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 행복한 활동가가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①

“세계를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
– 소크라테스(Socrates)

NGO/NPO에서 일하는 활동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고 정경들과 몸싸움을 하는 과격한 투사(?),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바로잡는 정의의 사도(?), 소외된 이웃들을 따뜻한 관심과 정성으로 돌보는 천사(?). 최근에는 깔끔한 오피스룩을 한 비즈니스맨 같은 활동가들도 많이 보인다. 활동가가 투사, 사도, 천사, 비즈니스맨 무엇으로 보이든 그들의 공통점은 너무 “고단하다”는 것이다. 자신과 조직의 사명에 매료되어 기운이 펄펄 넘쳐나는 활동가를 좀처럼 만나볼 수 없다.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좋은 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활동가들이 왜 행복하지 못한가.

가장 큰 이유는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직무 과부하”의 문제일 것이다. 조직의 규모와 상관없이 인력, 시간, 자원이 충분한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비영리조직은 인적, 물적자원이 더욱 제한적이어서 활동가의 업무량은 늘어나고 이로 인한 직무소진(Job Burnout)은 높아져만 간다. 직무소진은 ‘대인관계 접촉이 잦은 직무들에서 직무수행자가 장시간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됨으로 인해 겪게 되는 부정적인 심리적 경험’을 의미한다. 직무소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직무 과부하가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은 유치원생부터 수험생, 군인,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다. 심지어 월화수목금금금, 월월월월월월월이라는 단어가 위키에서 검색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 컨설팅 전문업체인 맥킨지가 국내 기업 100개사 및 임직원 4만 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기업의 조직 건강도는 글로벌 최하위 수준에 해당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진단됐다. 특히, 효율성이 떨어지는 ‘습관화된 야근’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파이낸셜뉴스, 2016.03.15.).

비영리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은 야근하고 주말에 일하면 초과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비영리조직에서 활동가의 노력과 시간은 물질적으로 보상이 안 되고 사회적 인정과 지지도 미약하다. 더욱이 평일 야근에 주말까지 일을 하고 나면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는 점점 좁아져만 가고, 어느 날 문득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세탁기는 빨래를 해주고, 냉장고는 맛있는 음식을 보관해주는데, 도대체 아빠는 뭐에 쓰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아이들로부터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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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비영리조직에서 일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사정은 어떠할까. 기업의 퇴출 3순위를 보면, 3위 “결혼할 여자”, 2위 “결혼한 여자”, 1위 “임신한 여자”이다. 활동가인데 여성이고 거기에 결혼을 했으며 아이가 하나도 아닌 둘 혹은 그 이상이라면 제아무리 가족친화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GWP(Great Work Place)를 위해 노력하는 리더일지라도 늘 인력이 부족한 비영리조직에서는 실천이 쉽지 않다. 가족친화 제도와 프로그램이 있지만 상사의 눈치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에 출산휴가, 육아휴직, 탄력근무제 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직장 여성은 거의 없다.

비영리조직은 영리기업보다는 근무시간에 대한 유연함, 자기계발에 대한 배려 등에 있어서는 자유롭지만, 자신이 맡은 사업(프로젝트)을 기획, 모금, 홍보, 실행, 평가까지 주로 혼자서 완수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직무에 대한 부담감은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여성 활동가들은 직장에서의 역할과 임신, 출산, 육아 등 가정에서 여성으로서 감당해야할 역할들로 인해 일-가정갈등(Work-Life Conflict)을 크게 겪게 된다. 일-가정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적 상황에서 가정 내 물리적, 심리적 지원마저 부족하다면 여성활동가가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비영리조직에는 리더부터 스태프까지 싱글여성들이 참 많다.

활동가들의 소진은 사회적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직무소진은 정서적 고갈(Emotional Exhaustion), 직무 이탈감(Disengagement), 그리고 자아성취감의 저하(Personal Accomplishment)로 나타난다. 정서적 고갈은 대인접촉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정서적 자원을 소모함으로써 심리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상태를 뜻한다. 직무 이탈감은 일, 사람, 혹은 조직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이탈되어 이에 대해 냉소적이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자아성취감의 저하는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장기적으로 정서적, 육체적 소진상태에 노출되는 경우 조직차원에서는 직무만족과 조직몰입과 같은 직무태도가 저하되어 조직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건강과 심리적 안녕을 저해하여 개인의 삶의 만족도와 질이 저하되게 된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는 활동가가 자신감이 떨어지고, 성취감이나 발전가능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임팩트있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국민 행복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국민은 얼마나 될까. 잡플래닛이 8만 건의 리뷰를 분석한 <전국 직장인 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전국 남성의 평균 종합 만족도는 58.4점, 여성의 평균 종합 만족도는 다소 낮은 55.3점이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터에서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비영리조직도 비슷하거나 더 낮으면 낮았지 높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현실이 고되면 대부분 일탈을 꿈꾼다. 비영리조직에서 10년 이상 일한 활동가들의 경우 유사단체로 이직, 정부나 기업으로의 섹터 이동, 대학원 진학 등 경력이동이나 자기계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도전은 삶의 활력을 줄 수 있지만 전환을 이뤄도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활동가들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화려한 변신 대신 작은 변화를 통해 자신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너무 피로하면 일상의 소소함이 주는 행복과 새로움을 누리질 못한다. 비영리조직이 다루는 사회문제가 복잡하고 무겁다고 활동가까지 같이 우울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벗어 던질 필요가 있다.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지만, 나 없어도 조직도 세상도 잘 돌아간다. 자유, 평화, 정의 등 활동가가 지향하는 가치는 너무도 거대하다. 그러한 가치들에 짓눌려 개인의 사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주인공 리즈는 안일한 일상을 뒤로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이혼 후 로마, 인도, 발리를 여행한다. 리즈는 로마에서 신나게 먹으면서 달콤한 게으름을 배우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며,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굳이 리즈처럼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

먹고사랑하고기도하라_영화스틸컷_

영화 중반에 리즈가 인도에서 아쉬람 명상을 배우던 중 한 구루로부터 내장(gut)까지 활짝 웃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진정한 아쉬람은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는 자체를 멈춰야 가능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는 순간에 우리는 얼굴뿐만 아니라 내장까지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활동가들이 내장까지 껄껄껄 웃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 행복한 활동가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 본 칼럼은 서울시NPO지원센터 아카이브에 동시 기재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다. CSR, 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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