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이맘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소식이 있다. 바로 기업과 기관들이 매년 내놓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다. 일부에서는 CSR 보고서 또는 기업시민보고서라는 이름으로도 발간하며, 올해는 ESG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공시한 기업도 적지 않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각 기업이 지난 1년간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했고, 그로 인한 성과와 미흡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비즈니스를 할 계획인지를 담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의 재무적인 정보는 재무제표로 확인하고 비재무 정보는 지속가능보고서로 확인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재무·비재무 정보를 통합한 보고서를 만드는 기업도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지속가능보고서는 2001년 2개를 시작으로 작년 기준 135개로 늘었다. 최근 10년간 보고서 발간율을 따지면 약 64% 증가했다.
기업은 언제부터, 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만들게 되었을까? 1989년 3월 미국에 본사를 둔 정유회사 엑슨(Exxon)의 유조선인 엑슨 발데즈호가 미국 알래스카 해안에서 암초와 부딪혀 좌초하면서 24만 배럴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사고가 있었다. 이로 인해 근처 바다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고 수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알래스카 원주민의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 환경계획(UNEP)의 지원을 받아 환경단체인 세레스와 텔루스 연구소는 1997년 GRI라는 조직을 설립하고 기업의 경제, 사회, 환경과 관련된 공시기준 초안을 만들었다. 이후 지속가능성 보고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GRI가 만든 가이드라인은 회사 및 공급망의 활동으로 인한 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와 관련된 비용과 이익을 표준화하고 정량화해 제3자가 객관적으로 기업을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GRI가 만들어진 후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 현황을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에 맞춰 공시하기 시작했다. 지난 11~13일 영국에서 진행된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은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의 공시 의무화에 합의했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도 기업들에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 위원회)와 TCFD 기준에 따라 공시할 것을 권고했다. 기업들은 현재 GRI 가이드라인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가능경영 현황을 공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기업의 홍보용 책자가 됐다거나 좋은 면만 부각하려는 워싱의 목적이 크다는 비판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던 덴마크 대학교의 클라리사 루에그(Klarissa Lueg) 교수와 라이너 루에그(Rainer Lueg) 교수는 블룸버그 ESG 평가를 기준으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와 기업의 실제 위험 및 성과 간의 인과관계를 조사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워싱의 목적인지,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 목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구자들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가 기업이 가진 위험을 줄이거나 성과를 높이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지속가능경영 보고가 그린워싱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고, 보고의 내용보다 높은 위험 및 나쁜 성과가 숨겨져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조직의 최고경영자는 비재무적 정보를 담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기업이 가진 환경, 사회, 거버넌스 영역의 위험에 대한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이해관계자의 불신에 대응해 결국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성과를 높인다는 주장도 소개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로 기업의 스캔들 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새로운 기술 이슈 등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기업은 그린워싱이나 윈도우 드레싱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합법화하려는 경향도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통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것은 유행을 따르기도 하고, 최고경영진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선행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최근 각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ESG 보고서 발간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보고서 발간 자체가 의미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투자자 중심으로 비재무 정보의 공시기준과 활용목적이 강조되면서 공시내용의 관련성, 구체성, 균형성, 일관성, 비교가능성, 검증가능성 그리고 시의성 또한 강조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기업입장에서는 비재무 정보공시 보고서를 과거의 홍보책자처럼 만들거나 유리한 정보만 담는 관행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5년부터 일부 대기업의 경우 ESG 정보공개가 의무화되어 더는 비재무정보 공개를 미루기도 어렵게 됐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남들이 만드니까 우리도 만드는 일로 여겨선 안 된다.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와 관련된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보고서가 돼야 한다. 사회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공시내용에 대해 감시뿐만 아니라 격려와 응원도 함께 보내야 한다. 비교와 감시기능만 있을 경우, 기업은 부정적인 것을 더 감추려 할 테고 우리가 기대하는 기업과 사회·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보고서로 확인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길 것이다. 올여름, 평소에 관심 갖던 기업과 기관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읽으며 워싱의 목적인지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인지 살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어떻게 도전하고 응원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Klarissa Lueg, Rainer Lueg (2020), “Detecting Green-Washing or Substantial Organizational Communication: A Model for Testing Two-Way Interaction Between Risk and Sustainability Reporting”, Sustainability 2020, 12(6), 2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