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다] 불평등 고용시장 바로잡기, ‘한국판 동등대우법’ 도입을

더나은미래 창간 15주년을 맞아 사회적협동조합 ‘스페이스작당’과 함께 연재하는 <청년이 묻다, 우리가 다시 쓰는 나라>에서는 안보·사회·공동체·상생 네 분야에서 청년 12명이 직접 제안한 구체적 정책 대안을 소개합니다. 이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구체적 대안들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계약의 초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어떤 사회를 상상하고 있을까요. 그 상상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다시 써야 할 미래의 서문입니다. /편집자 주
신동욱 스페이스작당 상임이사

대선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발이 닳도록 전국을 누비며 ‘새로운 사회’를 약속한다. 낡은 문제에 대한 해법은 늘어나지만, 정작 하나뿐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는 제각각이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수십 갈래인 양, 각 당의 후보들은 자신들이 신뢰하는 길을 자신 있게 제시한다. 그러나 정답이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스럽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양질의 일자리인 1차 시장(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공무원·전문직)과 열악한 2차 시장(중소기업 비정규직·일용직·플랫폼 노동) 사이의 임금·복지 격차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근원으로 지목된다. 특히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처우 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다.

◇ 역대 대선 후보들의 ‘이중구조 탈출구’ 공약 살펴보니

역대 대선에서 비정규직 해법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정규직 전환’이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을 통한 고용 안정성 강화가 처우 개선으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계약 만료로 쉽게 해고되지 않는 정도를 제외하면, 실질 임금 격차나 복지 혜택 차이는 거의 남아 있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차별금지특별법 제정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문화를 공약했으나,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전환에도 임금·근로조건 차등은 그대로였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정규직 고용비율 80% 확대와 비정규직 평등수당 도입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비정규직 사용 총량제를 내세웠지만, 현실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20대 대선에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는 별도의 노동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기업 성장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만 했을 뿐, 무엇이 좋은 일자리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답은 없었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도입했던 고용불안정수당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제안했다.

◇ 21대 대선 후보들의 해법은

21대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어떻게 풀겠다고 약속하는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기준지표를 마련하기 위한 임금분포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산업·업종·지역 단위의 단체교섭 활성화와 기업별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시행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기본 노동조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전체 정책 스펙트럼에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별도로 거론하지 않는다. 김 후보는 기업의 유연한 고용구조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복지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과거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추진했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은 이번 대선공약에서는 완전히 빠진 상황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 유사한 접근을 취한다. 그는 노조법 개정을 통해 비정규직도 산업·지역 단위의 단체교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성별임금공시제를 도입해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해소에도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개혁신당의 이준석 후보는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공장을 이전할 경우 외국인 노동자에 한해 최대 10년간 별도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해, 기업의 국내 유치 효과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적·지역별 차별적 접근이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운 해답이다.

◇ 한국판 ‘동등대우법’과 ‘바세나르 협약’을 기대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한꺼번에 해소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무엇을 먼저 손볼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필자는 첫째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꼽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복지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고용 안정성만 강화해 주어도 경제적 불평등 해소 효과는 미미하다. 둘째는 사회안전망 강화다. 실업·고용불안정 수당과 직업훈련 확대를 통해 노동자의 최소 생계선을 보장할 때 비로소 ‘위험 노동’이 줄어들고,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뒷받침된다. 마지막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되, 단순 전환에 그치지 않고 처우 개선을 동반해야 진정한 구조 개혁이 가능하다.

한국과 비슷한 임시직 비율을 보유한 네덜란드는 ‘일반적 평등대우법(AWGB·Algemene wet gelijke behandeling)’을 통해 고용 형태별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이 법은 고용관계에서 정규직·비정규직, 파트타임·풀타임을 불문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도록 강제하며, 감독 기관이 위반 시 실질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네덜란드 임시직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약 93% 수준에 이르며, 상여금·복리후생·사회보험 가입에서도 큰 격차가 없다.

반면 한국은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만 있을 뿐, 법적 강제력이 전무해 임금·복지·사회보험 가입률에서 정규직과 높은 격차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도 ‘한국판 동등대우법’ 제정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한국판 노사정 ‘바네사르 협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이 협약은 ‘임금 인상 억제’를 ‘일자리 재분배’로 전환해낸 합의였다. 노동계는 임금 인상 자제를 수용했고, 사용자 측은 고용 유지와 노동시간 단축(파트타임·시간제 확대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동의했다. 정부는 제도적 지원과 중재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네덜란드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간제 노동자 사회보험 확대 등이 법제화되었다. 네덜란드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한국보다 무려 500시간이나 낮아질 수 있는 비결이었을 것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제기 되고 있는 주 4.5일제가 형식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도, 일자리 나누기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묻는다. 경제·사회·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준비가 되었는가. 선거에서 치열히 경쟁한 뒤에는, 반드시 서로 만나 대화하고 타협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고, 합의 가능한 대안부터 현실화하자. 고용 영역에서라도 ‘한국판 동등대우법’ 제정과 ‘바세나르 협약’ 체결을 추진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신동욱 스페이스작당 상임이사

필자 소개

사회적경제, 입법정책, 청년정치 등 다양한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고 있다. 현재 청년과 시민이 사회문제를 논의하고 작당하는 프로그램 ‘청년들의 작당’을 기획, 참여하며 정치와 일상 사이의 틈을 좁히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법규부장으로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며, 사회문제를 제도와 공동체의 힘으로 풀어내기 위한 일에 헌신하고 있다. 이전에는 국회의원실 보좌관, (사)생활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서 입법 및 정책 개발에 참여했다. 진영에 상관없이 대화하고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치와 공동체의 경계를 허물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민주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