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2012년 대선 당시 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공약이 사회적으로 큰 공감대를 얻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그리 어렵지 않다. 퇴근 후 가족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고, 부부가 손잡고 가까운 천변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며, 가끔 친구나 이웃과 맥주 한잔 가볍게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며, 아이가 잠들기 전 책 한권 읽어주는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리 어렵지 않은 그 일들이 더욱 어려워져만 간다. 작년 10월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국민들은 ‘주말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국가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스스로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국가는 세월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조류독감(AI)파동 등 거듭되는 참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서민경제를 지키지 못했고, 특정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이 맡겨놓은 자산마저도 훼손하였다.
국민들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며 어느 때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통해 약 5천명의 촛불시민들이 적은 새해 소원에는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아이와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함께 사는 좋은 나라 대한민국’ 등이 선정되었다. 촛불민심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국민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후보들도 한결같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 200만부가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주의적 공공철학을 기반으로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체 사회라고 주장한다. 정의란 올바른 분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덕을 키우고 공동성을 고찰해야 하며, 좋은 삶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이 언급한 ‘좋은 삶’은 다시 논쟁이 되었고 작년에 신간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에서 자유주의 한계를 넘어선 공동체와 좋은 삶에 대해 다시 언급하였다. 정치는 좋은 삶과 도덕에 관한 시끌벅적한 논쟁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개인, 정치인, 정부가 모여 이러한 논쟁을 통해 공공생활에서 발생하는 삶의 딜레마들을 현명하게 풀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해법이 아니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담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의 제안이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번만큼은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담론장으로 가져와 ‘정의로운 사회’, ‘공동체적 가치’, ‘좋은 삶’이 무엇인지 다 함께 고민하고 논쟁하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그 담론에는 분명 상실된 ‘인간적인 삶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OECD가 발표한 ’2016 더 나은 삶 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38개국 중 28위로 여전히 하위권이다. 지나친 경쟁, 불공정과 불평등, 부패로 인한 폐해로 지치는 것도 지친 국민들의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덴마크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 상위권에 속해 많은 사람들이 꼭 한번 살고 싶은 페이브랜드(Faveland: Favoriate Land의 줄임말)이다. 덴마크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유는 안정적인 사회복지 모델로 국민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를 향한 신뢰도가 높은 사회이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며, 청렴한 정치가 이뤄지는 부유한 나라이고, 또한 시민사회가 제 기능을 하는 사회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
전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 2위,
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나라 1위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1위
19세기 후반 덴마크는 영토의 1/3과 인구의 2/5를 독일에 빼앗기고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내어 준 상황이었다. 유럽의 가장 작은 나라로 전락하며 존폐 위기에 놓인 덴마크의 정치인과 시민들은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당시 유럽에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신봉하며 사회 내 생존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으나, 덴마크는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존을 추구하는 사회체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복지 시스템을 갖춘 나라 덴마크의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금 부담률(48%)을 감수한다. 소득의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면서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자신이 낸 세금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정치인들이 먼저 특혜와 특권을 포기하고, 사회전반의 투명성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덴마크 국민들은 “나는 운 좋게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존이 아니라 공존’체제로 가겠다는 우리 모두의 결단이 필요하다. 공존체제로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필수다. 불안정적하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신뢰와 협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의자놀이’만 반복될 뿐이다. 손뼉을 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려야 하는 미친 놀이. 그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난 몇 달 대한민국은 분노하고 저항했다.
2016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된 주인공 다니엘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는 내용을 담은 영국 영화다. 어려움에 처한 시민을 국가는 온갖 절차를 동원해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메어지는 이유는 인간은 없고 제도만 존재하는 영화 속 영국의 현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니엘은 정부를 향해 외친다.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 켄 로치 감독, <나, 다니엘 블레이크> 대사 중에서
정의로운 사회는 개인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이루어지는 사회, 그래서 1%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언젠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더 이상 ‘헬조선’이 아니라 “나는 운 좋게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날을 꿈꿔본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다. CSR, 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