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비영리 생활
무직 청년들을 모아 ‘회사 놀이’를 하는 사람들, 여성 인권 NGO를 운영하는 뷰티 유튜버, 꽃을 가꾸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수상한 정원사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상한 비영리’가 나타났다. 전통적인 비영리단체들을 떠올려보면 금세 비교가 된다. 숭고한 정신, 대단한 사명감. 그런 게 뭔지 이들은 잘 모른다. “좋은 일 합시다” 하고 호소하거나 선동하는 법도 없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 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풀어내는 방식부터 기존 비영리단체들과는 딴판이다. 인권, 환경, 여성, 아동,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만 거대담론은 잘 다루지 않는다. 제도나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주변과 이웃의 일상을 소소하게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다. 일종의 ‘생활밀착형 비영리단체’라 할 수 있다.
이런 단체들을 공식적으로 ‘비영리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공익활동을 하는 신생 비영리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청년 무직자들에게 소속감을 채워주고자 ‘니트생활자’라는 단체를 만든 박은미·전성신 대표. 구독자 70만명을 가진 유튜버로서 다양한 여성 인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WNC’의 김혜원 대표. 식물을 키우고 밭을 가는 경험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꾀하는 ‘마인드풀가드너스’의 김민주·김현아 대표. 지난 23~24일 비영리스타트업 3팀 대표들을 각각 인터뷰했다.
백수가 어때서
“여섯 번째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각했어요. 다시는 조직 생활을 안 하고 싶다고요. 이유 없는 퇴사는 없잖아요. 회사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불공정 계약으로 쫓겨나듯 나오기도 하죠.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저 취업할 의욕마저 사라진 부정적 존재로 여깁니다. 과정보다는 ‘백수’ 상태라는 결과만 보고요.”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는 청년 백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비영리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공동대표인 전성신씨와 함께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NEET)’족을 모아 명함을 준다. 사명(社名)은 ‘니트컴퍼니’. 이른바 가짜 회사다. 입사 자격은 ‘무업(無業) 상태의 만 39세 이하 청년’이다. 사원들은 입사 이후 부서와 업무를 스스로 정한다. 매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업무 일지도 써야 한다. 단 월급은 없다.
지난 24일 바보의나눔 지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활동가들의 공간 ‘동락가’에서 두 대표를 만났다. 그들은 “월급 대신 동료를 만들어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단체를 소개했다. 자칫 고립되기 쉬운 백수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집 밖으로 끌어낸다. 전성신 대표는 “학교나 직장에서 나오는 순간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떤 업무를 할 건지는 사원들이 알아서 정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해내면서 생활 루틴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원들은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팔굽혀펴기 30번씩 3세트 하기, 핫플레이스 다녀오기, 만보 걷기, 시(詩) 필사하기, 강아지 관찰하기 같은 업무를 매일 인증한다. 자격증 시험 공부를 업무로 지정한 사원도 많다. 사 측은 각양각색의 업무 일지를 모니터링하고, 오후 6시가 지나도 퇴근 안 하는 직원들에게 “얼른 퇴근하라”고 지시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박은미 대표는 10년 넘게 비영리단체, 공공기관, 기업 출연 재단 등에서 일했다. 20대 때는 더 조건이 나은 회사로 옮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세 번째 직장으로 옮길 때만 해도 이직이 잘됐어요. 공백 없이 경력을 쌓아나갔죠. 그러다 30대 넘어서니까 안 풀리기 시작했어요. 어느 면접장에서 ‘출산 계획이 있느냐’고 대놓고 묻는 말까지 들었죠. 2018년 12월 마지막 회사를 나오면서 ‘이력서 그만 쓰고 딱 1년간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다짐했어요.”
