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로컬 역량 지도 <2>
지역자산역량지수(KLACI)로 읽는, 인구 10만 이하 지역의 가능성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를 분석한 ‘지역자산역량지수(이하 KLACI)’가 소멸 위기론에 가려졌던 지방의 잠재력을 새롭게 조명했다. KLACI는 전국 229개 지자체를 인구 규모에 따라 ▲헤비급(100만 이상) ▲미들급(50만~100만) ▲웰터급(10만~50만) ▲라이트급(5만~10만) ▲페더급(5만 이하)으로 구분한다.
이번 분석에서는 특히 라이트급(35곳)과 페더급(56곳) 지자체 중 각각 상위 3곳에 선정된 ‘강소 지역’에 주목했다. 이들은 문화·복지·교육·정주환경 등 복합적 자산을 기반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지역의 유형과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발전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작지만 강한 라이트급의 반란…과천·진천·무안이 보여준 가능성
경기도 과천시(인구 약 8만명)는 이번 지수에서 라이트급 1위를 차지했다. 사망률과 자살률 모두 전국 최저 수준, 주택 노후도는 전국 최하위권. 재정자립도 전국 11위. ‘작지만 단단한 도시’라는 별명이 과하지 않다.

2020년대 들어 과천지식정보타운이 본격 조성되면서, 넷마블, 광동제약 등 IT·바이오 기업 유치를 가속해 올해 초 기준 850여 개 기업이 입주한 상태다. 재정자립도(11위), 상장기업수(23위) 등 경제활동력 지표 또한 상위권을 기록했다.
충북 진천군(인구 약 8만 6000명)은 비수도권 군 단위 중 유일하게 18년 연속 인구가 증가한 곳이다. 진천군은 2016년 이후 9년간 한화큐셀, CJ제일제당 등 기업 유치에 성공하며 12조 8000억원의 투자를 끌어냈다. 그 결과 농공산업단지업체수 25위, 재정자립도 17위를 기록하며 경제활동력 지표에서 높은 순위에 올랐고, 주택소유율(17위), 문화재수(12위) 등 생활기반력 지표 역시 상위권을 기록해 ‘안전복지형’의 유형을 보여줬다.
특히 등록 외국인 수가 전국 14위로 높았는데, 진천이 다문화 친화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진천군은 2027년까지 146개 사업에 총 3772억 원을 투입하는 ‘저출생·고령사회 대응 종합계획’의 3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다문화·외국인 포용’을 선정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이주노동자센터 새 단장, 긴급지원사업, 다문화가족 의료지원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남 무안군(인구 약 9만명)은 2005년 전남도청이 광주에서 무안 남악으로 이전하면서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이후 신도시 개발과 함께 청년 유입이 본격화하며, 청년인구순이동 지표는 전국 17위를 기록했다. 교육 수요도 동반 상승 중이다. 남악·오룡지구에는 행복초, 오룡초·중 등 신설 학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으며, 2026년 3월에는 오룡고등학교가 개교할 예정이다. 무안군의 ‘사설학원 수’ 지표는 전국 5위를 기록하며 ‘교육 중심지’로의 특성을 보여준다.
◇ 예술, 복지, 인프라로 무장한 페더급의 잠재력
페더급 1위는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전남 신안군(인구 약 3만8000명)이 차지했다. 신안군은 ‘섬’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예술과 복지로 극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신안군은 KLACI 지표 중 녹지율(2위), 문화기반시설수(7위) 등에서 상위권을 기록했다. ‘퍼플섬’과 ‘1도(島) 1뮤지움’ 정책을 통해 섬 전체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문화 브랜딩은 단순한 관광 유치 수준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되고 있다.
합계출산율(9위)도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출산지원금에 ‘거주지 제한’을 두지 않는 정책은 젊은 부부들이 신안을 출산·정착지로 선택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남 담양군(인구 약 4만5000명)은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길 등 독보적인 생태·관광 자산을 지역의 프리미엄 콘텐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안정생활형’ 지자체다. KLACI 기준 문화기반시설 수(8위)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 수(1위) 등에도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사회복지시설수가 많다는 것은 복지관, 쉼터, 상담소 등의 시설이 지역에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이 신속하게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한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어 있음을 뜻한다.
부산 중구(인구 약 3만8000명)는 상주인구 감소라는 원도심의 약점 이면에 숨겨진 ‘고밀도 인프라의 역설적 강점’을 보여준다. 1961년 개원한 메리놀 병원을 비롯해 의료기관병상수(1위), 보육시설수(6위), 상점수(14위) 등 핵심 도시 기능이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모습이다. 인구 대비 서비스의 접근성이 매우 높은 ‘콤팩트 시티’의 전형이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중앙정부가 지역 고유의 맥락까지 파악하긴 어려운 구조”라며 “결국 자본 중심 전략에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전국이 비슷한 모델로 획일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정책이 하드웨어 중심의 인프라 사업에 머물고, 1년 단위 단발성 행정으로 흐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단순히 다른 지역을 따라 하기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역 고유의 전략을 세울 때”라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