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사회혁신발언대] 난민법 제정 10주년, 투명한 난민심사제도 마련해야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오늘(20일)은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뒤 10번째 맞는 ‘세계 난민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이는 난민이라는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 30년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존재이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작년 말 난민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에게 취업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들에게 취업활동을 허가만 하였을 뿐,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난민법은 난민에게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난민에 준하는 처우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과 실무의 괴리와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인 개별 법령으로 인해 이들이 마주하는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난민도 공공주택에 입주할 자격이 있다고 판시한 법원의 판결에도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실질적으로 단순노무직에 한정되어 있다. 귀화도 불가능하다. 소득·재산과 무관하게 매달 부과되는 높은 건강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취업지원 외에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에 개선할 부분이 산적해 있음에도 정부의 난민법 개정안의 초점은 난민인정 재신청자에 대한 적격심사 제도 도입에 있다.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은 사람 등이 다시 난민인정 신청을 하고자 하면 적격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중대한 사정 변경을 입증하지 못하면 난민인정 심사를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속하는 평균 1%라는 한국의 난민인정률에 적격심사라는 장벽을 하나 더 얹은 꼴이 된다.

적격심사 도입의 정당성은 법무부의 난민불인정결정이 타당하다는 전제하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난민인정제도가 전반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심각하게 낮은 난민인정률과 난민심사 과정에서 절차적 권리가 미흡한 점, 이로 인해 법률조력을 받지 못한 난민신청자의 경우 난민인정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 등은 불인정결정을 받았음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난민인정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법무부는 2015년부터 아랍어권 국가 출신 난민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신속심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이는 수많은 신청자의 진술과 다른 허위의 내용이 면접조서에 기재되고 구체적인 심사 없이 불인정결정을 받은 소위 ‘허위난민면접 조작사건’으로 이어졌다. 난민이 난민인정 재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법무부의 실패한 난민심사제도가 가져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수긍할만한 난민심사결과를 보장하지 않은 채 재신청만 제한하는 방안은 적체된 난민심사 대기자 수를 줄이기 위한 눈가림식 대안일 뿐이다. 오히려 제도의 실패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정부가 남용적 난민신청자로 낙인찍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9일에는 난민법의 개선방향과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난민이 처한 현실과 의미를 되짚어 보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난민법을 둘러싼 현안 중 난민재신청 제한정책 외에도 난민인정자에 대한 강제퇴거, 인도적 체류자격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난민의 시민사회 참여 및 지역사회 정착에 대한 해외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사회의 과제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국제정세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평화롭던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 국경을 넘어 세계 각지로 피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은 지난달 기준으로 1억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따라 당연히 한국으로 발길을 향한 난민들의 수도 늘고 있다.

난민법 제정 이후 10번째 맞이하는 세계 난민의 날, 한국 사회에서 난민이 배타적인 테두리 밖에 더 이상 서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신속성보다 투명성이 담보된 난민심사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이웃이 된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앞으로의 삶을 평화롭게 그려 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리보장과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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