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매년 심화하는 기후위기, 국회서 잠자는 ‘기후법안’

21대 국회, 기후재난 법안 139건 발의
본회의 문턱 넘은 법안은 13건에 불과

해마다 이상기온 현상으로 재난이 발생하고 있지만 기후재난 대응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나은미래가 8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서 폭염, 폭우, 산불 등을 키워드로 기후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법안을 조사한 결과, 21대 국회에서만 총 139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은 13건으로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했다.

국회의사당 전경.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사당 전경. /대한민국 국회

매년 폭염, 폭우 등 재난이 발생하면 국회에 관련 법안이 앞다퉈 발의된다. 여름이면 폭염에 대응한 저소득층의 전기료 감면이나 야외 근로자의 작업 환경 개선에 관한 법률안이, 산불이 나면 산불 예방에 대한 법안이 우후죽순 발의되는 식이다. 피해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면 법안들은 다른 이슈에 밀려 국회에 계류되는 패턴이 매번 반복된다.

최근 3년간 매년 7·8월에만 폭염 대응 법안만 5~6개씩 발의됐다. 이 기간 발의된 16개 법안 중 단 한 건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강원도와 경북 울진에서 역대급 산불이 난 이후에도 총 21개 대응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가결된 건 소병훈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이 제안한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단 한 건이었다. 정부가 산불피해지에서 산불로 인한 2차 피해 등을 막기 위해 긴급히 산림사업을 해야 할 경우 산림소유가 동의 없이 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6건은 상임위원장이 내놓은 대안에 반영된 뒤 폐기됐고, 나머지 14건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계류 법안 중에는 중장기적인 재난 대응 방안을 담은 법안들도 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 등 12명은 폭염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상습폭염피해지역’으로 지정하고 농수산물 폭염피해를 예방, 경감할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연재해대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기후변화를 고려해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새롭게 탐색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도 발의됐다. 이만희 의원 등 11인은 지난 2월 기후변화에 따라 산불에 더 취약한 지역을 미리 파악하고 대응할 방안을 담은 ‘산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놨다. 지난해 12월 정희용 의원 등 14인은 산사태 예방, 주민 대피명령 제도, 기반시설 설치 등 기존 법에서 누락됐던 내용을 추가한 산림재난방지법안을 제안했다.

이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는 통과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국회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두 산불 관련 법안은 지난 2월 제403회 국회 제1차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나란히 상정됐다. 그러나 양곡관리법, 한우 가격 폭락 등에 관한 논의에 밀려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여당 간사는 이양수 의원, 야당 간사는 김승남 의원이었다. 지난 4월, 강원 강릉에서는 또 산불이 발생했고 피해 상황은 반복됐다.

기후 취약계층을 지정해 지원하자는 법안 발의도 올해 2·3월 쏟아졌다. 두 달 동안 총 4건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기후에 취약한 계층을 정의해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들에 대한 보호 대책을 추진, 예산까지 마련하도록 한다는 법안이다.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노동자나 고령층 등을 세심하게 고려해 ‘정의로운 전환’을 이룬다는 취지다. 4개 법안 모두 지난 4월 25일 열린 제405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뤄졌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국회 전체회의 안건은 여야 간사가 합의를 통해 정하는데, 당론에 따라 회의 안건의 우선순위를 매기다 보니 매년 일어나는 폭염, 수해 대책은 뒤로 밀린다”고 말했다. 이어 “주목받지 못하는 이슈를 통과시키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의원실에서도 재난 대책이 그 정도로 ‘미는’ 법안은 아니다 보니 후순위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정치권의 민감성이 떨어져 벌어지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시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 사이에선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 정치권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인데 기후변화 문제는 어차피 4년 안에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미스매치”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후가 핵심 아젠다가 되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마주하게 될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피해 규모도 커진다”며 “기후 법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한 뒷수습은 결국 국민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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