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기업가형 재단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발렌베리그룹은 2019년 기준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스웨덴 대표 기업집단이다. 발렌베리의 모태는 1856년 해군 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설립한 스톡홀름 엔스킬다은행(SEB)이다. 1911년 스웨덴 정부는 은행의 산업자본 진출을 허용하는 은행법을 제정하였고,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ABB(발전설비, 엔지니어링), 에릭슨(통신장비), 스카니아(상용차) 등 스웨덴 대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기업집단으로 성장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일렉트로룩스 또한 발렌베리그룹의 계열사다. 이후 1930년대 은행의 산업자본 소유가 금지되자, 발렌베리재단을 중심으로 하는 재단 중심의 지배구조가 구축되었다.

발렌베리재단은 발렌베리 그룹 산하 계열사에서 나오는 주식 배당금의 80% 정도를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지원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재단에서 스웨덴 과학연구와 교육에 지원하는 금액은 연간 3000억원이 넘는다. 10년 누적 규모로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스웨덴 국적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은 이들은 거의 다 발렌베리재단의 후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렌베리그룹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그룹이 재단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스웨덴의 기초과학(의학・생명과학 중심) 분야를 발전시키고 중장기 산업기술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슈미트가족재단(Schmidt Family Foundation)은 구글 전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와 아내 웬디 슈미트의 출연금 약 2조원으로 2006년 설립됐다. 슈미트재단은 환경과 사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관련 단체를 지원하고, 스타트업에 임팩트투자를 한다. 슈미트재단의 특징은 직원이 모두 사회문제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팀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내에 에너지 정책 및 기술, 국제법, 광업, 인권, 식품, 재생 농업, 해양 기술, 임팩트 투자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여 혁신적인 사회문제 해결 방법을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개발하고 있다. 또한, 에릭 슈미트는 2022년 2월에 인공지능(AI)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이니셔티브(AI2050)에 1500억원을 투자하였다. 이 돈은 슈미트 퓨처스 재단을 통해 AI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학문적 연구를 지원하는데 쓰이며 향후 5년간 개별 연구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엑스프라이즈(X-Prize) 재단은 1995년 NASA가 후원하는 실리콘밸리 소재 창업교육기관인 싱귤래리티대학교의 피터 디아만디스 학장과 구글 AI책임자 레이먼즈 커즈와일이 설립하였다. 엑스프라이즈는 대규모 공모 대회 개최를 통해 사회혁신가, 해당 분야 연구자, 엔지니어 등이 우주탐사, 환경, 인간 평등과 관련된 세계 최대 난제 해결을 위한 자금을 지원한다. 2022년 기준 누적 상금은 3000억원 규모다. 현재까지 25개의 공모 대회를 런칭했고, 전세계에 100만명 이상의 글로벌 협력 인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엑스프라이즈 탄소 제거(X-Prize Carbon Removal)’ 프로젝트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모 대회로 머스크재단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탄소 제거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학계, 스타트업 및 혁신가, 벤처 등 전 세계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개인 혹은 팀이 참가할 수 있으며 총 상금 규모는 1000억원이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4년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본인들이 제시한 탄소 제거 솔루션의 실효성을 검증해야 한다. 또한, X-Prize가 개최한 최초의 글로벌 대회인 ‘글로벌 러닝(Global Learning)’은 저개발국가 아동의 학습증진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공모사업이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총 상금 1500만 달러를 두고 40개국 198개팀이 경쟁했는데, 대회 역사상 최초로 한국팀인 ‘에누마’가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테마섹재단은 동남아 지역이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해 실행가능하고 획기적인 솔루션 발굴 및 지원하는 ‘The Liveability Challenge’를 개최하고 있으며, AVPN(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 네트워크)은 구글닷오알지와 ADB(Asian Development Bank)의 지원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한 혁신적인 기술 중심 솔루션의 발굴, 지원하는 ‘APAC Sustainability Seed Fund’를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의 빈퓨처재단은 2020년 베트남의 1등 기업인 빈그룹 창립자가 설립하여 사람들의 삶에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이 높은 획기적인 과학연구 및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개인 및 기관에 대해 연간 300만 달러 규모의 빈퓨처상을 수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재단들은 사회문제를 도전적, 창의적, 혁신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가형 재단이다. 즉, 기업가형 재단은 자원 배분, 사회 복지 성격의 공익재단에 머물지 않고, 공익재단 자체가 스타트업과 같이 사회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기업가형 재단의 장기적인 사회문제 해결 전략과 자원 동원 및 스케일업 역량이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며, 기존의 대기업 재단과 신규로 IT/게임 업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공익재단에도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업가형 재단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공익재단의 설립 및 운영, 사회적 투자 활성화를 위한 관련 규제 개혁과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공익재단을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공익재단은 기업이나 정부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가정신으로 사회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즉, 정부는 기업가형 공익재단의 성장을 지원하고, 기업과 기업인은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기업가 정신을 갖춘 공익 재단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미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선순환적 사회 시스템의 정착이 필요하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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