처음에는 막막했다. 같은 처지인 백수 친구들과 만나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박은미 대표는 그 점에 착안해 ‘니트생활자’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모였다. 오프라인 모임도 기획했다. 첫 모임 주제는 ‘백수들의 한양 도성 걷기’였다. 이를 시작으로 미술관 관람, 북한산 등반 등을 진행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시NPO지원센터 지원으로 12명의 사원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개인 업무 결과로 기획 전시도 마련했다. 지난 6월에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아 사무 공간을 마련해 4개월간 서울역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카카오임팩트와 협업해 니트컴퍼니 온라인점을 열고 있다. 출퇴근 여부는 채팅방으로 알리고, 100일간 매일 업무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올 상반기 진행된 시즌1에는 86명이 과정을 마쳤고, 지난 9월부터 진행한 시즌2에는 91명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사원들의 업무 인증률은 98%에 달한다. 전성신 대표는 “아무리 사소한 업무라도 매일 스스로 정한 업무를 해냈을 때의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라며 “우울한 상태로 지냈는데 자신감을 찾았다며 농담처럼 ‘간증’하겠다는 사원도 있고, 기획 전시에 참여한 한 사원은 관련 분야에서 새 직장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니트컴퍼니를 거쳐 간 사람은 200명이 넘는다. 대부분 만족하는 분위기지만, 무단 결근하는 일부 사원도 있다. 박은미 대표는 “업무 내용과 무관한 방바닥을 찍어 올리거나 같은 사진으로 반복해서 인증하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판단해 따로 연락한다”면서 “전문가만큼의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친구나 동료처럼 최소한의 사회적인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사람이 니트컴퍼니의 목표가 청년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거냐고 묻는데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기업이나 특정 조직에 소속돼야만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깨는 것에 가까워요. 무업 상태가 비록 익숙하지 않은 삶이지만 모든 사람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박은미 대표는 더 많은 백수가 참여할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온라인점의 경우 100일짜리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중간에 참여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상시 채용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박은미·전성신 대표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다양해지는 피드백을 참고해 니트컴퍼니의 미래 전략을 수립 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는 니트컴퍼니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회사 그만두게 되면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죠. 누구나 백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많은 비영리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게 목표라지만 니트컴퍼니는 계속 존재하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직업이 두 개에, 이름도 두 개다. 7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뷰티 유튜버 ‘에바(EVA)’. 그리고 여성 인권 이슈를 다루는 비영리 단체 WNC 대표 ‘김혜원’.
대학 신입생이던 2015년 유튜브를 시작한 그는 화장품 리뷰 영상과 브이로그(일상을 담은 영상 콘텐츠)로 인기를 얻었다. 구독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18년, 느닷없이 비영리 단체 WNC를 설립했다. WNC는 ‘Why Not, Why Can’t?(왜 안 돼? 왜 못 해?)의 줄인말이다. 가로막힌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회를 열고, 데이트 폭력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비혼 여성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유튜버 에바로도 여전히 활약 중이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에바가 아닌 김혜원을 인터뷰했다. 그는 “대단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으로 비영리 단체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양수업으로 ‘여성학’ 강의를 들었던 게 계기가 됐어요. 제 채널 구독자 대부분이 10대~20대 여성이거든요. 여성과 관련해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있고 갈등이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한 수업이었어요.”
강의 듣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성차별과 고정관념들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존의 여성 인권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좀 어려웠어요.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대학생’이 낄 자리는 아니라는 느낌이었죠. 기껏해야 기부하는 정도? 내가 어떤 단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서 내가 뭘 얻느냐도 중요하잖아요. 기존 단체들의 활동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요.”
추석 연휴를 앞둔 어느날,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씻고 화장하고 머리 손질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영상 콘텐츠였다. 자연스럽게 명절 이야기가 나왔다.
“명절 때마다 제가 보고 겪었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관습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예전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여성학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죠. 그냥 친구한테 이야기하듯이 제 경험과 생각을 편안하게 말했을 뿐인데 그 영상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500개 넘게 달렸어요.”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상 콘텐츠’에 여성 인권 이슈들을 녹이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유튜브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밀레니얼과 Z세대는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콘텐츠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제 채널의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시시콜콜한 대학 생활을 친근하게 보여주는 ‘대학생의 하루’라는 콘텐츠 때문이었거든요.”
