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6년간 받은 선물… 제 삶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6년이 만든 변화

지난 2008년 69조원이었던 복지 예산이 5년 만에 100조를 넘어섰다. 전체 정부 예산의 28.5%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가 미처 돌보지 못하는 곳은 여전히 존재한다. OECD 회원국 중에서 10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출산율 문제나, 연평균 200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청소년 자살 문제, 복지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희귀·난치성질환, 경증 치매 노인 분야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 12월 설립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18개 생명보험사가 사회공헌의 뜻을 한데 모은 만큼,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과 사회적 약자를 우선으로 지원해왔다. 지난 6년간 재단의 도움을 받아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업 사회공헌이 미치는 영향력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동두천시노인복지관에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최순덕 할머니.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동두천시노인복지관에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최순덕 할머니.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미상_그래픽_사회공헌_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생애주기별지원활동_2014

01. 학습용 보조기기로 근이양증 딛고 건국대 합격한 조연우 군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은 후 다시는 일어날 수 없었어요.”

조연우 군
조연우 군

조연우(23·건국대 정치외교학과)씨가 ‘근이양증’ 진단을 받은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근이양증은 몸의 근육이 점점 없어지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조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혔다.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는 팔로 온종일 컴퓨터 게임을 했다. 이후 7년 동안 근육은 더 굳고, 호흡은 힘들어졌다. 척추도 휘었다. 허송세월의 마침표를 찍은 건 지난 2008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기면서부터다. “재활 치료 중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공부하는 걸 봤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 누워서 책을 봤고, 늘 누군가가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힘든 상황이 이어질 무렵 ‘한벗재단’을 만났다. 한벗재단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하 생보재단)의 지원을 받아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에게 학습용 보조기기를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곳이다. 조씨는 이곳에서 ‘안구마우스'(눈동자에 따라 마우스를 움직이는 기구)를 받아 컴퓨터를 사용하고, ‘아이패드’로 독서를 대신했다. 조씨는 “마음만으론 힘들었는데, 보조기구들의 도움으로 꿈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초·중·고 과정의 검정고시를 마친 후, 하루 10시간씩 수능 준비에 매달린 결과 조씨는 올해 드디어 대학생이 됐다. 한 달간의 대학 생활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조씨. 그의 꿈은 명확하다. 조씨는 “내 경험을 살려, 장애인 복지 체계를 다지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02. 5번 유산 끝에 의료비 지원받고 낳은 딸, 이제 유치원생

“계절 바뀌는 게 순리인데, 제겐 계속 겨울인 것 같았어요.”

김진희(37·경기도 안산)씨는 2006년부터 매년 임신을 하고, 매년 유산을 했다. “원인조차 몰랐다”고 한다. 2010년 5번째 임신을 했을 땐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출산에 집중했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출산까지 못 갈 가능성도 크고, 출산을 해도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뱃속의 아이는 장기가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선천성 제대탈장’ 상태였다. 김씨는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만 펑펑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김진희씨와 딸 유경이(왼쪽)
김진희씨와 딸 유경이(왼쪽)

“아이를 믿었어요. 탄생이 곧 죽음이 되더라도, 아이가 버텨주길 바랐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병원비는 이중고였다.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서 받은 각종 검사는 고스란히 부담이 됐다.

김씨는 “출산 의료비 부담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며 “어떤 임산부들에게는 의료비 지원 여부가 출산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김씨는 생보재단의 ‘고위험군 임산부 지원사업’을 통해 불임검사비와 안전분만비(총 80만원)를 지원받았다. 김씨는 “당장 너무 필요한 것들이다 보니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씨를 애태우던 딸 유경이는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갔다. 씩씩하고 성격도 좋단다. 김씨는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고 했다.

03. 반항아가 자원봉사하고 맞벌이 세 자녀 엄마는 맘 놓고 출근해

‘파주생명꿈나무돌봄센터’ 라복심 센터장이 기억하는 민수(가명·10)군은 거친 아이였다.”처음 보자마자 ‘XX!’이라고 욕부터 했어요. 아빠의 폭력으로 엄마가 도망갔는데, 그걸 지켜보며 욕을 배운 거죠.”센터에서는 잦은 칭찬으로 민수군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라 센터장은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자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4학년이 되어 센터를 나가게 된 민수는 지금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스스로를 ‘자원봉사자’로 칭하며 선생님을 거들고, 동생들을 돕기도 한다. 라 센터장은 “위기 가정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무료 보육 시설은 없었다”며 “생보재단으로부터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받는 우리 센터가 생기면서 보육 사각지대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생명꿈나무돌봄센터
파주생명꿈나무돌봄센터

경기도 오산 세교지구에 사는 공효정(32)씨는 세 자녀의 엄마다. 맞벌이까지 하지만 보육 걱정은 크지 않다. 첫째와 둘째가 ‘오산생명숲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이다. “둘 다 사설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걱정이 많았죠. 월 40만원이나 드는데 음식도 교육도 맘에 들지 않았거든요. 이곳으로 옮기고 나선 그런 걱정 안 해요. 원내 모든 시설이 항상 오픈돼 있고, 프로그램도 좋거든요. 무료라 경제적 부담도 없고요.” 현재 공씨는 막내까지 대기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공씨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 많아져야 출산도 늘고, (부모가)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3년 문을 연 오산생명숲어린이집은 생보재단이 31억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김영숙(오른쪽)씨와 어머니 박영희씨
김영숙(오른쪽)씨와 어머니 박영희씨

04. 치매 어머니 돌보느라 ‘죽겠다’던 김씨… 이젠 삶의 질 회복해

“어느 날부터 물건을 서랍에 숨겨뒀어요. 사과 같은 게 서랍 속에서 썩었어요. 방금 말한 것도 잊고, 밤엔 이유 없이 보따리를 싸기도 했어요.” 김영숙(68·경기 의정부)씨의 어머니 박영희(88)씨는 ‘등급 외 치매’였다. 경증이었기 때문에 치매 등급 판정을 받지는 못했다. 어머니를 돌보는 건 오롯이 김씨의 몫이었다. 등급(1~3) 치매 환자와는 달리, 별다른 (정부)지원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 가족은 두 모녀가 전부여서, 김씨 혼자 남편과 보호자 몫까지 했다. 김씨는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갈등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방금 한 말이 되풀이될 때마다 짜증도 되풀이됐다. “어머니 앞에서 죽겠다며 울기도 했다”고 한다.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할 무렵 신곡노인종합복지관을 알게 됐다. 생보재단의 지원으로 ‘등급 외 노인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곳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머니를 보살펴주는 곳이 생기자 김씨의 근심은 옅어졌다. 어머니도 바뀌었다. 김씨는 “복지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머니가 무척 밝아지고, 잠도 곤히 주무신다”고 했다. 배승룡 신곡실버문화센터 관장은 “경증 치매 환자 때문에 가족이 붕괴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며 “생보재단의 지원은 어르신과 부양가족 모두에게 삶의 질을 회복시켜 준다”고 했다. 배 관장은 이어 “건강보험공단에서 올해 7월부터 치매 특별등급을 신설하는 등 치매에 대한 지원을 늘릴 계획인데, 이는 민간에서 먼저 관심을 가지고 필요성을 주장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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