에서는 KL펠리시타스 재단 포트폴리오의 ‘사회·환경 임팩트’를 평가한 보고서를 냈다.”

◇포트폴리오 100%, ‘임팩트 투자’에 올인하다

2010년, 이들은 ‘토닉(Toniic)’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임팩트 투자에 동참하는 투자자들의 모임이다. 3년 전에는 ‘100% 네트워크 그룹’도 만들었다. 토닉 멤버 중 포트폴리오 100%를 임팩트 투자로 전환하는 데 동참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가족 재단, 가문 자산 관리, 임팩트 투자기관 등 50여 곳, 총 40억달러(4조7000억원)를 ‘100%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그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20억달러(2조3500억원) 상당이 100% 임팩트 투자로 전환됐다.

오는 12월, 토닉에서는 100% 그룹에 속한 이들의 51개 포트폴리오, 총 1100개 투자 목록을 공개할 예정이다. 원하는 주제, 자산 형태에 맞춰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구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공개할 자료를 활용하면, 임팩트 자문가가 없거나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이들의 시작을 돕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임팩트 투자’ 학술 연구도 촉진될 것이라 생각한다.”

―‘투자’가 아닌, ‘기부’ 같은 자선 방식으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오늘날 ‘돈이 굴러가는 방식’으로 지구 온난화, 환경 파괴, 기아, 사회 불평등 같은 여러 문제가 생겨났다. ‘이윤 극대화’만을 목표로 돈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걸 그대로 두면서, 번 돈의 일부를 기부하는 식으로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었다.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해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에 기부한다면서, 다른 한편에선 오일산업이나 채광산업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을 바꾸고 싶었다.”

―현재 투자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투자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지금의 ‘투자 이론’에선 ‘이익 극대화, 리스크 최소화’라는 한 가지 면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그 밖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외부효과’로 여겨 무시한다. 그러다 보니 지속 가능하지 않고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업에도 돈이 많이 흘러간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 ‘책임 투자’, ‘지속 가능 투자’ 같은 개념도 나왔는데. 임팩트 투자와는 어떻게 다른가.

“‘임팩트’ 관점에서 ESG는 그리 좋은 척도가 아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이지, 사회에 긍정적인 임팩트를 미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가령 영국 정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륨(BP)은 정유업체 중에서 ESG 지표가 제일 높지만 나라면 절대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석유 산업이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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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영

◇더 큰 ‘임팩트’를 위해

―‘임팩트 투자’가 여전히 규모가 너무 작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실이다. 우리 네트워크에 소속된 이들의 임팩트 투자 규모가 총 40억달러(4조7000억원) 정도다. 미국 내 전체 가족재단, 고액자산가 등 ‘임팩트투자’에 끌어들일 수 있는 이들의 총 자산규모가 약 4조달러(약 4700조원)니, 아직 0.1%에 불과하다. 우리 목표는 5년 내 1%에 해당하는 400억달러까지 규모를 키우는 거다. 10년 내 5~7%까지 늘어나는 걸 목표로 한다. 그 정도면 변화는 한순간에 찾아올 것이라고 본다.”

―임팩트 투자 10여 년 동안 생태계는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소수가 각개전투했고, ‘생태계’랄 것이 없었다. 판이 커지려면 생태계를 키워야 했다. 첫째로 투자할 만한 옵션이 적었다. 투자가 가능한 ‘임팩트 기업’을 키우기 위해, 인도를 시작으로 동유럽, 하와이 등에서 사회적기업을 키워내는 일을 시작했다. 비영리·영리 경계를 넘어 긍정적인 임팩트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에 자금도 투자하고 조언도 제공했다. 투자자와 사회적기업가를 매개하고 ‘임팩트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해 조언할 중간기관도 필요했다. 2011년, 임팩트 자문기관인 ‘소넨 캐피털’을 시작하는 데도 투자했다. 끝으로 투자자도 늘어야 했다. 임팩트 투자자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더 많이 알리는 일을 해 왔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가속도가 붙었다고 느껴진다.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자본이 사회의 선(善)을 위해 쓰이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 콘퍼런스인 ‘소캡(Socap, Social Capital Markets)’도 처음 개최됐다. 그때 우리 외에도 여러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임팩트’를 끌고 왔다는 걸 확인했다. 타이드 재단(Tides Foundation) 같은 곳은 70년대부터 ‘임팩트 관점’에서 투자를 이어왔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임팩트 투자’라는 흐름으로 묶일 수 있었고, ‘생태계’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본다.”

―향후 어떤 이들이 더 나와야 한다고 보나.

“임팩트 투자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톨릭 바티칸(Vatican)이 대표적이다. 바티칸에선 2014년부터 매년 ‘임팩트 투자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바티칸 은행, 가톨릭 투자 펀드 등도 ‘임팩트 투자’ 반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 35년간 수녀들을 위한 연금 펀드를 가지고 임팩트 투자를 해온 사례도 있었다. 각 지역 차원에서 ‘임팩트 투자’를 알리고 확산시킬 리더나 모임도 더 필요하다. 이번 ‘D3 임팩트 나이츠’ 같은 자리가 의미가 크다. 사람들의 의식도 계속 높아져야 한다. 임팩트 투자는 자산가나 투자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한 예로, 연기금에 대해서도 계속 물어야 한다.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캘리포니아 주 교사들의 퇴직연금펀드 중 일부가 사모펀드를 통해 범행에 사용된 총기를 제작하는 회사에 투자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의 연금이 사회를 해치는 데 기여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

임팩트 투자란 재무적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적인 가치를 고려한 투자다. 사회·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나 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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