그는 여성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일상 콘텐츠에 조금씩 담아내기 시작했다. 구독자들이 질문했다. ‘언니는 페미니스트인가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정하고 4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성평등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이게 엄청 이슈가 됐어요. 두세달 만에 조회 수가 100만을 넘겼어요. 그리고 다짜고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죠. 원래 악플에 민감한 편이 아닌데, 그때는 좀 심각했어요.”
WNC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게 된 것도 그 영상 때문이었다. 그는 “개인의 자격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유튜버가 본격적으로 비영리단체를 설립한 건 아마도 제가 처음일 거예요. 최초 타이틀을 달고 싶어서도, 한국 사회를 바꾸고 싶어서도 아니었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목소리를 내보자는 마음이었죠.”
WNC는 지난해 다음세대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진행하는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발됐다. 사업비 지원도 받고 공유 오피스도 생겼다. “WNC 구성원이 총 4명인데,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눈앞의 것들을 쳐내느라 팀원 간 비전 공유가 잘 안 됐거든요. 멘토링과 교육을 받으면서 방향성이 훨씬 뚜렷해졌어요.”
‘여성들의 일상을 편하고 즐겁게!’ WNC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여성 인권이라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를 일상으로 가져오자는 것, 친구들과 밥 먹다가도 대화 주제로 꺼내 이야기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로 만들자는 것이다. 김혜원 대표는 “제도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일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WNC는 전시 티켓이나 굿즈 판매를 통한 수익을 다음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식으로 단체를 운영 중이다. 온라인에서는 ‘주거’와 ‘비혼’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늘어나는 여성 1인 가구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정책을 살펴보는 콘텐츠를 만들고, 비혼 여성을 섭외해 평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고민들을 하는지 인터뷰로 풀어내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내년 1월에는 경복궁역 근처에서 ‘검열’이라는 주제로 오프라인 전시회를 연다. 여성에게 씌워진 고정관념들을 검열이라는 주제로 풀어내는 전시다.
“올초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성적 대상화’를 키워드로 서울스토어와 함께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했어요. ‘I’m not to be desired but to desire’(나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하는 주체다)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였어요. WNC의 수익금은 전액 한국여성의전화에 기부했고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티셔츠 산다고 세상이 변하니?’ 맞는 말일 수도 있죠. 그런데 어느 날 티셔츠 구매한 분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어요. 그 옷 입고 카페에 갔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인증샷’을 찍었다고요. 느슨한 연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호미를 쥐어보면
정원을 가꾸는 ‘가드닝(gardening)’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비영리스타트업 마인드풀가드너스의 김민주·김현아 대표는 원예 활동으로 공동체 가치의 회복을 꿈꾼다. 이들이 내세우는 핵심 키워드는 ‘오가닉 가드닝’이다.
“가드닝이라고 하면 정원 혹은 텃밭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협소한 의미로는 화분에 반려식물을 키우는 일도 포함돼요. 식물을 키우려면 관련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고, 작황이 좋으면 열매나 작물, 씨앗 같은 걸 이웃과 나누게 되거든요. 자연스럽게 공동체 문화가 회복될 수 있죠. 이러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가드닝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김민주)
김민주·김현아 대표는 비영리 활동가 출신이다. 김민주 대표는 희망제작소를 시작으로 비영리 분야에서 발을 넓혔고, 김현아 대표는 아름다운재단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비영리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왔지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다. 김민주 대표가 일본의 가드닝 콘텐츠를 담은 일본어 수업을 열었는데, 마침 김현아 대표가 그 수업을 찾아오면서 인연이 닿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실험에 매진했고, 올해 비영리스타트업을 만들어 의기투합했다. 김현아 대표는 “정원 관련 일들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걸 비영리 방식으로 풀어낼 순 없을까라는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면서 “직접 소모임을 만들어 커뮤니티 가드닝을 꾸려가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그 가능성을 찾았다”고 했다.
우선 수요조사가 필요했다. 국내에서도 가드닝에 대한 수요는 있다지만, 풍문에 의지해 사업을 벌일 수는 없었다. 김현아 대표는 2018년 경기 김포의 주말농장에 조그만 땅을 빌려 꽃을 키우는 ‘블루밍달리아 프로젝트’를 벌였다. 기간은 1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처음에는 몇 명이나 모일까 걱정했는데 페이스북에 공지를 올리자마자 회원 10명이 금세 모였어요. 모두 도시 생활에 지친 분들이었고, 주택에 거주하면서도 정원을 제대로 꾸미지 못했다는 분도 있었어요.”
회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작업하는 날은 일 년에 세 번이다. 밭을 갈아 퇴비를 넣는 날, 모종을 심는 날, 구근을 수확하는 날이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이 세 작업을 ‘공동체 작업일’로 정하고, 나머지 날에는 개인 일정에 따라 텃밭에 나와 일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작업 내용은 회원끼리 공유했다. “일정이 맞아떨어지면 회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게 되더라고요. 서로 사는 이야기도 하고요. 그런데 자율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주 관리자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텃밭지기를 자청하고 작업 내용을 공유하고 ‘공동체 작업일’을 조율하는 일을 맡았죠. 또 회원들이 수확하고 남은 꽃들을 도시농부시장에 내놔봤거든요. 이게 다 팔리겠어 했는데, 완판됐어요. 수익금으로 활동비를 보충할 수도 있었어요.”
김민주 대표는 연고도 없는 충남 홍성으로 내려가 또 다른 실험을 했다. 홍성은 전국 첫 ‘유기 농업 특구’에 지정된 친환경 농업 선도 지역이다. 그는 홍성에 있는 선배 농부들에게 유기 농업의 철학과 가치를 배우며 직접 농장을 운영했다. “소비자들은 유기 농업을 생산물에 집중해서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키운 안전한 먹거리로만 인식하는데, 유기농업의 ‘유기’는 사람과 자연이 생태적인 방식으로 함께 순환한다는 걸 뜻해요. 그 과정에서 정서적 치유 효과도 큰데 일반 시민이 경험할 기회는 거의 없죠. 운영하던 농장 일은 마감하고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의 ‘생명의 정원’이라는 책을 공동 번역하면서 생태적인 방식의 가드닝 활동에 확신을 가졌죠.”
두 사람이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삼은 건 개인적인 경험에서다. 김민주 대표는 “일로서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인 허기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친구와 마음껏 수다를 떨어도 채워지지 않았다”면서 “유기 농업으로 식물을 키우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정서적으로 조금씩 안정되는 경험을 했고, 이걸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현아 대표의 경우 10년 넘게 모금 업무를 전담하면서 수많은 기부자를 만나고 지원 사업을 해왔다. 그러다 비영리 활동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직접적인 활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안식년 기간에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됐는데, 마침 영국 런던의 도시재생 성공 사례인 킹스크로스를 찾았을 때 도시 전체를 가드닝하는 모습을 보고 취미로만 여기던 가드닝에서 비영리적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인드풀가드너스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본격적인 사업 시작은 6개월 뒤로 잡았다. “농산물을 생산할 때 대량생산을 위해 화학비료를 씁니다. 효율성도 좋지만 많은 사람이 화학비료를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는 건, 인간이 농산물을 대하는 모습과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많은 사람이 가드닝이라는 주제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 정원이 없어도 됩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은 이미 마련돼 있으니까요. 누구나 정원사가 될 수 있다는 목표로 전국에 커뮤니티 가드닝을 점조직처럼 형성할 수 있게 지원할 생각입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